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2개 최다 홈런 신기록 이승엽삼성 입단 후 팔꿈치 수술… 타자로 전향 '대성공'최연소 홈런기록 잇따라… 2003년 한시즌 홈런 56개일본 진출뒤 부침 심해… 한국 컴백뒤 여전한 한방

이승엽(삼성 라이온즈)이 한국프로야구의 새 장을 열었다. 이승엽은 지난달 20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전서 개인통산 352호 홈런을 쏘아 올려 국내프로야구 최다 홈런기록인 양준혁의 351홈런을 제쳤다. 1995년 프로 데뷔 이후 18년만, 국내프로야구에서는 11시즌만의 일이다. 한국프로야구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이승엽이 걸어온 길을 조명해봤다.

청소년시절 투수 재능 더 높이 평가

1976년 대구에서 출생한 이승엽이 처음 야구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봉덕초등학교 시절 멀리던지기 대회에 출전한 이승엽을 중앙초등학교 야구감독이 눈여겨보면서다. 이후 중앙 초등학교로 전학해 처음으로 야구공을 잡았다.

이후 야구 명문 경상중학교와 경북고등학교를 거치며 특급스타로 성장했다. 이승엽은 당시 투수와 타자에서 모두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특히 좌완투수로 재능을 높이 평가받았다.

경상중학교 재학 당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기도 했고, 경북고등학교 재학 시절 1993년 청룡기 대회에서 팀 우승을 이끌며 최우수투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4년 청소년 국가 대표로 선발된 이승엽은 투타 고루 활약을 펼치며 한국대표팀에 우승컵을 안겼다.

삼성 이승엽이 지난 20일 오후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2013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와 경기 3회초 1사1,3루상황에서 한국 프로야구 통산 최다 352호 홈런을 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후 이승엽은 삼성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고 한양대에 응시원서를 제출했지만 좌절됐다. 그해 교육부가 신설한 '체육특기생도 수학능력시험에서 40점을 넘어야 한다'는 대입요강 때문이었다.

결국 이승엽은 1995년 초 1억3,000만 원의 계약금을 받고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입단 직후 선수 생활에 위기를 맞게 된다. 팔꿈치 수술로 투수 활동이 어려워진 것이다. 당시 우용득 감독과 박승호 코치의 설득에 타자로 전향했다.

가능성은 즉시 확인됐다. 그해 365타수 104안타 13홈런을 기록했다. 프로 입단 3년차인 1997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타격이 정점을 찍기 시작하면서 최우수선수(MVP),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한국 프로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로 거듭났다.

이후에도 이승엽은 승승장구했다. 1998년 2년 연속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데 이어 1999년에는 최연소 100홈런ㆍ월간 최다 홈런(5월ㆍ15개)ㆍ최소 경기 40홈런(7월ㆍ92경기) 경신,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 등을 세우며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했다.

이승엽의 호쾌한 방망이질은 그칠 줄 몰랐다. 2001년과 2002년 연속으로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했다. 2003년 6월 세계 최연소 개인 통산 300호 홈런의 대기록을 세웠으며, 2003년 10월 56번째 홈런을 쳐 시즌 최다 홈런 아시아 신기록까지 달성했다.

실력 절정일 때 일본행

실력이 절정에 오른 2003년 이승엽은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 마린스에 입단했다. 2년 동안 5억엔(한화 약 55억원)을 받기로 계약했다. 당시 지바 롯데 멤버 중 2억엔이 넘는 선수가 마무리 투수인 고바야시 마사히데 뿐이었음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대우였다.

출발은 좋았다. 2004년 3월 세이부 돔에서 열린 원정 개막전 4번 타자로 선발 출장, 상대 투수는 세이부의 대표적인 에이스 투수이자 '괴물 투수'인 마쓰자카로부터 2루타를 기록했다. 그러나 시즌 종료 후 14홈런, 타율 0.240, 50타점이라는 비교적 저조한 성적을 올렸다.

부진은 이어졌다. 2005년 시범 경기에서 타율 0.150을 기록하면서 결국 2군으로 강등됐다. 그러나 그해 4월 1군으로 복귀하면서 팀의 중심 타선으로 정착했다. 하지만 상대팀 선발 투수가 좌완일 경우 선발 타선에서 제외되는 플래툰 시스템에 의해 기용됐다.

시즌 최종 타율은 0.260이었지만 홈런 수는 팀 내에서 최다인 30개를 기록했다. 전년도에 비해 장타력 부분에서의 기량을 되찾았다. 이승엽은 롯데가 1974년 이후 31년 만에 재팬 시리즈 챔피언 등극을 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사진=연합뉴스
2005년 시즌 이후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계약이 종료되면서 이승엽은 자유 계약 선수(FA)가 됐다. 수비 위치 보장과 극단적인 플래툰 시스템 하의 기용 등 본인의 의사와 롯데가 내세운 조건이 맞지 않아서였다.

