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핵 재앙서 잊혀진 역사 재발견, 자연의 가치 전하는 작품까지 다양

'재앙의 묵시룩'
멀리서 먹구름이 밀려 온다. 방독마스크를 쓴 채 뛰어가던 소년은 군인과 마주친다. "부모님은?" 이라고 묻는 군인에게 대답하는 대신 소년은 고개를 떨구고, 거기엔 다친 비둘기가 숨을 헐떡이고 있다.

비둘기를 품에 안고 도망치는 소년. 풀과 나무가 우거진 길 위에서 소년은 어느새 청년이 되고 비둘기는 하늘을 향해 날아 오른다. 방독마스크를 벗은 청년의 눈앞에 기적처럼, 부모님이 나타난다. 그리고 뜨거운 상봉.

일본의 영화감독 사카모토 준지가 연출한 트레일러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전쟁의 후유증 같은 비무장지대를 거울 삼아 인류의 오만을 반성하고 평화와 생명 존중을 지향하겠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제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9월 22일부터 28일까지 파주 일대에서 열린다.

DMZ를 평화와 생명, 소통의 장소로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개막식 장소부터 특별하다. 북한으로 가는 마지막 역인 도라산역이다. 민통선 부근을 자전거로 달리는 'DMZ 평화자전거행진', 임진각 일대에서 열리는 'DMZ 평화마라톤' 등 이 지역의 의미를 되새기는 부대행사도 열린다.

'덫:선동 혹은 사주'
작가와 함께 다큐멘터리와 문학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강연 '문학, 다큐를 만나다',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미술전 '피아동일' 등은 다큐멘터리와 다른 예술 장르의 접점을 모색하는 자리다.

현실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상영작들

상영작은 핵 재앙을 다룬 작품부터 잊혀진 역사를 재발견한 작품, 자연의 가치를 전하는 작품까지 다채롭다.

개막작은 안토니 버츠 감독의 <재앙의 묵시록>. 구소련 시절 40여 년간 핵실험이 이루어졌던 카자흐스탄의 광야를 배경으로 방사능 피폭의 피해자들의 삶을 담은 작품이다.

유전자 이상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한 여성의 출산을 둘러싼 논란을 중심으로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핵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핵이 전세계적 화두가 된 현재에 그 울림이 더 크다.

'두 개의 문'
국제경쟁 부문에는 <재앙의 묵시록>을 포함해 총 13편의 작품이 진출했다. <덫: 선동 혹은 사주>는 두 청년이 FBI 정보원의 사주를 받아 공화당 전당대회를 겨냥한 폭탄 테러를 계획하다 체포된 사건을 통해 9.11 이후 미국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성전>은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근본주의자들을 쫓아가며 양 진영의 해묵은 갈등을 파헤치며, <격렬의 거리>는 2010년 여름 캐나다 토론토에서 벌어진 G20 반대 시위와 체포, 인권 유린의 현장을 생생히 전한다. 용산 참사의 전후 사정을 추적한 <두 개의 문>도 상영된다.

한국 다큐멘터리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한국경쟁 부문 상영작들에서는 새로운 형식이 돋보인다. 한국과 일본, 필리핀 여성 노동자들의 공통점을 찾아 노동과 삶의 관계를 그려낸 <레드 마리아>, 강남 불패 신화의 아이콘 은마 아파트에 사는 가족의 이야기 <모래>, 술자리를 통해 한국사회를 돌아보는 <술자리다큐> 등이 주목할만 하다.

비경쟁 부문에도 흥미로운 최신작이 풍성하다. 다큐멘터리로서는 최초로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대상을 탄 <아르마딜로>, 현재의 세계적 경제 위기를 이해하는 데 마르크스의 사상이 여전히 유효한지 여러 학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묻는 <맑스 대장전>, 방사선폐기물 처리장 입지로 발표된 후 부안에서 3년 넘게 이어진 반대 투쟁을 기록한 <야만의 무기> 등이 '글로벌비전' 부문에서 상영된다.

'아시아의 시선' 부문에서는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흐름을, 닥 얼라이언스 걸작선 부문에서는 유럽 다큐멘터리의 진수를 만날 수 있다. 사회참여적 작품을 모은 '현장 속의 다큐멘터리'는 다큐멘터리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이 많은 관객에게 환영 받을 부문. 해군기지 건설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에 대한 <잼다큐 강정>, 4대강 사업 현장에서 오래된 강과 생명,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강(江), 원래> 등은 한국사회의 현실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레드 마리아'
'스페셜 포커스' 부문은 잊혀진 기억을 복구함으로써 역사를 새로 쓰는 시도를 하는 아시아 다큐멘터리들을 소개한다. 식민지 경험을 공유하고 정치적 불안정을 겪어 온 아시아에서 이런 작업은 더욱 가치 있다. '자연다큐멘터리', '아이와 함께 다큐를' 부문은 가족 관객에게 추천할만 하다.

이외에 다큐멘터리 제작 환경을 둘러싼 이슈를 다루는 세미나와 포럼도 열린다. 자세한 일정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홈페이지(www.dmzdocs.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술자리 다큐'
'아르마딜로'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