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계 흔드는 정치 논리

변호인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관객이 '' 상영관 전체를 예매했다가 상영 직전 취소하는 방식으로 일반인들의 관람을 방해하고 있다."

최근 한 온라인 카페에는 서울 소재의 영화관에서 일한다는 네티즌이 ''과 관련해 이와 같은 글을 올렸다. 글쓴이의 주장으로는 한건당 100여장 이상씩 예매했다가 상영 직전 취소했으며 비슷한 사건이 10여차례 이어졌다는 것. 해당 내용은 SNS를 통해 급속히 퍼지며 논란을 키웠다. 하지만 확인 결과 이는 사실무근인 것으로 밝혀졌다. 배급사 NEW 측은 "서울 소재 극장들에 대규모 환불 사태를 문의했지만 의심할 만한 사례가 없다"고 입장을 전했다.

#'정치적이다'라는 색안경

영화계에 진영 논리가 손을 뻗고 있다. 상업 예술인 영화에 대해 정치 잣대를 갖다대며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현상이다. 어수선한 정국이 이 같은 논리에 불을 붙이고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퍼지고 있다. 단순한 작품 흠집내기뿐만 아니라 영화를 관람하려는 예비 관객들에게도 직, 간접적인 손해를 끼치고 있다.

18일 개봉한 ''이 좋은 예다. 80년대 부산에서 일어난 용공조작 부림사건을 소재로 고졸 출신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며 세금 전문 변호사로 살던 송우석 변호사가 어떻게 인권변호사로 성장하게 되는지를 담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인 것이 알려지며 화제가 됐다. 또 송강호와 김영애, 곽도원, 아이돌 출신 임시완 등의 열연도 호평받았다.

부러진 화살
하지만 ''은 개봉도 하기 전 일명 '평점테러'에 시달려야 했다. 다수의 우익성향 네티즌은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사이트에 소개된 ''의 평점으로 1점을 줬다. 글 대부분에는 노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반대 성향의 네티즌이 만점을 주기 시작했고 실제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의 평점이 덧붙여 지면서 정상을 되찾았다.

"송강호 급전 필요한가"라는 제목으로 나온 모 보수성향 매체의 기사는 이 영화에 대해 대중뿐만 아니라 언론 역시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준다. 또 다른 매체는 모 방송에서 진행한 송강호 인터뷰를 모니터링 한 후 "'' 출연 이후 작품 섭외가 끊겼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 논란을 일으켰다. "재충전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게 인터뷰 요지였지만 방향은 정반대였다. 당시 인터뷰를 진행했던 기자가 해당 매체에 항의하면서 기사는 일부 수정됐다.

"대형 멀티플렉스 업체들이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상영을 주저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루머도 나돌았다. 결국 ''은 정상적으로 개봉했고 900개 가까운 상영관을 확보했다. 7일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흥행성적도 좋다. 다른 상업영화들과 다르지 않은 행보다.

비슷한 예는 많다. 18대 대선을 앞둔 지난해 11월 개봉한'남영동1985'는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벌어진 22일간의 고문 기록을 담았다. 민주당 고 김근태 의원의 자전적 수기를 바탕으로 했다. 연출을 맡은 정지영 감독은 정치적 의도를 가진 작품이라는 것을 감추지 않았다.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여러 사건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감독 백승우)는 개봉 이후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곧 날벼락을 맞았다. 메가박스 측이 "보수 단체의 협박으로 관객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돌연 상영을 중단한 것. 천안함 침몰과 관련한 국방부의 발표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 문제가 됐다.

천안함 프로젝트
기획 중인 영화 '퍼스트레이디'(감독 한창학) 역시 비판에 직면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어머니인 고 육영수 여사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이유다. 과정도 순탄치 않다. 제작이 발표된 이후 주연배우 감우성, 한은정 등이 차례로 하차했다. "제작사 측의 계약불이행 및 불성실한 태도""영화 제작이 더디다" 등 이유가 나왔지만, 영화를 보는 일부 곱지 않은 시선 역시 부담이 됐다는 게 업계 시선이다.

# 이슈 노렸다? 영화 측도 부담

정치적인 접근이 부담스러운 것은 영화 쪽도 마찬가지다. 자칫 정치영화로 포장될 경우 흥행에도 악재다. "영화가 대선에 영향을 미쳤으면 한다"고 말했던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1985'가 신통찮은 흥행을 기록한 것이 대표적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외면받을 수 있다는 위험요소도 가진다.

개봉을 앞두고 '' 측은 일찌감치 정치적 접근에 선을 그었다. 송우석 변호사 역을 맡은 송강호는 주간한국과 가진 인터뷰에서"정치인을 연기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오히려 격동의 80년대를 뜨겁게 살아온 이들의 진심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출을 맡은 양우석 감독 역시 "정치 논리와는 관계없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프로모션 과정에서도 정치권과 거리두기에 집중했다. VIP 시사회와 일반시사 등에 나타난 정치권 인사는 없었다. ''홍보대행사 퍼스트룩 관계자는 "일부러 정치인의 관람을 거부한 것은 아니다. 문의는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으나 따로 준비된 것이 없었다.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한 시사회가 우선이었다"고 밝혔다. 전병헌 원내대표와 문성근, 최민희 등 민주당 인사들은 개봉 후 관람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는 사실 아닌 허구의 예술

''을 놓고 벌이는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양극화돼 대립 중이다. 안타까운 것은 초점이 영화의 만듦새나 출연 배우들의 연기가 아닌 소재에 맞춰졌다는 점이다. 양우석 감독의 연출력과 송강호의 열연은 뒤편으로 밀려났고 이들이 말하고 싶었던 '진심' 역시 가려졌다.

이용철 영화평론가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실존했던 역사적 사건과 정치인을 소재하는 작품들에대해 관객이 각자의 견해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영화는 객관적 사실에서 한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예술 작품이기에 접하지도 않은 채 힐난하거나 반대로 열광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은 바람직한 사회와 우리가 바라는 권력자가 어떤 인물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허구의 이야기라는 것을 인지해야 공정한 평가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정현 기자 sei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