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한기에 즐기는 '논두렁 골프''스코틀랜드 해안가'서 착안논두렁 주변 그린으로 농수로 워터해저드 지정거리계산 논 개수로 눈대중

골프의 모태를 생각하며 논두렁 골프를 착안했다. 대서양의 바닷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스코틀랜드의 해안가에서 가을걷이가 끝난 우리나라 논으로 장소가 옮겨졌다. 자칭 '파머스 클럽'에서의 첫 라운드를 소개한다.

2월의 아침 공기는 차가웠다. 굳은 몸을 가볍게 푼 뒤 볼 앞에 서서 깊게 숨을 들이켰다. 폐 깊숙한 곳까지 내려간 공기는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골프 근육들을 일제히 깨웠다. 이윽고, 타악! 볼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청명한 타구음과 함께 긴 포물선을 그렸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골프 얘기가 아니다. 겨울철 논에서 즐기는 '논두렁 골프'에 관한 내용이다. 귀농을한 후 언젠가 가을걷이가 끝나면 논에서 골프를 즐기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마침내 그 꿈을 향한 첫 티샷을 날렸다.

골프가 처음 발생할 당시에도 스코틀랜드인들은 자연이 만들어 놓은 코스에서 골프를 즐기지 않았던가. 논두렁 골프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무대가 대서양의 바닷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스코틀랜드의 해안가에서 한국의 논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외국에서는 이미 이와 같은 이색 골프에 대한 시도가 이뤄졌고, 일회성이 아닌 매년 반복되는 행사로 자리 잡은 곳도 있다. 몽골에서 이뤄진 초원 횡단 골프나 호주에서 있었던 사막 골프 등이 그렇다.

내가 귀농한 전북 정읍은 호남평야가 있는 곳이다. 국내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다른 지역의 조그만 논에서는 골프를 즐길 수 없지만 정읍에는 이런 평야가 있기에 가능하다.

지난 달 중순 평야지대에 있는 친구의 논을 찾았다. 그곳에서 우리는 6홀을 돌았다. 논두렁 골프는 일반골프와 환경이 다르기에 몇 가지 로컬 룰을 정할 필요가 있었다.

먼저 티잉 그라운드는 말 그대로 내 맘대로 정했다. 티는 따로 필요 없었다. 벼를 베고 난 그루터기 위에 볼을 올려놓으면 그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티다. 인류 최초의 골퍼들도 처음에는 모래를 쌓거나 잔디를 뜯어 모아 티로 사용하지 않았던가.

그린은 논두렁으로 정했다. 양수기나 비닐, 또는 전봇대 등이 있어 다른 곳과 구별이 되는 논두렁을 홀로 정하고 주변 반지름 5m 너비의 가상의 원을 그린이라고 가정했다. 그 안에 볼을 안착시키면 2퍼트 '오케이(OK)'다.

아이언이나 웨지 샷을 할 때는 벼의 그루터기를 발로 눌러 평평하게 다진 뒤 그 위에 볼을 올리고 치면 된다. 옆 논은 OB, 농수로는 워터해저드다.

일반 골프장처럼 거리 표시목이 없으니 거리를 계산할 때는 눈대중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아예 참고할만한 자료가 없는 건 아니다. 논의 폭을 대략 알고 있으니 몇 개의 논을 넘겨야 하는가를 계산하면 된다.

여섯 개 홀로 이뤄진 최초의 논두렁 골프에서 나는 3오버파를 기록했다. 지금까지 그 어떤 라운드보다 가슴 벅찼던 게임이었다. 친구와 나는 라운드 도중 컨트리클럽도 결성했다. 둘 다 귀농해 농사를 짓고 있어 이름은 파머스 클럽(farmer's club)으로 했다.

조만간 파머스 클럽의 두 번째 코스도 마련할 예정이다. 그곳 논 주인에게는 이미 사용 허가를 받았다. 마침 그 논에는 풀을 심어놔 조만간 파릇파릇 싹이 올라올 것이다. 논두렁 골프는 그렇게 시작됐다.



귀농한 전직 골프기자 김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