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르 카시야스(오른쪽에서 네 번째) 등 스페인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2일 키예프 올림픽유스타디움에서 열린 유로 2012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환호하고 있다. 키예프(우크라이나)=AP 연합뉴스
스페인 축구가 세계를 정복했다. 2일(이하 한국시간) 우크라이나 키예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유로 2012 결승전에서 스페인은 이탈리아를 4-0으로 완파하고 세계 축구사를 새로 썼다. 스페인 축구 대표팀은 유로 2008 우승을 시작으로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월드컵에 이어 유로 2012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출범한 이후 '메이저 대회(월드컵, 대륙연맹선수권)'에서 잇달아 3번 정상에 오른 팀은 스페인이 처음이다.

단시간 내에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스페인은 개개인의 기량은 뛰어나지만 팀 전체의 응집력은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됐다. 메이저 대회마다 단골 우승 후보로 꼽혔지만 조별리그도 통과하기 힘들었던 팀이다. '뭘 해도 되지 않는 팀'의 대명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스페인은 유로 2008 우승 이후 '이길 줄 아는 팀'으로 변신했다. 무수하게 겪은 시련을 통해 강해진 스페인 대표팀은 유로 2012에서'지루하고 재미 없다''볼만 돌릴 뿐 골을 넣지 못한다'는 등 '안티' 세력의 날 선 비판을 견뎌내고 정상에 올랐다.

스페인 축구는 월드컵, 유로에 이어 올림픽 금메달마저 겨냥하고 있는 듯 하다. 스페인축구협회는 4일(이하 한국시간) 2012년 런던 올림픽 본선에 출전할 예비 엔트리 22명을 발표했는데 티아고 알칸타라, 크리스티안 테요(이상 FC 바르셀로나), 이스코(말라가), 오리올 로메우(첼시), 이케르 무니아인(아틀레틱 빌바오) 등 '특급 유망주'가 총망라됐고 유로 2012 우승 멤버인 후안 마타(첼시), 조르디 알바(바르셀로나), 하비 마르티네스(아틀레틱 빌바오)까지 포함됐다.

상전벽해다. 스페인 축구는 1982년 자국에서 개최한 월드컵을 시작으로 2006년 독일 월드컵까지 실망스러운 성적에 그쳤다. 그러나 유로 2008부터 '무적의 팀'으로 거듭났다. 스페인 축구 전성 시대의 비결을 짚어 본다.

비센테 델보스케 스페인 대표팀 감독 / AP=연합뉴스
▲최고의 리그가 최고의 대표팀을 만든다

스페인 축구의 전성 시대는 프리메라리가가 있어 가능했다.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최고의 팀으로 꼽힌다. 무수한 유망주를 쏟아내고 최고의 선수만이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의 유니폼을 입는 영광을 누린다.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없었다면 스페인 축구의 세계 정복은 이뤄질 수 없었다.

유로 2012에서 가동된 스페인 베스트 11 가운데 오른쪽 날개 다비드 실바(맨체스터 시티)와 왼쪽 풀백 조르디 알바를 제외한 전원이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소속이었다. 알바의 경우 바르셀로나 유소년 팀에서 성장했지만 눈에 띄지 않아 발렌시아로 이적했고 유로 2012에서 두각을 나타낸 후 다시 바르셀로나로 복귀했다. 실바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해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로 이적한다는 루머가 파다하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소속 클럽이 유럽 축구를 주름잡는 과정에서 스페인 대표팀의 성적이 좋지 않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빛나는 성적표를 고려할 때 스페인 대표팀의 새역사 수립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전술의 시대를 선도하는 용병술

일부에서 숫자 놀음이라고 평가 절하하지만 현대 축구에서 전술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지닌다. 스페인은 유로 2008, 남아공 월드컵, 유로 2012에서 거푸 정상에 오르는 동안 세계 축구 전술 유행을 선도해왔다.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은 유로 2008에서 4-4-2 포메이션을 기본으로 4-2-3-1을 혼합했다. 페르난도 토레스(첼시), 다비드 비야(바르셀로나)가 스페인 대표팀의 '쌍포'로 활약했다. 비센테 델보스케 감독이 지휘봉을 넘겨 받은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4-1-4-1 포메이션을 기본으로 하며 '점유율 축구'를 본격 도입했다. 스페인은 많은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짧고 빠른 패스를 주고 받으며 주도권을 틀어 쥐었고 준결승에서 독일, 결승에서 네덜란드에 내용적으로 완승을 거두며 '스페인 전성시대'를 확인시켰다.

유로 2012에서는 '제로 톱'이라는 혁명적인 전술로 정상에 올랐다. 비야가 부상으로 유로 2012에 결장하고 토레스, 페르난도 요렌테(아틀레틱 빌바오)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한 델보스케 감독은 골 결정력이 뛰어난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최전방에 세운 전술을 구사했다. 포백에 미드필더 6명을 배치하고 중원과 최전방에서 수시로 포지션을 교체하며 공간을 파고 들어 골을 노리는 전술이다.

6월 11일 이탈리아와의 조별리그 C조 1차전에서 '제로 톱'을 구사해 1-1 무승부에 그치자 스페인 여론은 끓어 올랐다. 포르투갈과의 4강전에서 0-0으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간신히 이기자 '스페인 축구는 재미 없다'는 비난이 폭증했다.

그러나 스페인은 이탈리아와 재격돌한 결승전에서 4-0 완승을 거두며 '제로 톱'전술의 위력을 확인시켰다.

사실상 경기 결과를 좌우한 전반 14분 선제골 장면은 스페인'제로 톱'의 진면모를 드러냈다. 사비-이니에스타-세스크-실바로 이어진 자로 잰듯한 정확한 패스는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빗장 수비'를 손쉽게 무너뜨렸다. 스페인의 유로 2012 우승으로 '제로 톱'은 축구 지도자들의 새로운 연구 대상으로 떠올랐다.



김정민기자 goavs@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