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계에서는 "코끼리는 백두산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는 농담조의 이야기가 있다. 김응용(71) 신임 프로야구 한화 감독을 두고 한 말이다. 1941년생인 김 감독의 고향은 평안남도 평원군이고 별명은 코끼리다.

김 감독이 지난 8일 한화와 계약금, 연봉 각 3억원에 2년 계약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인사'였다. 내년에 김 감독이 정식으로 그라운드에 서면 2004년 삼성 감독 이후 9년 만이다.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김 감독만큼 오랜 공백기간을 극복하고 현장에 복귀한 사례도 흔치 않다.

김 감독은 한국프로야구의 상징이다. 그는 꼭 30년 전인 1982년 가을 해태 감독에 취임한 이후 2010년 12월 삼성 사장에서 물러날 때까지 만 28년 동안 한국프로야구를 호령했다. 1982년 3월 프로야구가 출범했으니 '김응용=프로야구 역사'인 셈이다.

김 감독의 프로야구 인생 28년은 찬란했다. 해태 감독 18년 동안 9번 한국시리즈에 올라 9번 모두 우승을 차지했고,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삼성에 몸담았을 때도 한국시리즈 3번 진출에 1번 우승을 기록했다.

김재박 전 LG 감독이 재임 14년 동안 한국시리즈에서 4번(현대 시절 11년 중) 우승한 게 최다기록 2위이니 김 감독의 10회 우승이 얼마나 대단한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김응용은 백두산 정기를 받았다"는 말이 과하지 않은 이유다.

2004년 4월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벌어진 KIA와 삼성의 경기에서 경기에 앞서 선수단 소개 순서에 삼성의 김응용 감독(오른쪽)과선동열 수석코치가 비슷한 포즈로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한화 사령탑에 선임된 뒤 김 감독은 "하고 싶었던 야구를 하게 돼 정말 기쁘다.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야구를 하겠다. 3년 내 한화를 강한 팀으로 만들어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해태 왕조의 황제

부산 개성중-부산상고를 나온 김 감독은 실업야구 한일은행에서 선수로서 전성기를 보냈다. 선수 시절 김 감독은 홈런 타자였다. 1965년과 1967년에는 실업리그에서 홈런왕도 차지했다.

김 감독은 '코끼리'로 통한다. 유독 큰 체구(185㎝ 95㎏)의 김 감독이 1루에서 공을 받는 모습이 코끼리가 비스킷을 받아 먹는 것과 흡사하다고 해서 이런 애칭이 붙었다. 야구인들 중에는 김 감독을 '코 감독'(코끼리 감독)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지난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때 김 감독은 어느 구단에서도 부름을 받지 못했다. 당시 김 감독은 미국 유학 중이었다. 실업야구의 간판이자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김 감독은 내심 실망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김 감독은 1년 뒤 해태의 사령탑으로 화려하게 프로야구에 발을 들여놓았다. '감독 김응용'의 전성기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김 감독은 사령탑 첫해였던 1983년을 시작으로 1986~1989년, 1991년, 1993년, 1996, 1997년 등 해태에서만 총 9차례 한국시리즈를 제패했다.

9번 우승보다 더 놀라운 것은 '한국시리즈 진출=우승' 공식이다.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었다. 그것도 삼성과 맞붙었던 1993년(4승1무2패)이 가장 힘들었을 정도로 해태의 승리는 거의 일방적이었다. 김응용은 '해태 왕조의 황제'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사장 다음엔 총재…

2001년 우승 청부사 자격으로 삼성으로 자리를 옮긴 김 감독은 2004년까지 4년 동안 한국시리즈에 3차례 진출에 1차례 우승을 일궜다. 해태 시절 이뤘던 '한국시리즈 진출=우승' 공식은 깨졌지만 김 감독은 통산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이라는 불멸의 금자탑을 세웠다.

