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여 진귀품 경매통해 새주인 찾아

김환기 '24-Ⅷ-65 South East', 1965년.
김환기 이대원 이응노 오치균 구본창 등 현대미술 대표작가 망라
정선 심사정 강세황 최북 등 최고 조선 화가들 화첩 큰 관심
대선 후보 DJ, 전재국에 결혼선물로 서예 작품 건넨 배경 논란
K옥션·서울옥션 '특별경매' 통해 판매… 국고로 환수 예정

K옥션 김환기 등 현대화 수작 다수

전두환 전 대통령과 장남 전재국 시공사 대표가 소장해왔던 미술품이 공개됐다. 이들 미술품은 '전두환 전 대통령 미납 추징금 환수'를 위해 압류된 작품들로 12월에 '특별경매'라는 방식으로 국내의 양대 미술품경매사 K옥션과 서울옥션에 의해 일반에 판매된다.

이번 경매에서는 압류된 600여점 중 경매장에서 235점, 온라인 경매를 포함해 모두 330여 점이 나온다.

이들 미술품은 특정한 장르나 시대,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방대한 컬렉션으로 고미술과 근현대미술, 해외미술 등이 망라돼 있고 해외에서 활발하게 거래되는 도자기 인형도 들어 있다.

오치균 '가을정류장',1999년.
먼저 경매를 개최하는 곳은 K옥션(대표 이상규). K옥션은 12월 11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 K옥션 경매장에서 전재국 시공사 대표가 수집한 미술품 중 80점을 경매에 부친다. '전재국 미술품 컬렉션' 타이틀을 단 80점 출품작의 경매 추정가는 약 17억원(낮은 추정가 기준).

엄선된 80점의 작품에는 김환기 이응노 이대원 변종하 권옥연 김종학 오치균 등 국내 대표 작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육근병 구본창 이석주 권여현 주태석 등 '아르비방' 시리즈의 작가들, 박종배 노상균 류인 등 입체조각작가들, 그리고 전두환, 김대중 전 대통령들의 글씨가 포함돼 있다.

이들 작품 중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한국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김환기(1913~1974)의 뉴욕시대 유화 '24-VIII-65 South East'(1965년 작)이다. 이 작품은 김환기가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해 회화부문 명예상을 수상한 후 바로 뉴욕으로 가 당시 미국 화단의 주도적 경향인 색면회화 외에 팝 아트와 미니멀리즘 등 실험적 미술을 접하면서 변화되기 시작한 그의 초기 미술양식을 잘 보여준다. 모티프의 이미지화가 점점 추상적으로 바뀌고 두터운 마티에르가 배제된 담백한 색조의 모노크롬 형식으로의 변화, 색면구도 형성(때때로 색면 분할) 등등. 이런 새로운 시도에도 불구하고 김환기 회화를 관통하는 '자연'이 일관된 기조로 내재돼 있는 점은 이 작품의 가치를 높여 준다.(추정가 4억5000만원~8억원)

국내외에서 수억원을 호가하는 작품으로 인기가 높은 오치균(57)의 작품도 여럿 나왔다. 손으로만 캔버스에 물감을 두껍게 발라 그림을 그리는 임파스토 기법으로 거칠고 소외된 감성이 가득한 작품들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가을 정류장'(추정가 1억~2억원)을 비롯해 '인왕추경' '마드리드' '겨울산타페' 등 5점의 작품이 경매에 오른다.

이상규 K옥션 대표는 "오치균의 작품은 전재국씨가 매입했을 당시에는 현재의 추정가에 비해 상당히 높은 금액을 형성했던 것들이지만 경매의 목표가 추징금 환수이니만큼 추정가를 낮춰서 내놨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산대사 시'
'아르비방'(Art Vivant, 생동하는 미술) 작가군의 작품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재국씨는 1991년부터 시공사의 대표이사를 맡아 미술 관련서적들을 다양하게 발간하면서 당시 30~40대 실력있는 중견작가 55명의 화집을 3년에 걸쳐 제작했다. 이것이 '아르비방' 시리즈로 이는 생존 작가의 화집을 시리즈로 구성한 최초의 예로 미술의 대중화와 더불어 작가들을 국제무대에 알리는 등 미술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이번 경매에는 소나무 사진작가로 잘 알려진 배병우의 '소나무', 최근 제25회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한 안창홍의 '꽃', 설치미술사 육근병의 콜라주 작품 등이 새 주인을 찾아간다.

