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예계 11월 괴담 허와실스포츠 신문 1면 특종 '희생양'실제 연예계 사건 사고 3월·12월에 오히려 더 많아사회적으로 불안한 대중들 '괴담' 공유하며 불안감 희석정치적 이슈와 맞물려 '묵혔던 도박·마약' 관련 사건 증권가 정보지 통해 흘러 나오기도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쓰지 말고, 오이밭에서 신발끈 고쳐 매지 말라 했다. 괜히 오해받을 일을 만들지 말라는 의미다.

때문에 연예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11월을 앞두고 집안 단속에 나선다. 11월에 사건 사고에 휘말리면 '11월 괴담'과 엮여 매년 이름이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작은 사건도 상대적으로 더 크게 부각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연예 관계자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11월을 보낸다.

하지만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예계 도박 사건뿐만 아니라, 가수 에일리 누드 사진 유출 사건, 슈퍼주니어 은혁 트위터 해킹 등 굵직한 사건이 줄을 잇고 있다. 11월 괴담 역시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한 연예 프로그램 조사 결과 통계적으로 연예계 사건 사고는 11월보다 3월과 12월에 집중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독 미디어는 '11월'에 집착한다. 정말 11월 괴담은 있는 것일까.

연예계 관점에서 보는 '11월 괴담'

11월 괴담의 역사는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11월1일 가수 유재하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된 이후 가수 김현식의 죽음, 듀스 김성재의 의문사를 비롯해 가수 강원래의 오토바이 교통사고와 고현정 이혼 등이 모두 11월에 발생됐다. 분명 11월에는 충격적인 사건이 많았다. 하지만 결코 11월에 집중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11월 괴담'이 연예계가 매년 치러야 하는 통과의례가 됐을까?

연예계 내부에서는 그 뿌리는 스포츠신문 시장에서 찾는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연예 언론은 스포츠신문이 주도했다. 11월을 앞두고 각 스포츠신문사의 연예부는 비상체제에 돌입한다. 매일 스포츠신문의 1면을 장식하던 프로야구 시즌이 10월말로 모두 끝나기 때문이다.

이 시기가 되면 연예면이 증가하고 지면도 전진 배치된다. 당연히 각 신문사의 연예부 기자들은 더 강한 이슈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다. 물론 없는 사건을 만들어낼 순 없다. 하지만 일단 하나의 사건이 터지면 특종을 잡은 신문사와 낙종을 만회하려는 신문사들이 보다 많은 판매량을 올리기 위해 과열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런 과정이 장기화되면 특정 이슈는 대중에게 더욱 도드라지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한 중견 연예부 기자는 "프로야구 시즌 중에는 한 두 번 정도 거론되고 끝날 사건들이 신문 1면을 장식한다거나 재탕 삼탕 되곤 한다. 스포츠신문 연예부의 취재 경쟁이 심한 11월, 12월에는 이런 현상이 더욱 뚜렷해진다"며 "때문에 연예 관계자들 사이에는 프로야구 비시즌에는 사고치는 것도 삼가라는 말이 있다"고 귀띔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연예 언론의 주도권이 신문에서 인터넷을 넘어가고 연예 매체가 우후죽순 격으로 생기면서 11월 괴담은 더욱 공공연하게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게 됐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연예계 11월 괴담'라는 키워드로 기사를 검색하면 2000년 11월 한 일간지가 쓴 기사가 최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에도 관련 기사는 많지 않다. 하지만 2005년 11월 연예계 도박 및 음주 운전 사건 등이 불거지면서 11월 괴담을 다룬 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올해 11월만 해도 이를 다룬 기사가 이미 140여건이나 된다.

이 연예부 기자는 "11월 괴담은 미디어가 만들어낸 허상이다.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사건 사고를 '11월'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넣으면서 더욱 선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중 역시 이에 호응하기 때문에 11월 괴담을 운운하는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는 '11월 괴담'

11월 괴담은 결국 '루머'다. 사건 자체는 실제지만 그 사건 사이에 특정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한 루머에 불과하다.