김 감독은 2004년 말 제자인 선동열 현 KIA 감독에게 지휘봉을 물려주고 사령탑에서 물러났다. 현장을 떠나게 되긴 했지만 결코 좌천이 아니었다. 김 감독은 삼성 구단의 사장으로 영전했다. 프로야구 감독 중에는 최초였고 전체 스포츠인 출신 중에도 대기업 사장 취임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사장' 김응용도 다복했다. 김 감독은 사장으로 보낸 6시즌 중 3차례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것을 지켜봤고, 그중 2번은 대권까지 품는 감격을 누렸다.

감독에 이어 사장으로도 성공가도를 달리자 세간에서는 "김 사장이 차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에 오르는 것 아니냐"고 기대했다. 한국프로야구에서 강한 상징성을 지닌 김 감독이기에 KBO 수장이 되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거라는 얘기였다.

김 감독은 그러나 2010년을 끝으로 사장에서 물러났고 KBO 총재의 꿈도 접어야 했다. 김 감독은 퇴임하는 자리에서 "다시 태어나도 야구는 할 거야. 그런데 감독은 안 할 거야. 우승해도 기쁘지 않아. 골치가 너무 아파"라고 했다.

매일매일 승패에 일희일비해야 하는 프로야구 감독이라는 자리는 그만큼 힘들고 고독하다. 하지만 김 감독은 9년 만에 현장 복귀 제안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수락했다. "다시 태어나면 감독은 안 할 거야"라고 했지만 김 감독의 현생(現生)은 현재진행형이다.

천하에 둘도 없는 복인

김 감독은 정말 복인(福人)이다. 돌이켜보면 고비마다 행운이 따랐고, 당대 최고 선수들과 코치들이 그와 함께 했다. 김 감독 스스로도 "나는 복이 참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

김 감독은 해태 시절 걸출한 스타플레이어들을 거느렸다. 김봉연(극동대 교수) 김준환(원광대 감독) 김용남(전 해태 코치) 김일권(전 현대 코치) 김성한(전 KIA 감독) 선동열(KIA 감독) 이순철(KIA 수석코치) 조계현(LG 수석코치) 이강철(KIA 코치) 이종범(한화 코치) 등 이름만 들어도 무게가 느껴지는 스타들이 김 감독과 함께 야구했다.

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국민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김인식 전 한화 감독, '부드러운 리더십'의 유남호 전 KIA 감독이 오랫동안 김 감독을 모셨다. 김인식 전 감독은 1986~89년 한국시리즈 4연패 때 김 감독과 함께 했고, 유 전 감독은 프로야구 원년부터 20여 년간 김 감독을 보필했다.

'복인' 김응용에게 최대 위기는 2008년이었던 것 같다. 그해 연말 삼성의 장원삼(당시 히어로즈) 트레이드 추진 파문과 인터넷 도박 사건 등으로 사장 김응용은 큰 곤욕을 치렀다.

삼성은 재정이 약한 히어로즈 구단에 현금 30억원을 주고 왼손 에이스 장원삼을 데려오려 했으나 나머지 6개 구단의 반발로 장원삼 영입은 무산되고 말았다. 또 '장원삼 파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삼성 선수 13명이 연루된 인터넷 도박이 터지면서 김 사장은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렸다.

급기야 야구단의 수장인 김 사장의 책임론까지 거론됐다. 김응용 신화도 그대로 끝나는 듯했다. 그렇지만 김 사장은 "책임질 일이 있으면 내가 책임지겠다"며 정면돌파를 택했고, 2010년까지 2년 더 야구단을 이끈 뒤 명예롭게 옷을 벗었다.

9년 만에 감독으로 돌아온 김응용은 천하에 둘도 없는 복인이다. 그런 김응용이지만 한화 감독이 정말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내년이면 만 72세가 되는 김 감독이 2년 임기를 마치면 73세가 된다. 미국프로야구에서는 코니 맥 감독이 88세에 은퇴했다고 하지만 그건 정말 전설 같은 이야기다.

