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아트스페이스, 고미술 특별전 '한양유흔'정치·문화·예술의 집결지 한양우리 미감의 실체와 당시 풍경·생활상 오롯이 담겨정선 '장동팔경' 첫 공개… 김홍도 작품도 만날 수 있어

'성시전도'
조선왕조 500년의 흥망성쇠를 오롯이 품은 도시 '한양(漢陽)'은 조선의 수도이자 정치, 문화, 예술의 집결지였다. 당대 최고의 문인화가와 궁중화원들이 한양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때문에 한양이 담고 있는 예술적 흔적은 우리 미감(美感)의 실체이며, 겨레의 얼굴이고 역사이기도 하다.

그런 '한양'을 통해 조선왕조의 참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뜻깊은 전시가 서울 인사동 공아트스페이스에서 8월 14일부터 9월 15일까지 열린다. '한양이 남긴 흔적'이란 뜻의 고미술 특별전 '漢陽留痕(한양유흔)'이다.

이번 전시는 인사동에서 40년 역사와 함께 한국미술의 산증인이 돼 온 공화랑이 2010년 공아트스페이스로 새롭게 개관한 지 3주년을 맞아 여는 특별전으로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과 전통을 지속적으로 알려온 노력의 연장선에서 마련됐다.

공창호 회장은 "이번 전시는 미술의 중심 역할을 해오던 인사동의 본래적 위치를 각성하고 다시 도약하고자 하는 각고의 노력으로 이뤄졌다"며 "다양성은 있으나 전통의 자리가 점점 퇴색되어 가는 미술계에서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길이 지금의 한국미술이 나가야 할 길이라고 본다"고 전시 취지를 밝혔다.

특히 국내 최초 1호 대학박물관인 고려대학교 박물관의 협조로 조선 회화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이 다수 공개되며, 한양의 다양한 모습과 조선 왕실의 문화, 의례 등을 담은 유물과 기록화 등을 통해 당시의 사상과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원경왕후인
전시는 2부로 나뉘는데 1부 '한양, 꿈을 펼친 화가들'에서는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를 비롯해 호생관 최북, 현재 심사정, 표암 강세황, 추사 김정희 등 조선시대 이름을 떨친 문인화가와 궁의 도화서를 이끈 화원들이 그린 한양의 풍경과 그들이 개인적으로 그린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의 특징 중 하나는 '조선산수화'의 새 지평을 연 겸재 정선과 당대 회화를 대표하는 단원 김홍도의 작품이 가장 많다는 점이다.

정선의 '장동팔경(壯洞八景)'은 인왕산과 백악산(북악산)의 청송당, 세심대 등 명소 8곳을 담은 작품으로 처음 공개된다. 골격미가 일품인 진경산수 '금강산'역시 처음 선보인다.

그의 '백납병풍(百納屛風)'은 경복궁, 남산 등 한양 일대와 전국 곳곳의 풍경에다 표암 강세황의 발문을 한 데 모은 8폭 병풍으로 23폭의 그림의 주제, 크기. 재질이 각기 다르다. 이 중에서도 '경복궁도'는 임진왜란에 불타 없어져 겸재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빈터만 남아있었던 경복궁의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오늘의 경복궁과는 많이 다른 옛 모습을 담고 있어 흥미롭다.

김홍도의 '남소영(南'小營)'은 남소영의 한 건물에서 배풀어진 연회의 장면을 그린 것으로 울창한 숲을 등진 남소영의 건물과 반듯한 담으로 둘러싸인 넓은 뜰을 부감법으로 그려 건물 안의 여흥 장면, 건물 양 옆과 뒷마당에서 음식을 장만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겸재 정선 '장동팔경(청풍계)'
한양의 전경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성시전도(成市全圖)'는 18세기 말 제작된 지도로 주요 도로와 행정구역을 구분해 당대 한양의 모습을 일목요연하게 밝혀놓았고, 주요 명승지를 산수화 기법으로 남기는 등 독특한 양식을 지녔다.

이밖에 17세기 작품으로 선비화가 이경윤의 '산수인물화첩', 화원 이징의 '방학도', 김식의 '화조도' 등이 소개되며, 18세기의 작품은 심사정, 강세황, 정약용 등 유수한 선비화가가, 최북 등 중인화가 및 김홍도 등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이들의 작품은 주제별로 진경산수화와 사의산수화, 인물화와 풍속화, 화조화 등 다양한 주제가 포함됐다.

19세기의 작품으로는 신위, 김정희, 장승업 등의 글씨를 포함해 사의산수화와 사군자화, 고사 인물화, 영모화 등 당대 서화의 특징을 대변하는 작품들로 구성됐다.

2부 '왕실, 그 속을 거닐다' 에서는 조선시대 궁중의물, 궁중기록화와 사대부들의 초상화 등을 통해 찬란했던 왕실문화와 왕실회화의 예술성을 조명한다.

태종의 정치적 조언자이자 세종의 어머니였던 원경왕후와 현종비의 인장은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희귀 보물이고, 19세기 궁중행사도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왕세자두후평복진하도병'에는 순종(1874~1926)의 천연두 회복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담겨있다.

겸재 정선 '금강산' 비단에 수묵담채
문신과 무신 등의 초상화도 여럿 공개되는데 그중 신흥주, 신헌, 신정희 초상은 조선 말기 무신 집안의 3대에에 걸친 초상화를 한자리에서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개막전 축사를 한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조선시대 최고 화가들이 왕조 500년의 흥망성쇠를 오롯이 담아낸 명화들을 서울시내의 열린 공간에서 시민들이 즐겁게 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