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집 슈퍼소닉'으로 돌아온 윤하소속사 문제로 활동 스톱… 믿고 기다린 팬 위해 다시 일어섰죠'별밤지기'로 고된 맘 치유… 음악은 내 평생의 동지

"젊은 시절에 내 앞에 나타났던 그 길은 나에게 많은 아픔과 어둠 그리고 혹독한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그 길을 이제는 다시 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나의 길을 충실하게 걸었고 그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가수 윤하를 만나고 돌아온 길에 헤르만 헤세의 시 '젊음의 초상'을 떠올린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최근 발표된 윤하의 4집 '슈퍼소닉'은 이름처럼 '초광속'처럼 내달린 지난 시절을 돌아보는 쉼표와 같은 존재다.

트랙을 지날 때마다 시리도록 푸르고 아리도록 고달픈 청춘의 순간이 눈앞에 스쳐 지났다. 그 시절을 외면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 자신을 기다려 준 이들과 음악으로 대면하는 것. 이번 앨범의 주제는 어쩌면 만남인지도 모른다.

소속사 문제로 1년6개월을 두문불출 했던 윤하. 시간은 그냥 흘러가지 않는다고 했다. 성숙의 대가로 고민을 남기고 행복을 담보로 고통을 감내하도록 한다. 젊기에 가능한 혹은 감수해야 하는 그 시절을 관통하며 윤하가 내린 답은 역시 음악이었다. 그 시절을 버티며 음악은 기다려준 팬들 그리고 곁을 지켜준 이들에 대한 믿음을 져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각오로 무장됐다.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선택 기준은 하나였어요. 날 믿어줬던 팬들과의 신뢰 관계를 떠올렸죠. 제가 아무런 말조차 하지 않았을 때도 묵묵히 기다려준 팬들의 기대를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제 팬인 걸 자랑스럽게 해주고 싶었어요."

음악에 매달렸지만 그 안에 갇혀 있지는 않았다. 주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맡기는 편이었다. 자신이 홀로 책임을 지려했고 일일이 챙기던 이전과는 다르다. 조율과 소통을 통해 호흡을 조절하며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었다. 목소리에는 모진 고통을 이겨낸 이의 차분함이 느껴졌다.

"엄마가 '내 자식인데 내 자식 같지 않다'는 말을 자주 하셨어요. 이번에 그걸 실감했어요. '내 머리 속에 있어도 전부 내 것이 아니구나'하는 걸 새삼 느꼈죠. 내 식대로 내뱉고 쭉 나열하기만 했던 것 같아요. 정돈하는 사람이 없었죠. 이번에는 (주변에) 믿고 맡겼어요. 밴드를 구성하려고 오디션을 지켜보면서 저보다 어린 연주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정말 잘하는 거에요. 열정도 대단하고요. '내가 배워야 할 점도 많구나' '모르는 부분을 전적으로 맡겨야겠구나'싶었죠. 사람들과 한데 어울려서 준비하면서 주변과 소통하는 걸 배웠고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는 방식을 익힐 수 있었어요."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운 윤하. 그의 음악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록음악에 심취한 그지만 일방적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강권하지 않는다. 다른 음악과 섞이려 했고 좋은 걸 뽑아내려 노력한 흔적이 느껴진다. 자신의 만족이 아닌 듣는 이의 귀가 즐겁고 마음이 행복한 음악을 추구한 덕분이다. 타이틀 곡 '런'은 일렉트릭 사운드을 브리티시 록에 녹였다. 타이거JK가 가사와 피처링에 참여한'록 라이크 스타스'록과 힙합의 만남이다. 존박과 화음을 이룬 발라드 넘버 '우린 달라졌을까'은 선공개돼 차트 상위권에 올라 그의 존재감을 일깨웠다.

"정규 앨범에 12곡이 담기고 인트로나 아웃트로는 없다고 했더니 주변에서 '미쳤다'는 반응이었어요. 위험 요소가 너무 많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어요. 지난 1년 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뭘 넣고 뭘 뺄 수가 있겠어요. 프로듀서나 매니저 그리고 작곡가들과 보낸 시간의 희비가 담겨있어요. 동고동락하면서 탄생한 음악이라 어떤 부분을 잘라내는 것은 그 시절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했죠."

홀로 버텨내던 시절 라디오 DJ를 맡은 건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잡는 일이었다. MBC 표준FM(95.9mhz)'윤하의 별이 빛나는 밤에'의 '별밤지기'를 맡은 그는 고된 마음을 치유하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다. 여의도로 '출퇴근'하면서 일상에 지친 이들을 마주하고 이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텁텁하다' 가사의 질감이 인상적인'피플'은 이 과정에서 탄생했다. 혼자 힘들고 혼자 괴로운 줄 알았던 20대 철부지는 시선을 스스로가 아닌 세상으로 돌리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가 제일 힘든 줄 알았어요. 피해의식에 휩싸였고 대인기피 증상도 있었죠. 혼자 있을 때는 눈물도 많이 터졌어요. 라디오를 하면서 이런 제 자신을 돌아봤죠. 매일 출퇴근을 하면서 사람들을 지켜봤어요. 러시아워에 시달리고 상사에 혼나고 퇴근하면 회식에 끌려가고. 다들 힘들게 살고 있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청취자 사연도 제가 담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들이 많았죠. 남의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들어보기는 처음이었어요. 예전 제 모습을 지금 생각하면 '독불장군'이었구나 싶어요. 그렇게 계속 살아갔을 생각을 하면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울 정도죠."

무엇보다 윤하는 음악을 평생의 동지로 삼기로 했다. 단박에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며 죽고 못사는 연인 보다 평생 마주하며 주고받는 친구로 남기로 한 모양이다. 28일 서울 광장동 악스홀에서 열리는 콘서트는 음악과 치르는 첫 우정의 자리다. 사운드에 집중하고 연주와 어울리는 무대로 만들 생각이다. 음악과 벗하며 청춘의 시절을 보내는 그는 이제 행복하다. '과오도 많았고 길도 잘못 들었지만 지난 날의 그것을 후회할 수는 없다'는 '젊음의 초상' 마지막 구절은 그에게 더욱 어울린다.



김성한기자 wi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