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나 영화와 마찬가지다. 가요계에도 프로듀서라는 직함이 있다. 앨범의 전체 방향을 정하고 제작의 전반을 지휘하는 프로듀서는 최근까지 세 부류의 출신이 주를 이뤘다. 연예인과 작곡가, 제작자 출신이다.

최근 분위기는'빅3'를 형성하고 있는 이수만ㆍ양현석ㆍ박진영 등과 같이 무대를 누비던 가수(연예인) 출신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김도훈 조영수 방시혁 등 작곡가들이 앨범 제작을 진행하며 프로듀서로 활약 중이다. 홍승성 김광수 등 방송가에서 잔뼈가 굵은 스타 제작자들도 한 축을 이룬다.

아이유ㆍ써니힐ㆍ피에스타 등의 소속사 로엔엔터테인먼트 조영철 이사는 이중 어느 분류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그는 음악에 관심이 많았고 악기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곡을 쓰고 가사를 붙이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습작이었다. 무엇보다 음악으로 밥벌이를 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2002 월드컵' 전환의 시기

서강대 경제학과를 나와 금융맨이 된 것은 어쩌면 그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얌전하게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한일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던 2002년을 기점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고교 동기생이던 작곡가 최윤석을 중심으로 윤일상ㆍ안정훈ㆍ전해운 등의 작곡가들과 내가네트워크 설립에 참여하게 된다.

"월드컵의 영향이 있었어요. 대한민국 전체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해방감을 느끼던 시기였잖아요. 직장 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차에 제가 좋아할 수 있는 일을 해봐야겠고 마음 먹었죠. 역량 있는 작곡가나 프로듀서가 매니저 제작자 위주의 시장을 대체할 것이라고 봤어요. 지금 생각하면 위험천만한 모험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확신이 있었죠."

그렇다고 조영철 이사 처음부터 프로듀서로 활동한 것은 아니다. 그는 회사 설립을 위해 투자를 유치하고 재무적인 일을 처리하는 비즈니스 영역에서 일을 시작했다. 차츰 회사가 궤도에 오르고 시장에 대한 적응력이 높아진 2008년 1월에야 그는 프로듀서로 앨범에 이름을 올렸다.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싱글'러브'가 첫 작품이었다. 발라드를 주로 부르는 보컬그룹이었던 브라운아이드걸스는 이 노래를 통해 댄스그룹으로 환골탈태했다. 강렬한 일렉트로닉 리듬에 반복되는 가사는 일명'후크송'으로 명명돼 시장을 움직였다. 프로듀서로서 그가 바라 본 브라운아이드걸스의 터닝포인트는 트렌드의 주기와 콘텐츠의 세련미였다.

"다가올 트렌드는 현재에 대한 반작용에서 오기 마련이거든요. 제가 주목했던 건 2000년대 중반까지 대세를 이뤘던 '소몰이 창법'으로 부르는 마이너 발라드의 흐름이었어요. 이제 바뀔 시기가 됐다는 확신이 들었죠. 당시로선 메인스트림이 아니었지만 세련미가 느껴지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매력을 느꼈어요. 이전까지 안무 연습을 해본 적이 없는 친구들이었지만 승산이 있다고 봤죠. 여기에 미료의 존재가 컸어요. 다른 팀에는 없는 전통 래퍼의 느낌이 이 친구에게 있었어요. 댄스 음악에 보컬과 랩을 적절하게 구성하면 좋겠다 싶었죠. 지금은 걸그룹의 공식처럼 래퍼가 있는데 아마 그 처음은 미료라고 생각해요."

'미완' 아이유를 만나다

브라운아이드걸스는 이후 '어쩌다''아브라카다브라''사인'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정상의 걸그룹으로 발돋움했다. 브라운아이드걸스로 이름을 알린 그에게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준 것은 아이유와의 만남이었다. 2010년 로엔엔터테인먼트로 자리를 옮긴 조영철 프로듀서는 '미완의 대기'였던 아이유의 잠재력을 끌어냈다. '잔소리'를 시작으로 '좋은 날''너랑 나''하루 끝'등을 프로듀싱하며 '국민 여동생'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가 아이유와의 첫 만남에서 발견한 매력은 평범함 속의 비범함이었다.

