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인성(왼쪽부터), 김규태 감독, , 배우 송혜교, 정은지, 김범이 출연한 SBS 수목드라마 '그겨울, 바람이 분다' 제작발표회가 1월31일 열렸다.
청출어람이라 했다. 원작 보다 훌륭한 리메이크는 존재한다. 지난 봄 종방된 SBS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극본 노희경ㆍ연출 김규태ㆍ이하 그겨울)가 그 예다. '그겨울'은 2002년 방영된 일본 TBS '사랑따위 필요없어, 여름'을 리메이크했다. 원작을 뛰어넘는 탁월함으로 사랑과 호평을 듬뿍 받았다.

극본을 맡은 는 17일 오후 경북 경주시 신평동 힐튼경주에서 열린 제8회 아시아드라마컨퍼런스에서 '그겨울'에 얽힌 후일담과 리메이크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원작자인 타츠이 유카리 작가는 "'그겨울'은 전적으로 '노희경 월드'였다. 굉장히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라는 극찬을 더했다. 이날 발표와 질의응답을 재구성했다.

▲노희경이란 스타 작가가 리메이크 작품을 한다는 것으로 화제였다.

=처음에 거절했다. 나름 중견작가다. 일단 원작을 보라고 하더라. 잊혀지지 않았다. 두 인물의 아픔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작품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원작은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가 쓰고, 한국에도 일부 마니아 층이 있는 작품이다. 거기에 내가 무얼 보탤 수 있을까 고민했다.

▲원작이 지닌 일본 특유의 정서가 있다.

노희경 작가
=우리나라와 일본의 정서가 너무 다르다. 원작 남주인공의 직업이 호스트다. 우리나라에서 공감을 얻어내기 힘들다. 내면적 아픔이 후반에 나오지만 우리 정서와 안 맞았다. 여주인공은 원작에서 20세의 순박한 아가씨다. 우리 시청자들은 여주인공이 순박한 걸 싫어한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국내 시청자에 맞춰 중소도시에서 대도시의 상속녀로 바꿨다.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이 똑똑해져야 했다. 남주인공이 속이는 방법도 더욱 구체적이고, 원작 이후 시간이 흘렀으니 좀 더 정교해야 했다. 원석의 좋은 점을 살리고 다시 해석하는 데 중점을 뒀다.

▲때문에 디테일을 파고든 것인가.

=원작을 계속 연구했다. 원작에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 조인성 송혜교 모두 15년 넘게 연기한 배우들이다. 그들이 원작 배우들과 비교될 수 있었다. 그들과 전혀 달라야 했다. 배우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연습을 많이 했다. 송혜교는 실제 시각장애인들의 도움을 받았다. 일본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드라마로 본다. 우리나라는 드라마를 현실로 보는 경향이 있다. 공감하지 못하면 이질감을 느낀다.

▲리메이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당초 리메이크를 반대했던 사람이다. '그겨울'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논리가 필요했다. 세공기술이 뛰어나면 그 기술을 파는 게 맞다. 요즘 일본 드라마를 한국에서 수입해 가치를 높여 되팔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뛰어난 게 아니다. 어느 순간 중국 등에 세공기술을 빼앗길 수 있다. 한국은 아직 일본에 비해 드라마 원작 창작이 활발하다. 장점을 살려야 한다. 작가는 창작하고, 제작자는 새로운 콘텐츠를 찾아가도록 해야 한다.

▲리메이크를 하면서 쓰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글은 매번 안 써진다. (웃음) 내 작품이 연극이나 영화로 만들어질 때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창작자는 창작자를 이해하는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창작을 하든 재창작을 하든 똑같이 힘들다. 안 써지는 게 당연한 것이니 싶다. 중국 작가들은 우리보다 집필 시간도 짧고 작품을 완성해야 하다더라. 부럽다. 글을 못쓰는 저로썬 시간이 답이다. 고민하는 것밖에는.

▲일본 원작보다 한국 리메이크작이 타국에서 더 인기 있는 경우도 있다.

=판권을 되파는 일이 왜 생기겠나. 70~80억을 투자해 국내용으로만 만들기 힘들다. 해외 판권으로 수익을 남겨야 한다. 또 한국 사회가 겪어왔던 역경, 국내 드라마의 적극적인 캐릭터 등이 아시아 지역에 정치ㆍ사회ㆍ문화적으로 맞는 것 같다.



경주(경북)=김윤지기자 jay@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