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연작 프로젝트 '그레이트웨이브'로 완주

주변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참 힘들게 산다"고들 한다. 쉽게 살고 빠르게 타협해서 편하게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요즘 세상의 덕목일 텐데 좀처럼 한 눈을 팔지 않는다. 10월23일 4년 만에 신보 '그레이트 웨이브'를 발표한 가수 신승훈은 느리고 미련하고 답답할 정도로 노래에 천착했다.

이번 신보는 그가 2006년 10집을 마지막으로 정규 앨범 발표를 미루고 2008년 10월부터 진행한 3연작 프로젝트 앨범 '3웨이브즈 오브 언익스펙티드 트위스트'의 완결판이다. 1집부터 8집까지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고 누적 앨범 판매량만 1,700만장에 달하는 그가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겠다고 나서자 주변의 반응은 엇갈렸다. 당시 데뷔 20주년을 앞둔 그가 음악적 실험으로 새로운 20년을 준비하겠다는 것은 파격으로 치부됐다.

첫 작품 '라디오 웨이브'에서 모던록을, 두 번째 '러브 어클락'에서 리듬앤블루스를 소화하며 장르 실험을 거듭한 그는 이번 앨범에서 힙합과 조우했다. 다이나믹듀오 최자가 참여한 '내가 많이 변했어'와 래퍼 버벌진트가 합류한 '러브위치'는 그 변화의 결과물이다. 최근 트렌드인 힙합과의 접점을 찾았고 담백한 창법으로 깊은 감성을 내려놓으면서 표현의 폭은 넓어진 느낌이다. 6년의 대장정을 마친 그는 스스로 목소리가 완성됐다고 자평할 정도로 자신감을 얻은 듯했고 여유가 느껴졌다.

"예전엔 곡도 어렵게 쓰고 슬픔을 더욱 슬프게 표현했다. 내 노래 듣고 눈물 흘렸으면 하는 마음에 불렀다. 그런데 뭐든지 담백해야 한다. 요즘은 슬픔을 좀 승화시킨 목소리가 나오는 것 같다. 내가 만든 노래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가장 잘 안다. 20년간 연구해서 이제 결정체를 이뤘다. '미소 속에 비친 그대'나 '보이지 않는 사랑'를 작곡한 사람으로서 지금의 목소리가 가장 완성된 상태인 것 같다."

데뷔 전 카페를 돌며 유명가수의 모창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찾았다고 했다. 거듭된 실험으로 자신이 가장 잘 낼 수 있는 그리고 가장 매력적인 음색을 찾아낸 것. 이를 테면 이번 그의 프로젝트는 제 목소리의 발굴에 머무르지 않고 개발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장르 실험을 통해 자신도 모르고 지나쳤던 감성 표현을 새삼 깨달았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단순하면서도 무거운 원리를 몸으로 채득했다.

"3부작 시리즈가 이렇게 6년이나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원래 4년을 계획했다. 그러다 중간에 2년 가량을 음악 듣기를 아예 끊은 시간이 있었다. 음악에 지쳐있던 시기가 아닐까 한다. 그러다가 8~9개월 후부터 다시 음악을 듣게 됐는데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밤에 잠들기 전까지 방대한 양을 듣게 되더라. 비워야 채운다는 말을 새삼 느꼈다."

그에게 이번 프로젝트는 새로운 20년을 준비하는 터닝포인트다. 원활한 회전을 위해서는 속도를 줄여야 한다. 하지만 그 탄력으로 예전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다. 인기나 수입에서 잠시잠깐 손해를 볼 수 있었지만 또 다른 음악적 도약을 위해 그는 기꺼이 감수했다.

"내 인생의 시즌1과 2가 있다고 할 때 내 앨범 1부터 10집까지 시즌1이고, 최근 앨범 3장이 시즌2로 넘어가는 터닝 포인트이자 '그레이트 웨이브'는 시즌1의 에필로그다. 그리고 앞으로 할 음악의 프롤로그다. 힌트가 담겨 있다. 연작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원 없이 음악적 실험을 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잊혀질까 두렵고 괴로운 시간도 있었지만 지금 떠올려보면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한다."

신승훈은 이제 시즌 2를 바라보고 있다. 2년 뒤 데뷔 25주년을 맞아 11집을 공개할 계획이다. 연작 시리즈 진행 중에는 평가를 유보해달라던 그에게 11집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앞선 인터뷰에서도 그는 숙제에 시달리는 학생의 표정을 짓곤 했다. 하지만 3연작을 마무리 해서 일까. 그는 부담감을 한층 내려놓은 듯했다. 심각하고 진중하기 보다 가볍고 경쾌하게 음악에 다가서며 도전을 준비하며 느끼는 새로운 긴장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돌아보면 내가 음악을 너무 진중하게 생각했다. 음악을 목숨처럼 생각했다. 너무 많은 걸 표현하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음악이 그냥 공기이자 밥이다. 일어나서 '공기야 너무 고맙다' 하진 않지 않나? 예전에는 음악과 싸워서 이기려 했다. 그랬다면 이제는 그냥 곁에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 얘기하면 결혼해서 권태기라는 것도 있다는데, 내 음악 인생에 권태기가 찾아와서 안 들은 적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할 거냐, 어떤 음악을 들을 거냐?' 하면 그건 나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앞으로의 음악에 대한 힌트를 얻은 것 같다."

시즌 2로 넘어가겠다는 신승훈. 그는 공연 준비에도 여념이 없다. 그는 11월9일 '2013 더 신승훈쇼-그레이트 웨이브'로 팬들과 만난다. 이번 공연 역시 시즌1을 마무리하고 시즌2를 준비하는 자리다. '더 신승훈쇼'의 총집합이 될 거라는 설명이다. 또 다른 야망도 있다. 음반과 공연 외에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던 그가 후진 양성에 뛰어든다. '러브어클락' 발표 당시 조기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던 그이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다. 이미 MBC '위대한 탄생'과 Mnet'보이스 코리아' 등에서 멘토와 코치로 참여하며 워밍업을 마친 그다.

"회사 앞에 연습실을 만들었다. 연습생도 3명 뽑았다. 8명을 뽑을 계획이다. 물론 직접 가르치려 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트레이너를 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시스템화하진 않겠다. 내가 김건모 박미경 클론과 한 소속사 시절 그랬던 것처럼 개성에 따라 서로 배우고 도움을 주고 받으면 좋겠다. 개성이 중요하다. 내 나이쯤 되면 '요즘 가요계가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 같다'고 투정을 부리면 안 될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면 내가 바꿔야 하는 것 같다. 내가 내 연습실을 갖고 연습생을 키우고 바꿔야 한다. 이수만 형, YG, 박진영이 그들의 개성대로 했다면 나는 내 방식대로 해내야 한다고 본다."



김성한기자 wi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