이밖에 한국현대미술에 족적을 남긴 이응노 이대원 변종하 권옥연을 비롯해 미술시장에서는 별반 주목받지 못하나 작품성과 예술적 완결성에선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아온 김명희 문범 조덕현 엄정순 노상균 등의 작품도 경매에 나왔다.

특히 1992년 12월 제14대 대선을 앞두고 당시 야당 후보였던 김대중 후보가 전재국씨의 결혼선물로 서산대사의 시를 옮긴 서예를, 전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인 민정기 비서관에겐 '실사구시' 서예를 건넨 것은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당시 정치의 내막을 암시해주는 것으로 보여 새로운 논란거리가 될 수도 있다.

외국 작품으로는 최근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값으로 경매된 '루치안 프로이트에 대한 세가지 연구'(1억4,200만 달러)의 작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판화 '앵그르 이후의 오이디프스와 스핑크스'(추정가 1,200만-2,000만원)와 데미안 허스트의 실크스크린 '신의 사랑을 위하여'(추정가 1,500만-2,500만원), 탕즈강의 유화(1억2,000만원-3억원) 등이 눈길을 끈다.

K옥션은 11월 30일부터 12월 10일까지 신사동 전시장에서 프리뷰 전시를 개최하고 12월 3일, 7일 오후 3시에는 설명회도 진행한다. 온라인 경매는 12월 13~17일 열리고 100여 점이 출품된다. (02)3474-8824

데미안 허스트 '신의 사랑을 위하여'
서울옥션 고서화 화첩 이대원 대작 등 나와

서울옥션은 12월 18일 서울옥션 평창동 본사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를 위한 특별경매'를 진행한다. 총 출품작은 155점으로 추정가 총액은 경매 시작가 기준 약 20억원 규모다.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18세기와 19세기 조선시대 화가들의 작품을 두루 담은 16폭짜리 화첩이다. 이 화첩에는 겸재 정선의 걸작 '계상아회도(溪上雅會圖)', 현재 심사정의 '송하관폭도(松下觀瀑圖)'를 비롯해 관아재 조영석, 표암 강세황, 호생관 최북, 북산 김수철 등 조선시대 거장 9명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계상아회도'는 겸재 특유의 필치와 화법이 드러난 수작이고, '송하관폭도'는 강세황의 평론이 곁들여져 작품의 가치를 더한다. 화첩의 추정가는 5억~8억원.

현대미술품 중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에 오랫동안 걸려 있던 이대원 화백의 '농원'(1987년 작)이 백미다. 점과 선으로 풍경을 묘사하는 작가의 특징이 잘 드러난 이 작품은 연못과 들판, 산과 나무가 자리한 농원의 전경을 분홍빛 하늘로 묘사한 것으로, 작가 특유의 필치와 화사한 색채감이 잘 어우러져 있다. 이 작품은 시공사에서 2008년 발행한 '이대원' 화집 1권 도록 표지에 사용되기도 했다.(추정가 2억5,000만~4억5,000만원)

이밖에 변종하 김종학 권순철 최영림의 유화 등 한국 근현대미술 주요작가들의 작품이 포함돼 있고, 구본창 배병우 등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들의 작품들도 함께 경매로 나온다. 국대호 이우림 이길우 등 근래 개인전을 진행하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도 포함돼 있다.

고암 이응노 '구성'
해외미술로는 미국 신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데이비드 살르의 유화와 이탈리아 트랜스 아방가르드 대표작가인 밈모 팔라디노의 작품을 비롯, 중국작가 장 샤오강의 작품 등이 나온다.

특히 큰 관심을 끌만한 것으로 스페인의 수제 도자기 인형 전문 브랜드인 아도르 도자기 컬렉션이 있다.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는 아도르는 특유의 예술성과 아름다움, 화려하면서도 섬세함이 돋보이는 도자기 인형을 제작하는 곳으로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서울옥션 프리뷰는 12월 6~11일 서울옥션 강남점 호림아트센터, 14~17일 평창동 본사에서 열린다. (02)2075-4434


이대원 '농원', 1987년.
현재 심사정 '송하관폭도'
겸재 정선 '계상아회도'

박종진기자 jj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