"아이유 보다 얼굴이 예쁘고 춤을 잘 추고 노래를 잘하는 가수는 많다고 봐요. 하지만 그것들이 엔터테이너의 매력을 담보하는 건 아니에요. 코가 생각보다 낮았는데 묘한 매력이 있었어요. 얼굴이 균형 잡혔고 귀여운 고양이가 떠올랐죠. 볼수록 사람을 잡아 끄는 매력을 느꼈어요."

시기적으로 아이유의 등장은 절묘했다. 브라운아이드걸스 작업을 할 때와 반대로 이제는 기계적인 일렉트로닉으로 대표되는 댄스 아이돌 음악이 수년째 시장을 이끌면서 대중은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세시봉이나 '슈퍼스타K' 열풍으로 감성에 대한 갈증과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가 확인되던 차였다.

"'좋은 날'이 수록된 '리얼'앨범에는 전자음을 배제하고 악기의 실연을 담아냈어요. 많은 사람들은 아이유의 가창력을 높게 평가하지만 저는 관점이 달라요. 그 친구의 물리적인 성량이 큰 게 아니거든요. 작가의 감성을 자기 톤으로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나요. 노래의 정서를 이해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자기 만의 감성을 끌어내는데 아주 탁월하죠."

아이유의 비주얼도 마찬가지였다. 섹시미로 치장한 걸그룹의 홍수 속에 역발상으로 접근했다. 다소 촌스럽다고 보일 정도로 순수한 이미지를 담아냈다. 심플한 원피스와 구두, 헤어스타일은 양 갈래로 머리를 따거나 긴 생머리를 유지했다. 화려하지 않지만 어딘가 정돈되고 세련된 느낌이었다. 조프로듀서는 이 같은 이국적 분위기를 유럽 어디선가 만날 법한 소녀의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유럽적인 느낌을 뽑아내고 싶었어요. 의상이나 화장 모두 이국적으로 보였을 거에요. 뮤직비디오 세트가 특히 그렇죠. 그 완결편이'하루 끝'의 뮤직비디오라고 보시면 돼요. 이전의 뮤직비디오에는 유럽 분위기가 세트로 등장했다면, '하루 끝'에는 이탈리아의 거리를 실제로 아이유가 걷는 장면을 담았으니까요."

'철저한 분업화' 작업 핵심

연이은 성공으로 조 이사는 가요계의 문제적 인물로 떠올랐다. 많은 가수들과 작곡가들이 그와 작업하기를 원한다. 유명인사가 됐지만 그는 모든 공을 스스로에게 돌리지 않았다. 히트곡 콤비로 통하는 작사가 김이나와 작곡가 이민수를 비롯해 황수아 뮤직비디오 감독과 비주얼디렉터 등 모든 스태프의 철저한 분업에 따른 공동작업의 결과라고 했다. 이들과 함께 고민하며 균형을 유지하고 핵심을 짚어내는 것이 프로듀서의 역할임을 강조했다. 이는 연예인이나 작곡가, 그리고 제작자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프로듀서로서 그만의 노하우가 발견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양현석 사장도 곡을 직접 쓰지는 않지만 프로듀싱을 하잖아요. 물론 직접 곡을 쓰거나 가사를 쓰는 경우 장점이 있겠죠. 곡에 대한 감성이나 느낌을 잘 아니까요. 반대로 자신의 작품에 대해 냉철함과 객관성을 유지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죠. 창작의 영역은 주관적이고 정답이 없어요. 음반의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공동작업으로 만들어지죠. 누군가는 객관적으로 균형을 잡는 이가 있다면 큰 장점이 되겠죠."

"뮤비 사전심의 상상력 제한"

브라운아이드걸스 가인의 솔로 앨범을 작업 중인 그는 최근 불거진 뮤직비디오 사전 심의제 논란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심의제도의 존재만으로 창작자는 내부 검열을 할 것이고 이는 곧 상상력을 제한하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의견이다. K-POP의 발전에도 굉장한 제한적 요소가 될 것으로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권에서 한마디 하면 방송국 제작진이 걸그룹 멤버들의 치마 길이를 재는 게 바로 우리나라의 현실이에요. 대중도 대중가요의 표현에 대해 보수적인 데다 심의 제도가 존재하면 창작자는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게 사실이죠.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이나 '올드 보이'같은 작품을 이전 한국 영화가 표현하지 못한 수위를 넘어서면서 영화사적인 의미를 얻었다고 봐요. 그러한 작업이 가요계에서도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표현의 지평이 보다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성한기자 wi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