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태 감독 '불신임'서 '야황'으로'선수 본위' 야구 철학… 1년 만에 팀 상승세 견인인위적 세대교체 벗어나 소통 최우선 과제 삼고 베테랑 선수 적극 중용숙원 '신구 조화' 이끌어

김기태 LG 감독이 사령탑 부임 2년 만에 10년간 쌓인 LG의 모든 고질병을 포용의 리더십으로 해결했다. 김 감독은 2002년 이후 11년 만의 가을 야구를 향한 희망을 밝히고 있다. 스포츠한국 자료사진
2011년 말. 박종훈 전 감독을 도중 하차시킨 LG는 후임 감독 인선을 둘러싸고 각종 루머에 시달렸다. 그 과정에서 하마평에 올랐던 재야의 몇몇 인사 대신 수석코치였던 김 감독의 내부 승격을 발표하자 팬들의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김 감독은 지휘봉을 잡고 첫 마무리 훈련 당시"감독 자리에 오른 뒤 두문불출하고 방에서 캔 맥주 마신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라며 괴로웠던 당시를 떠올렸다. 현역 시절 '카리스마'로 대표되던 김 감독이었지만, 마흔 둘의 새파란 초보에게는 너무 무거운 짐이었다. 김 감독은 "계약 과정에서 모든 걸 구단에 맡겼다. 믿고 따라주는 선수, 코치들이 큰 힘이 됐다. 한 번 해보자, 성적으로 보여 주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김 감독에 대한 팬들의 '불신임'은 딱 1년 반 만에 '야황(野皇)'이라는 별명으로 바뀌었다.

LG 상승세의 화두는 '신구 조화'다. 야수와 투수를 불문하고 베테랑과 신진 선수들의 절묘한 궁합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타선엔 주장 이병규를 비롯해 박용택과 이진영이 구심점이 되는 가운데 김용의, 문선재, 오지환, 정의윤이 돌아 가며 활약하고 있다.

2002년 한국시리즈 진출 이후 멈춰 버린 LG의 시계는 인위적이고 성급한 세대 교체가 그 불행의 씨앗이었다. 1994년 우승 사령탑으로 2003년 두 번째 LG 지휘봉을 잡았던 이광환 전 LG 감독은 "이미 구단에서 베테랑 선수들을 물갈이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상훈의 트레이드, 김재현의 FA 이적, 유지현과 서용빈의 은퇴는 크고 작은 이유가 있었지만 큰 틀에서 구단의 의지였던 것이다.

LG 선수들이 16일 잠실 넥센전에서 5-4 짜릿한 1점차 승리를 거둔 이후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태 감독은 구단에 적극적으로 베테랑 중용 의사를 전했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고참 선수가 팀에 미치는 영향을 선수 말년 SK에서 직접 경험한 김 감독이었기에 가능한 판단이었다.

김 감독의 시선은 또 다른 LG의 문제점에도 쏠렸다. 4번 타자로 고정된 정의윤은 "과거에는 한 타석에서 모든 걸 보여줘야 했다면 지금은 4타수 무안타를 쳐도 심적으로 쫓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1년 상무 소속일 때부터 눈 여겨 봤던 문선재를 개막전 1루수로 낙점하고 김용의에게 중책을 맡긴 건 도박이 아닌, 준비된 세대 교체의 시발점이었다.

LG 스카우트를 지냈던 한 야구 관계자는 "수 년간 현장에서 발굴해 프로에 입단시킬 정도의 선수라면 새로운 방식을 주입시키기보다 기본 자질은 충분하다. 성적 부담 없이 꾸준히 기회를 주면서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상현(KIA)과 박병호(넥센)가 이적 후 잠재력을 폭발한 것과 일맥상통한 얘기다.

결국 성적에 대한 조급증이 더욱 LG를 위기로 몰아 갔던 셈이다. 김 감독이 그 숙제를 풀었다.

김 감독은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의 2군 코치로 있던 2009년 LG의 부름을 받았다. 박종훈 감독보다 먼저 2군 감독으로 내정한 LG는 이영환 전 단장을 일본으로 직접 보내 설득했다. 일본 최고 명문인 요미우리에서 입지를 다진 김 감독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항간에 나돌았던 1군 감독 보장도 사실 무근이었다. LG 2군 구장인 구리에 정착한 김 감독은 선수들, 그리고 1군 박종훈 감독과 소통을 최우선 과제로 여겼다.

베테랑에겐 철저한 예우를, 어린 선수들에겐 경쟁심을 자극했다. 야구는 '선수 본위'라는 철학을 가지고 그라운드 밖에서는 형과 동생으로 선수들의 마음을 열었다. 당시 2군에서 김 감독의 지도를 받았던 선수들은 지금도 편지와 문자로 안부를 묻고 있다. 10년 간 쌓인 LG의 모든 고질병을 '포용'이란 한 단어로 풀어낸 김 감독이기에 가능한 LG의 변신이다.



성환희기자 hhsu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