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이병규
타격 실력만을 놓고 국내 최고의 왼손 타자를 논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두 선수다. 성향은 완전히 다르다.'배드볼 히터'로 유명한 이병규는 볼을 쳐서 안타를 생산하는 능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장성호는 뛰어난 선구안을 바탕으로 확률 높은 안타를 만들어내는 왼손 타자의 '교과서'다.

이병규는 1997년 신인왕을 거머쥐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3년차인 1999년 200안타에 도전했던 그는 1994년 이종범(196개)에 이어 단일 시즌 2위에 해당하는 최다 안타(192개) 기록으로 안타왕에 등극한 뒤 이 부문 3연패를 달성하며 '안타 제조기'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임팩트 순간 상체가 투수 쪽으로 쏠리거나 안 좋은 공에 배트가 나가는 단점을 끊임없이 지적 받으면서도 늘 A급의 성적표를 바탕으로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국내 최고의 왼손타자 반열에 올라섰다.

이병규는 몰아치기에 능한 스타일이다. 올 시즌에도 종아리 부상 이후 슬럼프를 겪다가 최근 무서운 상승세로 타율을 2할 언저리에 맴돌던 타율을 13일 현재 2할9푼2리까지 끌어 올렸다.

반면 장성호는 '꾸준함'의 대명사다. 충암고를 졸업하고 1996년 해태에 입단한 장성호는 3년차던 1998년 첫 3할 타율(0.312)을 기록한 뒤 무려 9년 연속으로 3할 타자에 이름을 올렸다. 양준혁과 함께 이 부문 최장 기록이다. 공 '반 개'만 스트라이크존에서 빠져도 방망이가 나가지 않는다는 타고난 선구안으로 무장한 장성호는 외다리 타법을 고수하면서도 왼손 타자로서 가장 이상적인 타격 밸런스를 갖추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올 시즌 이병규와 장성호는 나란히 대기록을 달성했거나 눈앞에 두고 있다. 이병규는 지난 1일 잠실 한화전에서 한ㆍ일 통산 2,000안타의 금자탑을 쌓았다. 한국와 일본프로야구를 모두 경험한 타자들의 2,000안타로는 이종범(42ㆍ전 KIA)과 이승엽(36ㆍ삼성)에 이어 세 번째였다. LG 유니폼을 입고는 13시즌(13일 현재) 동안 1,761개의 안타를 때렸고, 일본 주니치에선 3년간 265경기에서 253안타를 기록해 한ㆍ일 통산 2,014개의 안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기록만으로는 2010년 가을에 은퇴한 양준혁이 2,318개의 안타를 쌓아 올렸고, 넥센에서 은퇴한 전준호(43)가 2,018개를 기록했다.

한화 장성호
장성호가 그들의 국내 기록을 최연소로 달성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지난해 12월 왼 어깨 수술 후 재활을 거쳐 올 시즌 복귀한 장성호는 13일 현재 타율 2할9푼1리에 4홈런, 27타점으로 김태균과 함께 한화의 중심 타선을 이끌고 있다. 특히 올 시즌 58개의 안타를 보태 통산 1,952개의 안타를 기록 중이다. 양준혁이 38세14일만에 기록한 프로야구 최연소 2,000안타를 갈아치우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나이를 감안하면 내후년쯤 양준혁의 최고 기록(2,318개)까지도 충분히 경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병규와 장성호에게 2,000안타 정도는 대단하지 않다. 둘 모두 공백이 없었다면 국내 프로야구에서 가장 먼저 3,000안타에 도전할 수 있는 후보들이었다. 이병규가 일본에 진출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안타 수는 지금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지난해까지 LG에서의 12시즌을 기준으로 하면 이병규는 한 시즌에 143개의 안타를 때렸다. 일본 진출 당시가 지금보다 전성기에 가까웠던 시점임을 감안하면 적어도 일본에서 3년간 기록한 253개보다 약 200개 가까이 더 때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랬을 경우 현재까지 약 2,200개의 안타로 양준혁의 기록을 다가섰을 것이다.

장성호도 최근 수년간 수술과 재활로 인한 공백이 아쉽다. 3년차였던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시즌 간 평균 145개의 안타를 때렸던 장성호는 2008년 89개, 2009년 77개, 지난해에는 58개의 안타를 보태는 데 그쳤다. 장성호는 최근 "(김)현수가 나와 양준혁 선배의 기록을 모두 깰 것"이라고 말한 적 있다. 최근 3년간 페이스가 떨어지지 않았다면 장성호는 김현수(두산)에 앞서 국내에서 3,000안타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였다.

어찌 됐든 둘은 최근 소속팀에서도 중심타자로 거듭나며 안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병규와 장성호를 두고 벌이는 현역 최고의 왼손 타자 논쟁은 당분간 우열을 가리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성환희기자 hhsu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