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이 남긴 것모비스 국가대표급 토종 활용 방안 찾아냈고SK는 비록 졌지만 모래알 조직력 오명 벗어

유재학 울산 모비스 감독이 17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SK와의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선수들에게 헹가래를 받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싱거운 승부였다. 정규 리그 우승팀 SK는 모비스의 상대가 아니었다.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모비스는 7전4선승제의 2012~13 KB국민카드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에서 4연승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래도 이번 챔피언 결정전을 '윈-윈'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모비스는 국가대표급 토종 라인업의 활용 방안을 찾았고, SK는 모래알 조직력의 오명을 벗었다.

▲판타스틱 4, 극적인 하모니

시즌 전 모비스는 미국프로농구(NBA) LA 레이커스와 많이 비교됐다. '판타스틱 4'라는 말이 나란히 붙었다.

문경은 SK 감독
올 시즌 LA 레이커스는 기존의 코비 브라이언트, 파우 가솔에 현역 최고의 센터로 꼽히는 드와이트 하워드, MVP 출신의 베테랑 포인트가드 스티브 내쉬가 가세했다.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 주전 5명 가운데 4명을 슈퍼 스타로 채웠다.

모비스 역시 국가대표급 라인업을 갖추고 있었다. 프로농구 최고의 포인트가드 양동근과 센터 함지훈, 여기에 김시래와 문태영이 합류했다. 김시래는 2012 신인 드래프트 1순위를 기록한 천재 가드, 문태영은 매 경기 15~20점을 넣을 수 있는 검증된 슈터였다.

그러나 LA 레이커스와 모비스 모두 '판타스틱 4' 효과를 보지 못했다. 비슷한 이유였다. 가솔과 하워드의 활동 반경이 겹치듯 함지훈과 문태영이 자리를 찾지 못해 헤맸다. 슛을 던질 해결사는 많았지만 정작 슛을 던질 찬스는 만들지 못했다. 패스가 원활하게 돌지 않았고 답답한 경기력만 되풀이했다. 양 팀 사령탑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하지만 유재학 감독은 결국 하모니를 완성했다. 선수들도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확실히 파악했다. 문태영은 무리한 골밑 돌파 보다 장기인 중거리 슛으로 공격을 풀어갔다. 김시래는 적극적인 수비를 앞세워 자신감을 되찾았다. 함지훈은 공격 비중이 줄었지만 리바운드에 적극 가담하는 등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주장 양동근은 선수들을 독려하며 공수의 중심에 섰다.

최근 7년 간 4번이나 챔피언 반지를 낀 모비스는 지금이 가장 강력하다.

▲"고개 숙이지 마라"

SK는 3차전을 제외하고 매 경기 접전을 펼쳤지만 뒷심 부족으로 통합 우승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래도 올 시즌 큰 수확을 얻었다. 그 동안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모래알 조직력'이란 오명을 떨쳐냈다.

시즌을 앞두고 SK의 우승을 점친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다. 좋은 선수를 보유하고도 늘 하위권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SK는 확 달라졌다. 정규 리그 초반부터 줄곧 선두를 달렸고, '1가드 4포워드 시스템'을 바탕으로 견고한 3-2 드롭존 수비를 펼쳤다.

비록 챔프전에서 모비스에 공략을 당했지만 SK가 정규 리그에서 보여준 조직력은 돋보였다.

은 챔피언 결정전이 끝난 뒤 "모래알 조직력이라는 말만 깨자는 목표로 시즌을 준비했다"며 "생각보다 경기를 잘 풀어가면서 목표 수치가 6강, 4강, 우승으로 상향 조정 됐다"고 말했다. 이어 "모비스는 시즌 전부터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그런 팀을 상대로 잘 싸워준 우리 선수들이 예쁘다"고 덧붙였다.

특히 선수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지 말라"고 강조했다. 문 감독은 "오늘이 끝이 아니다. 다음 시즌도 계속 농구를 해야 하고 지켜보는 팬들이 많다"며 "다음 시즌에는 좀 더 다양한 옵션으로 경기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