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겨울…' 제작사 김용훈 골든썸픽쳐스 대표제작진 걸맞은 퀄리티 위해 밤 새우며 OST 선곡하기도차기작 '쓰리데이즈' '싸인' 이어 장르물 도전대본 완성도도 자신 있어

'그 겨울' 제작사 김용훈 대표 골든썸픽쳐스 제공
2003년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방송된 후 촉발된 한류는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지난해 독도 문제와 엔저 등 민감한 현안이 발생하며 한류의 시작지인 일본의 반응이 급속하게 냉각되기 시작했다. 일본 지상파에서 한국 드라마는 사라졌고 판로 역시 막히며 외주 제작사들의 탄식이 이어졌다.

하지만 새벽이 깊을수록 아침이 가까운 법. 상반기 방송된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극본 노희경ㆍ연출 김규태ㆍ이하 그 겨울)는 침체된 한류 시장에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언어의 연금술사'인 노희경 작가는 일본 원작에 뿌리를 둔 '그 겨울'에 한국적 색채를 입혔고 조인성-송혜교 커플의 화학 작용은 기대를 넘어섰다. 노 작가의 드라마는 작품성에 비해 대중성이 낮다는 선입견을 깨면서 '그 겨울'은 2013년 최고의 히트작이 됐다.

그 배경에는 원작 구매부터 OST 선택까지 세세한 부분을 일일이 책임진 제작사 골든썸픽쳐스의 김용훈 대표가 있다. 대권 주자 곁에는 킹메이커가 있듯 2007년 드라마 '못된 사랑'을 시작으로 드라마 시장에 뛰어든 김대표는 한류를 견인한 한류메이커였다. "운이 좋았을 뿐, 주변 사람들의 도움들이 컸다"며 자신을 낮추며 한사코 인터뷰를 고사하던 김 대표와 '그 겨울'이 끝난 지 석달 열흘이 지난 후에야 설득 끝에 마주 앉을 수 있었다.

"밑그림을 그릴 때부터 쉽지 않은 작업이었죠. 일본으로 건너가 원작을 구매하고 노희경 작가와 김규태 감독을 섭외하면서 어렵게 첫 삽을 떴습니다. 그 이후 조인성과 송혜교가 합류했지만 안심보다는 걱정이 커졌죠. 제작진과 출연진의 이름값에 걸맞은 퀄리티를 내야 했으니까요. 때문에 OST 역시 허투루 흘릴 수 없었죠. 홍대 음악감독의 작업실에서 밤을 새우며 영상에 어울릴 노래를 골랐습니다."

진심은 통한다 했던가. '그 겨울'의 수록곡인 '겨울사랑' '눈꽃' '그리고 하나'는 릴레이로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하며 드라마 시장을 넘어 대중문화계 전체를 흔들었다. 노희경 작가는 대중성을 품에 안았고 조인성과 송혜교는 '스타'가 아닌 '배우'로 재평가받았다. 예능에서는 각종 패러디가 쏟아졌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꽁꽁 얼어붙은 일본 시장이 반응한 것이다. 일본 원작에서 시작된 '그 겨울'은 회당 22만 달러를 받고 일본에 역수출됐다. 지난달 말 일본 도쿄에서 열린 프로모션에는 100개 넘는 유력 매체를 비롯해 2,000명이 넘는 팬들이 모였다. 8월에는 TBS에 방송된다. 높게만 보였던 일본 지상파의 벽을 다시 넘은 셈이다.

"일본 외에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에서도 이미 방송됐거나 방송을 앞두고 있어요. 한류는 곧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과정이죠. 과거에는 홍보를 통해 한국 드라마를 알렸지만 이제는 작품이 좋으면 해외에서 먼저 러브콜이 옵니다. 이미 한류가 중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죠. 해외 팬들의 기대치도 높아진 만큼 단순한 스타 마케팅을 넘어 콘텐츠 자체로 승부해야 합니다."

김용훈 대표는 항상 어려운 길을 선택해왔다. 저비용 고효율을 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보다는 시청자들이 보지 못한 새로운 콘텐츠에 항상 주목해왔다. 2011년에는 법의관의 이야기를 다룬 '싸인'으로 25%가 넘는 전국 시청률을 기록하며 '장르물은 안 된다'는 편견을 깼다. 그 결과 그 해 대한민국 콘텐츠 어워드 방송영상그랑프리 대통령 표창 드라마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지난해에는 드라마 제작 현실을 신랄하게 해부한 '드라마의 제왕'을 제작했다. 드라마 시장에 발 담근 사람들은 공감을 표하며 무릎을 쳤다. 드라마 제작을 둘러싼 잡음이 나올 때마다 관련 기사에는 "'드라마의 제왕'이 생각난다"라는 댓글이 달린다. '신선한 이야기'는 김용훈 대표가 드라마를 제작하며 새기는 첫번째 덕목이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는 말이 있죠? 불륜과 막장이란 소재를 식상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눈은 떼지 못하는 겁니다. 하지만 콘텐츠만 좋으면 꼭 불륜과 막장이 없어도 대중이 찾아줄 거라 믿어요. 물론 손해를 보지 않아야 다음 작품을 또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제작비 구조를 맞추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하지만 그게 제작자들이 해야 할 일 아닐까요?(웃음)"

김용훈 대표는 이미 차기작 준비에 돌입했다. '싸인'으로 손잡았던 김은희 작가와 이번에는 대통령 암살 사건과 경호원의 이야기를 다룬 '쓰리 데이즈'를 선보인다. '싸인'에 이어 또 다시 도전하는 장르물이다.

족히 1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그 겨울'로 반(半) 사전제작드라마의 힘을 보여줬던 만큼 이미 드라마 전체 스토리 보드가 나왔고 3부까지 대본 집필을 마쳤다. 소식을 접한 유수의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이 일찌감치 제작사 문을 두드리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대본의 완성도는 자신합니다. '싸인'과 '유령'을 거치며 김은희 작가는 더욱 단단해졌어요. 준비 기간이 길었던 만큼 기대 이상의 작품이 나올 거라 예상하고 있죠. 캐스팅은 현재 진행 중이에요. 내로라하는 배우들도 러브콜을 보내고 있죠. 스타의 이름값도 중요하지만 캐릭터를 가장 잘 소화할 배우 섭외를 우선 조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용훈 대표는 '쓰리 데이즈' 외에도 야구를 소재로 한 드라마 '플레이볼'(극본 손소아ㆍ가제)과 일본 원작을 리메이크한 '핸썸 수트'(극본 이재윤)를 준비 중이다. 장르물과 정통 멜로에 이어 이번에는 스포츠와 판타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갈 길은 멀지만 재촉하지는 않는다. 서두르다 그르치지 말자는 것이 김 대표의 다짐이다.

"드라마 시장에서 저는 이제 겨우 출발선을 넘었어요. 요즘도 매일 선배 제작자들이 만드는 드라마를 일일이 챙겨보며 분석하고 배우는 것이 제 일과죠. 모든 작품을 준비할 때 마음가짐은 언제나 같아요. '더 좋은, 더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자'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 공부하고 배워야 할 게 산더미 같아요. 10년 후쯤 다시 인터뷰를 한다면 좀 더 그럴 듯한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안진용기자 realyo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