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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배우'위에 '나는 작가' 있다

● 방송가의 '절대 갑'은 작가
드라마 특정 캐릭터 넣고 빼는 '무소불위'의 권한 행사
'언어의 연금술사' 김수현 회당 1억원 원고료 챙겨
'스타 작가= 지상파 방송 편성' 비싼 몸값에도 '모시기 경쟁'
  • 사진 왼쪽부터 임성한 작가, 김수현 작가, 김은숙 작가
"나도 황당하다"

MBC 일일극 '오로라 공주'에서 난데없이 중도 하차하게 된 배우 손창민의 일성(一聲)이다. 지난 7월 하차한 손창민은 11일 방송된 YTN 라디오 '전원책의 출발 새 아침'에 출연해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손창민은 "이유와 명분을 물었지만 '없다, 모른다'고 하더라. 아마 이번 일의 키포인트는 오로지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방송 직후 대부분 언론 매체는 이 '한 사람'을 '오로라 공주'를 집필하는 임성한 작가라 추측했다.

논란이 일자 손창민 측은 "대화 중에 나온 말일 뿐, 누구 한 명을 칭한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손창민이 정말 임성한 작가를 겨냥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드라마 외주 제작사 관계자들은 "드라마에서 특정 캐릭터를 한 순간에 넣고 뺄 수 있는 건 오직 작가의 권한"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만큼 드라마를 제작할 때 유명 작가의 힘은 무소불위에 가깝다.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듯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방송 수준으로 촬영이 진행되는 한국 드라마 제작 환경 속에서 PD가 연출의 묘를 살릴 여지는 많지 않다. 결국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짚고 긁어주는 작가가 쓴 대본이 곧 드라마의 성패를 좌우한다.

히트 메이커로 소문난 작가의 몸값은 웬만한 스타를 뛰어넘는다. '언어의 연금술사'라 불리는 김수현 작가는 종합편성채널 JTBC '무자식 상팔자'를 집필하며 회당 1억원의 고료를 챙긴 것으로 알려졌고 김은숙, 홍정은-홍미란, 김영현 박지은 등 톱작가들도 회당 5,000만원 안팎의 작가료를 받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드라마 집필이 시작되면 제작사는 작가들이 원고를 쓸 거처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T아파트는 소위 말해 '잘 나가는' 작가들의 메카로 불린다. 여기에 보조 작가의 월급과 매월 활동비까지 따로 지급하는 제작사도 있다.

하지만 '스타 작가=지상파 방송사 편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비싼 몸값에도 불구하고 각 외주 제작사들은 치열한 '모시기 경쟁'을 벌인다. 한 외주 제작사 대표는 "아무리 좋은 기획이 있어도 이를 탄탄한 대본으로 발전시켜줄 작가를 구하지 못하면 지상파 편성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좋은 작가를 확보하고 있으면 오히려 방송사에서 역으로 직접 기획한 드라마를 주며 제작을 맡기기도 한다. 그러니 드라마 시장에서 유명 작가는 '갑 중의 갑'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단순히 글만 잘 쓴다고 좋은 작가는 아니다. 간접 광고를 드라마 속에 자연스럽게 녹이는 것 또한 작가의 능력이다. 드라마 속에서 휴대폰 자동차 카페 등은 필수적으로 포함되는 PPL이다. 여기에 주인공의 직업에 따라 특정 회사나 의상 등을 노출시킬 수 있다. 스타가 출연하는 일반적인 트렌드 드라마의 경우 20~30억원 가량의 간접 광고를 유치할 수 있다. 방송 심의에 걸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이를 어떻게 잘 노출시키느냐는 전적으로 작가의 재량에 달렸다.

이 대표는 "간접 광고 계약을 맺을 때 몇 회에 걸쳐 몇 초간 노출할 지 구체적으로 계약서에 명기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위약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작가가 대본 속에 잘 녹여줘야 한다. 작가의 심기를 건드리면 간접 광고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제작사는 항상 작가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캐스팅 과정에도 작가 파워는 여실히 드러난다. 아무리 대중적 지지도가 높아도 작가가 선호하지 않는 배우는 섭외 과정에서 후순위로 밀려난다. 반면 특정 작가들이 챙기는 몇몇 배우들은 단골 손님처럼 캐스팅된다.

이순재 강부자 유동근 김해숙 김희애 등은 '김수현 사단'으로 불리고 손현주 안내상 윤미라 나문희 등은 '문영남 사단'의 일원이다. 자신 만의 뚜렷한 작품 세계를 갖고 있는 노희경 작가는 배종옥 윤여정 송혜교 등을 선호한다.

SBS 드라마국 관계자는 "베테랑 작가들이 챙기는 배우들은 통상 뚜렷한 개성과 탄탄한 연기력을 갖추고 있다. 몸값이 만만치 않은 배우들이지만 단순한 친분 관계를 넘어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걸맞은 배역에 이들을 배치하기 때문에 제작비가 상승해도 함부로 반기를 들기 어렵다"고 말했다.

작가의 눈 밖에 나면 드라마에서 퇴출된다는 것도 단순한 풍문이 아니다. 유명 작가 A는 아이돌 출신 배우 B의 연기력이 부족하자 방송 도중 대본을 수정해 해외로 떠나는 설정을 넣어 하차시켰다. 지난해 방송된 드라마를 집필한 작가 C 역시 뛰어난 외모를 바탕으로 광고계를 섭렵하던 배우 D가 발음 및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자 D의 출연 분량을 대폭 축소시켰다. C는 이후 "다시는 D를 출연시키지 않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기도 했다.

분명 방송가에서 유명 작가는 '갑'이다. 하지만 이들의 권력을 마냥 나쁘게 바라볼 순 없다는 시선도 있다. 요구 사항 많고 까다롭기도 유명한 스타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평소 '억' 소리 나는 출연료를 챙기는 배우들도 흥행을 보증하는 작가의 드라마에 출연할 때는 스스로 몸값을 낮추기도 한다. 게다가 자신이 맡은 캐릭터 위주로 대본을 수정해달라는 무리한 요구도 없다. 작가에 대한 믿음이 두텁기 때문이다.

또 다른 외주 제작사 관계자는 "스타들은 드라마가 성공하면 광고 출연 제안이 쇄도해 드라마 출연료를 상회하는 CF 출연료를 챙긴다. 때문에 무리하게 몸값을 올리려 하지 않는다. 배우들이 대본에 개입해 드라마가 산으로 가는 일도 적어진다"며 "이토록 작가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제작사와 방송사는 비싼 고료와 다양한 요구사항을 수용하면서도 실력 좋은 작가를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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