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든 성배'가 또 한 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지난 6월 대표팀이 세르비아와 가나에 연승을 거둘 때만 해도 조광래 감독이 이토록 쓸쓸하게 대표팀 지휘봉을 반납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롱런'은 지극히 어렵다. 팬들의 눈 높이에 맞는 성적을 내면서 대한축구협회(KFA)를 비롯한 국내 축구계와도 두루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축구 국가대표팀의 경기는 국내에서 첫손에 꼽히는 스포츠 흥행 카드다. 축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대표팀에는 뜨거운 성원을 보낸다. 기대치가 높은 만큼 만족시키기가 어렵다. 팬들은 대표팀의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영원한 영웅'은 존재할 수 없다.

박종환 감독은 1983년 멕시코 청소년 월드컵(20세 이하)에서 4강 진출을 이끌며 '신화'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대표팀에서는 불명예 퇴진을 거듭했다. 팬들의 기대에 걸맞은 성적을 내지 못했고 팀 관리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됐다. 특히 1996년 아시안컵 본선에서 이란에 당한 2-6 참패는 국민적인 공분을 샀다.

차범근 감독은 한국 축구가 배출한 첫 번째 월드 스타다. 대표팀 감독에 취임한 후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승승장구할 때만 해도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그러나 프랑스 월드컵 본선 1차전에서 멕시코에 1-3으로 역전패했고 네덜란드와의 2차전에서 0-5로 대패한 후 대회 도중 경질되는 시련을 겪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이끌었던 허정무 감독은 지난 2000년 레바논 아시안컵에서 우승에 실패한 후 자진 사퇴한 아픈 기억이 있다.

한국 축구에서 성공한 벽안의 사령탑도 거스 히딩크 감독 한 사람 뿐이다. 외국인 지도자들은 국내 축구와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한 것이 경질의 원인이 됐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을 지휘한 디트마르 크라머 감독은 코칭스태프와 불협화음 끝에 예선 통과 후 본국으로 돌아갔고 움베르토 코엘류 감독은 사퇴하며 "1년 동안 총 훈련 시간이 72시간에 불과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2007년 사임한 핌 베어벡 감독은 K리그 구단들의 협조를 얻지 못해 올림픽 대표팀 전지훈련이 무산되는 시련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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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기자 goav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