물론 김 감독도 하늘이 준 마지막 큰 선물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더 의욕이 생긴다. "구단에서 감독을 맡아 달라고 할 때 그 자리에 아내도 함께 있었어. 내가 맡겠다고 하니까 '안 된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었어. 하하."

●일본의 장수 사령탑 노무라 감독과는…
노무라 74세 은퇴 1565승 대기록
김응용 103승 추가하면 기록 넘어서

한화 사령탑으로 돌아온 김응용(71) 감독. 올해 71세인 김 감독이 임기를 채우는 2014년이면 73세가 된다. '천하의' 김응용을 모셔온 한화이기에 천지개벽할 일이 터지지 않는 바에야 김 감독의 임기를 보장해주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에서는 2009시즌을 끝으로 지휘봉을 놓은 노무라 가쓰야(野村克也) 감독이 최고령 은퇴 기록을 갖고 있다. 1935년생인 노무라 감독은 만 74세에 유니폼을 벗고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나이상으로는 노무라 감독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는 김 감독이지만 기록상으로는 오히려 앞설 것 같다. 해태-삼성 재임 22년 동안 1,463승을 올린 김 감독이 앞으로 2시즌 동안 103승만 더하면 노무라의 1,565승을 넘어서게 된다. 한화는 올해 최하위였지만 53승은 챙겼다.

김응용 감독 이전 한국 최고령 은퇴기록은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의 만 69세다. 김응용 감독보다 1년 늦게 태어난 김성근 감독은 지난해를 끝으로 1군 무대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2군도 공식기록으로 인정한다면 김성근 감독은 지금도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14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전설의 명장' 코니 맥 감독이 보유한 88세가 최고령 은퇴기록이다. 맥 감독은 1901년부터 1950년까지 무려 50년간 필라델피아를 이끈 뒤 만 88세에 물러났다. 맥 감독의 통산 승수는 3,731승.

우승 제조기 '김-선 황금콤비'
● 선동열과의 맞대결 관심

김응용(71) 한화 감독이 '백두산 정기'라면 선동열(49) KIA 감독은 '무등산 정기'다. 선 감독은 현역 때 무시무시한 강속구를 앞세워 '무등산 폭격기'라는 애칭을 얻었다.

김 감독과 선 감독은 해태 시절 11년을 함께 했다. 1985년에 입단한 선 감독은 1996년 일본프로야구 주니치에 진출하기 전까지 11년 동안 해태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두 사람이 함께 했던 11년 동안 해태는 1986~89년, 1991년, 1993년 등 총 6차례 한국시리즈를 제패했다. 해태-KIA를 통틀어 우승 횟수가 총 10번이니 김-선 콤비가 그중 60%를 합작한 것이다. 김-선 콤비를 두고 "백두산 정기와 무등산 정기가 합쳐졌으니 누가 말리겠냐"고 했다.

삼성에서 김 감독과 선 감독은 감독과 코치로 1년, 사장과 감독으로 6년이나 호흡을 맞췄다. 김 감독은 2003년 말 KBO 홍보위원이던 선 감독을 수석코치에 앉힘으로써 후계구도에 쐐기를 박았다. 선동열에게 눈독을 들이던 두산과 LG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말았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간 김 감독과 선 감독은 사장과 감독으로 콤비를 이뤘다. 이 기간 삼성은 2차례(2005, 2006년) 우승을 일궜다. 해태 시절을 포함하면 '김-선 콤비'의 우승은 모두 8차례가 된다.

하지만 내년부터 천생연분 사제는 적군으로 만난다. 9년 만에 돌아와 한화 재건의 중책을 맡은 김 감독이나, 올해 한 몸에 기대를 받고 KIA 지휘봉을 잡았지만 5위에 그친 선 감독이나 양보란 있을 수 없다. 김응용-선동열의 맞대결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