이후 팀 전력의 보강을 꾀하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2006년 1월 전격 계약했다. 당시 이승엽은 개막전 4번 타자로 파격 기용됐다. 이런 기대에 성적으로 화답했다. 이승엽은 2006년 타율 2위(0.323), 타점 3위(108), 홈런 2위(41개) 등 일본 진출 이후 최고 성적을 올렸다.

2006년 시즌 종료 후 이승엽은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런 계획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우승 이후로 연기하기로 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맺은 계약 내용은 외부에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듬해인 2007년은 이승엽에게 고난의 해였다. 모친상 소식을 일본에서 전해 들었고 왼쪽 엄지손가락에 염증이 생기는 부상 등 시즌 내내 고전했다. 외다리 타법을 고쳐 보기도 했지만 성적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7월 중에는 스스로 2군행을 자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즌 후반기에는 요코하마와의 첫 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을 치는 등 부진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시즌 말미에는 승부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홈런을 여러 개 쳐 내며 요미우리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끝내 슬럼프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홈런을 한 개도 치지 못하는 등 장타력이 실종된 모습을 보이며 시즌을 마감했다. 종합적으로 2007 시즌에는 타율 0.274, 30홈런, 74타점을 기록했다.

다만, 태극마크를 달고서 만큼은 강한 모습을 보였다. 그해 8월에 있었던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하여 대한민국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특히 그는 4강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투런 홈런을,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도 투런 홈런을 뽑아내며 자신의 건재함을 보였다.

그러나 이후 일본 무대에선 이후에도 2군과 1군을 오가며 제대로 된 성적을 내지 못했다. 결국 2010년 시즌 종료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 이후 퍼시픽리그 소속의 오릭스 버펄로스와 계약하며 일본 프로 야구에 잔류하게 됐다.

은퇴까지 홈런 400개 목표

그러던 2011년 10월 이승엽은 오릭스 버펄로스의 고베 홈 구장인 호토모토 필드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 8년간의 일본 생활을 정리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영구 귀국했다. 이후 자녀 교육을 위해 서울로 이주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12월. 이승엽은 연봉 8억, 플러스 옵션 3억에 삼성 라이온즈와 계약을 체결했다. 친정팀으로 복귀한 것이다. 이후 이승엽은 자신이 죽지 않았음을 단단히 각인 시켰다. 2012년 이승엽의 기록은 타율 0.307, 21홈런 85타점이었다.

이승엽은 또 SK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1홈런 7타점을 기록했고, 6차전에서 결정타였던 싹쓸이 3루타를 기록해 데뷔 첫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여기에 처음으로 지명 타자 부문 골든 글러브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승엽은 지난달 20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전서 상대선발 윤희상을 상대로 왼쪽 담장을 넘기는 역전 3점홈런을 쏘아 올렸다. 이로서 개인통산 최다홈런 기록을 올린 양준형(351홈련)을 제쳤다. 이제 이승엽이 가는 길이 한국프로야구의 역사가 된다.

그런 이승엽의 목표는 은퇴할 때까지 400개 홈런을 기록하는 것이다. 400홈런까지는 48개를 남겨두고 있다. 긴 타격부진에도 홈런 한 방에 깨어나는 이승엽의 스타일과 페이스를 볼 때 2015년쯤에는 400홈런을 달성할 것이란 분석이 많다.

한일 통산 600홈런도 노릴 만하다. 이승엽은 일본에서 159개의 홈런을 쳐 한일 통산 511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600홈런까지는 89개가 남아 있는 상황. 시즌 평균 20홈런을 칠 경우 앞으로 4년 후인 2017년 41살 무렵 이 기록이 가능할 전망이다.

승엽 아시아 최연소 300호 홈런볼 1억2000만원에 팔려



이승엽의 352호 홈런볼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 때마다 다르다. 메이저리그 등 미국 스포츠계는 역사적인 스포츠 기념품을 사고파는 경매 시장이 활성화된 반면 한국은 이런 거래가 전무하다. 결국 부르는 게 값이란 얘기다.

이승엽이 2003년 6월 대구 SK전에서 기록한 아시아 최연소 300호 홈런볼은 한 사업가에게 1억2,000만원에 팔렸다. 2003년 9월 광주 KIA전서 기록한 아시아 시즌 최다 타이기록인 55호 홈런볼은 TV홈쇼핑 경매를 통해 1억2,500만원에 낙찰됐다 당사자가 막판에 구매 의사를 철회했다.

같은해 10월 대구 롯데전서 터진 아시아신기록 56호 홈런볼은 구단 협력업체 직원이 잡은 뒤 구단에 기증했다. 구단 측은 답례로 56냥(당시 약 3,400만원·현 시세 약 1억원)의 황금공을 전달했다.

이승엽의 352호 홈런볼도 이승엽의 과거 홈런볼과 비슷한 가격이 될 전망이다. 이날 이승엽의 홈런볼을 잡은 '골수 삼성팬' 박지현씨는 공의 처분에 대해 "가족과 상의 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