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핸드볼대표팀이 제15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3회 연속 우승하고 지난 7일 인천공항으로 귀국해 축하 플래카드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대한핸드볼협회 제공
비인기 스포츠의 선수로 산다는 것.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상처를 받기도 한다.

한국 남자핸드볼 대표팀은 지난 6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에서 끝난 제15회 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카타르를 23-22로 꺾고 3회 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4경기 연속 1점 차의 명승부를 펼친 끝에 아시아 정상의 자리를 지켜냈다. 혼신의 힘을 다한 박중규(무릎)와 정의경(발목), 엄효원(허리), 정한(어깨) 등 대표팀의 주축선수들은 온 몸이 성한 데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밝은 표정을 지었다. 부상 투혼을 보여준 끝에 금메달을 목에 건 스스로가 대견했다. 런던올림픽에서도 돌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도 만족스러웠다.

핸드볼 대표팀은 머리 속으로 행복한 금의환향을 그렸다. 그러나 아시아 챔피언이 된'핸드볼 영웅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우승 다음날 귀국길에 오른 핸드볼 대표팀은 중간 기착지인 카타르 도하 공항에서 달콤한 꿈이 깨지고 말았다. 홍명보 감독이 이끌고 있는 올림픽 축구 대표팀과 같은 비행기에 탑승하게 됐기 때문이다. 올림픽 축구 대표팀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런던올림픽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4차전에서 1-1로 무승부를 기록한 뒤 국내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남자 핸드볼대표팀의 플레잉코치 윤경신(오른쪽)이 제15회 아시아 핸드볼 선수권대회에서 일본과 쿠웨이트의 경기를 지켜보며 전력분석을 하고 있다. 제다(사우디아라비아)=노우래기자
최석재 핸드볼 대표팀 감독은 '올림픽 축구 대표팀도 카타르에서 같은 비행기로 귀국한다'는 기자의 말을 듣고 얼굴색이 변했다.

최 감독은 "축구 선수들은 비행기도 일반석이 아닌 비즈니스석을 탄다는 말을 들었다. 그게 사실이냐"고 되물었다. 또 "그렇다면 우리 선수들의 기가 죽을 텐데…"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핸드볼 대표팀은 협회 부회장 이상만 비즈니스석을 이용한다. 감독과 코치들도 선수들과 함께 일반석에 앉아야 한다. 키가 2m3인 윤경신 플레잉코치도 이번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일반석에서 고생을 했다.

최 감독의 걱정은 다행히 기우로 끝났다. 성인 축구 대표팀은 코칭스태프뿐만 아니라 선수들도 비즈니스 티켓을 받지만 올림픽 축구 대표팀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올림픽 축구 대표팀은 코칭스태프 외에 일반석에 앉기 힘든 일부 선수들만 좋은 자리를 배정받았다.

마음 고생 끝에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핸드볼 선수들은 인천공항에서도 또 한 번 아픔을 겪었다.

입국 수속을 마친 핸드볼 대표팀은 올림픽 축구 대표팀과 같은 게이트로 빠져 나왔다. 한 수 아래로 평가됐던 사우디아라비아에 후반 인저리 타임 때 극적인 동점골을 넣은 올림픽 축구 대표팀은 다소 어두운 표정이었고, 핸드볼 대표팀은 아시아선수권 우승 트로피를 들고 당당히 개선했다.

하지만 두 선수단의 표정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올림픽 축구 대표팀이 게이트를 나오자 수많은 취재진과 팬들이 몰려들었다. 게이트 왼쪽에서는 홍명보 감독이 공식 인터뷰를 하면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반면 핸드볼 대표팀은 올림픽 축구 대표팀에 이어 나왔지만 관심을 받지 못했다.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한 핸드볼 대표팀을 주목하는 언론과 팬들은 없었다. 대한핸드볼협회 관계자들만 선수단의 우승을 격려하기 위해 인천공항을 찾았을 뿐이다.

핸드볼 선수들은 협회에서 준비한 우승 축하 플래카드 앞에서 그들만의 파이팅을 두 번 외친 뒤 협회에서 준비한 회식 장소로 이동했다.

이번 아시아 선수권에서 활약한 한 선수는 "축구 선수들이 함께 귀국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면서 "그래도 막상 이런 상황을 경험하니 씁쓸하다"고 아쉬워했다.



노우래기자 sporter@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