[리뷰/영화] '북촌방향''남자의 찌질함' 한정시키기엔… 그만의 '우연의 세계관' 설파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도, 보는 동안에도, 보고 나서도, 결국 정체를 알 수 없는 영화들이 있다. 이를테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그렇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찍었는데 무슨 영화를 찍은 건지 모르겠다"고 실토한 김상중의 말은 엄살이 아니다.

언론의 흔한 표현처럼 '남자의 찌질함'에 간단히 한정시키기에 홍상수 감독의 세계는 더 모호하고 흐릿하다. '그래서 뭘 말하려는 건가'라고 묻기라도 하면 감독은 자신의 영화 속 캐릭터들처럼 '아니, 뭘 그렇게 구체적으로 알려고 하나'라는 듯 은근슬쩍 다음 장면으로 넘겨버리고 만다.

신작 <북촌방향> 역시 비슷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시종일관 북촌을 혼자 서성이다 똑같은 사람들을 우연히 계속 만나고, 술을 마시고, 대화를 나누며, 섹스를 하는 이야기는 여전히 너무나 상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개되는 양상은 항상 낯설게 느껴진다.

이번 영화에서 더 모호한 것은 '시간'이다. 겨울이라는 계절적 배경을 제외하면 단골술집과 근처 골목에서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상황들은 하루에 일어난 일인지, 혹은 낮과 밤 언제인지조차 알 수 없다.

홍상수의 영화는 언제나 특정한 지역이나 공간을 주제이자 소재로 활용해왔다. 여기서는 북촌이 그 배경이자 중심 키워드다. 서울, 북촌에 도착한 성준(유준상)의 첫 대사는 단호하다. "어떤 새끼도 안 만나. 얌전하고 조용하게 있다 가겠어." 하지만 홍상수 영화의 찌질한 수컷의 욕망은 힘이 세다.

우연히 영화과 학생들과 합석하게 된 성준이 옛 여자친구의 집에 가고 싶어 학생들을 근처까지 데리고 간 뒤 갑자기 화를 내며 도망치는 장면은 익숙한 헛웃음을 유발시킨다.

항상 비슷하면서도 다른 홍상수의 영화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반복'이다. <북촌방향>에서 뻔뻔하게 반복되는 상황은 자연스럽게 웃음을 이끌어낸다. 반복은 서사나 대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공간이나 인물에서도 적용된다.

인물들은 같은 장소에 가고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대사를 되풀이한다. 그러면서 본인들은 이상한 점을 깨닫지 못한다. 처음인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반복하는 대사와 행동들은 일상적인 상황들을 초현실으로 느끼게 한다.

삼류 로맨티시즘과 감독 자신을 닮은 지식인 캐릭터의 자기 비하는 여전하다. 예술가나 지식인연하면서 콤플렉스에 가득 찬 교수 혹은 평론가, 감독의 허위의식과 욕망, 위선에는 감독 자신을 향한 공격이 담겨 있다.

이 마조히즘적 순간을 순화시키는 것은 특유의 허허실실 유머다. 별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상황과 관습적인 대사들의 연속은 민망한 실소를 자아낸다. 하지만 그 민망함은 비슷한 내면을 공유하는 관객들의 것이기도 하다.

홍상수의 영화는 언제나 심심하다. 이 말은 곧 재미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의 영화는 늘 사랑이나 죽음과 같은 극적 장치 없이도 더 강력한 일상의 힘을 보여준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는 작은 동네 북촌에서 수초에 한 번씩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이상한 일상을 담아내며 자신만의 '우연의 세계관'을 설파한다. 이는 결국 비논리적인데다 드라마틱하지도 않은 일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을 인상적으로 재현해준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