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지면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다."

스위스 월드컵(1954년) 아시아 예선전에 나선 한국 축구대표팀의 각오는 남달랐다.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인에게 한국땅을 밟게 할 수 없다고 버티자 한일전은 두 차례 모두 적지인 일본 도쿄에서 열렸다. 이유형 감독이 현해탄에 빠져 죽겠다며 배수진을 쳤고, 5-1 승리에 이어 2-2 무승부를 기록한 끝에 본선에 진출했다.

월드컵에 첫 출전한 한국은 헝가리, 터키, 독일과 함께 예선 2조에 속했다. 아시아를 대표해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지만 세계 축구의 벽은 높았다. 한국은 예선 1차전에서 헝가리에 0-9로 졌다. 2차전에선 터키에 0-7로 무릎을 꿇었다. 두 경기에서 무려 16골을 내줬지만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아시아에선 맹주로 군림했지만 멕시코(1986년), 이탈리아(1990년), 미국(1994년), 프랑스(1998년) 월드컵에서도 승전보를 전하지 못했다.

한ㆍ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 6월 4일. 한국은 마침내 월드컵 본선 첫 승을 거뒀다. 한국은 황선홍과 유상철의 골을 앞세워 유럽의 강호 폴란드를 2-0으로 꺾었다. 예선 2차전에서 미국과 1-1로 비긴 한국은 예선 3차전에서 우승후보 포르투갈마저 1-0으로 제압했다. 세계 축구계를 깜짝 놀라게 한 한국은 16강에선 또 다른 우승후보 이탈리아를 2-1로 이겼고, 8강에선 강력한 우승후보 스페인마저 승부차기(5-3) 끝에 꺾었다.

축구에 대한 국민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대한축구협회는 다음 월드컵에 대한 부담이 크다. 최근 축구협회는 프로축구 외국인 선수 에닝요(31ㆍ브라질)를 귀화시켜 국가대표로 발탁하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빼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에닝요는 한국에서 7년이나 살았지만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한다. 대한체육회는 '경기력 강화만을 이유로 외국인을 귀화시키면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며 특별귀화 추천을 거부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선 라모스 루이, 로페스 와그너, 다나카 툴리오 등 귀화 선수가 국가대표로 출전해 왔다. 이들은 일본어에 능숙하고 일본 문화에 익숙하다는 점에서 에닝요와는 다르다. 최강희 감독은 "순혈주의가 생각보다 강하다"고 말했지만 국민 반응은 냉담했다. 월드컵 본선 진출을 바라는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외국인을 한국인으로 둔갑시킨다는 사실이 내키지 않아서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