독일의 저명한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Carl Jung)은 루머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감이나 적대감을 외부로 표출해 해소시키는 방법'이라고 밝혔다. 결국 대중은 루머를 만들고 받아들이고 공유하면서 자신의 불안 심리를 희석시키려 하는 것이다. 11월 괴담 역시 그 도구의 하나로 쓰이고 있다는 의미다.

2009년 11월 대한민국을 강타한 신종플루 사건이 그 단적인 예였다. 당시 신종플루는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하던 질병이었다. 당시 가수 김현중 케이윌과 2AM의 조권, 샤이니의 종현과 온유 등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신종플루는 비단 연예계 만의 사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유명 연예인들이 이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대대적으로 알려지면서 11월 괴담의 범주에 들어갔고 대중들도 그 괴담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는 터무니없는 괴담을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SNS의 발달에 따른 사회의 변화는 11월 괴담을 확산시키고 있다. 과거 미디어가 11월 괴담을 조장했다면 지금은 누구나 SNS를 통해 여론 확산의 기능을 할 수 있다. 지난해 '강동역 인신매매 사건'과 '수원역 로데오 살인사건'이 SNS를 통해 전파되며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결국 실체가 없는 사건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11월 괴담 역시 이와 마찬가지다. 각 사건에는 어떤 인과 관계도 없지만 누군가가 그럴 듯하게 포장하면 대중이 이를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괴담은 대중을 집어삼키는 괴물이 되는 것이다.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심희철 학과장은 "이건 사회 심리학적인 문제다. 콩나물국을 먹고 시험에 떨어지면 아무런 문제제기도 않지만 미역국을 먹었다면 탈락의 이유를 미역국에 찾으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극히 주관 생각과 자의적인 해석이 11월 괴담이라는 실체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통계적으로 볼 때는 어떤 근거도 없다"고 설명했다.

정치학적 관점에서 보는 '11월 괴담'

지난 10일 연예계 도박 사건이 터졌다. 이수근 탁재훈을 시작으로 토니안 앤디 붐 양세형 등이 이름이 줄줄이 공개됐다. 11월 괴담이 또 다시 고개를 드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그들은 분명 잘못을 했고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이들은 일찌감치 검찰 조사를 마쳤고 지난 8월 증권가 정보지를 통해 이들의 실명이 거론되기도 했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시기에 검찰은 연예인 도박 사건을 공개한 것일까?

게다가 도박 사건이 불거진 날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접대 의혹을 수사한 검찰이 무혐의를 발표했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 볼 수 있지만 대중이 충분히 의구심을 가질 법한 대목이다.

비롯한 예로 2011년 서태지ㆍ이지아의 비밀결혼과 이혼소송은 'BBK 사건' 수사와 시기가 맞물렸고 연예인 프로포폴 불법투약 사건은 고(故) 장자연 사건을 덮기 위한 것이란 음모론도 제기됐다.

하지만 이를 입증할 어떠한 증거도 없다. 그야말로 참 공교롭다고 느낄 따름이다. 물론 모든 연예계 빅이슈가 정치 사안과 나란히 가진 않는다. 그러나 이번 연예계 도박 사건처럼 시기가 절묘하게 들어맞는 정치적 사건이 발생하면 대중은 모든 연예계 사건을 색안경을 끼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한 연예계 인사는 "도박이나 마약처럼 검찰이 수사 결과를 공개해야 하는 사건은 정치적 이슈와 맞물려 물타기로 이용될 가능성도 물론 있다. 하지만 연예인의 개인사까지 정치적 사건과 연관짓는 건 무리다. 11월 괴담이 과학적 인과 관계를 갖지 못하듯 연예와 정치 사건의 연계성 역시 단정지어 말할 순 없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안진용기자 realy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