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낭만ㆍ풋풋한 사랑 이야기 '응답하라 1994' 시청자 열광1000만 관객 돌파 '변호인' 40대 중반 '그시대 가치' 재현90년대 초반 故김광석 노래 2014년 대중의 마음 뒤흔들어

요즘 대중문화계의 키워드는 '복고'다. 사진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한 장면.
요즘 대한민국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TV를 켜면 1990년대 문화가 당시에는 10대였지만 어느덧 30,40대가 된 이들에게 '응답하라'고 소리친다. 극장으로 가면 1980년대 서늘했던 사회 분위기를 관통하는 영화 '변호인'(감독 양우석)이 관객의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귀를 쫑긋 세워 보라. 18년 전 세상을 떠난 고(故) 김광석의 노래가 곳곳에서 흐르고 그의 노래를 바탕으로 한 주크박스 뮤지컬 '디셈버'가 대중을 유혹한다. 분명 요즘 대중문화계의 키워드는 '복고(復古)'다. 하지만 단순히 '옛날이 좋았다'는 이야기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대중은 과거 한 때가 좋았다고 추억하기 보다 현재의 '결핍'을 추억으로 채우는 중이다.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응답하라 1994'는 케이블 드라마 최초로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2013년 최고의 히트 상품이 됐다. 산술적 시청률은 인기 지상파 드라마를 밑돌지만 체감 시청률은 대한민국 으뜸이다. 여심은 칠봉이(유연석)파와 쓰레기(정우)파로 갈렸고, 고아라는 재발견됐다.

그 안에는 다양한 문화 아이콘이 담겼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문화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전성기였고, 대학농구가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등과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던 유일한 시기였다. 당시 유행하던 (지금 보면 촌스러운) 패션은 웃음을 자아냈고, 당시 유행하던 대중음악의 가사는 추억을 새록새록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1990년 문화를 향유했던 이들 만이 '응답하라 1994'에 열광했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2014년을 사는 10대들도 '응답하라 1994'에서 다양한 재미를 맛봤다. 단순히 복고 코드가 아니라도 그 자체로 충분히 재미있는 콘텐츠였기 때문이다.

분명 추억팔이는 있었다. 그렇다고 사극을 과연 '역사팔이'라 할 수 있을까? 단순히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부여되기 때문에 재미가 담보된다. '응답하라 1994'는 1994년의 문화에 빚을 졌다. 하지만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파릇했던 캠퍼스의 낭만과 풋풋했던 사랑 이야기를 변주하며 공감을 이끌어 냈다.

'응답하라 1994'의 신원호 PD는 "세대를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예전에는 '빠순이(극성 여성팬)'를 한심하게 봤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습을 보며 웃음 짓는다. '응답하라 1994'를 다른 세대가 공감하듯 무작정 '요즘 노래는 들을 게 없다'고 하는 건 폭력적인 말이다. 어느 세대나 누구나 즐길 만한 공감 코드가 있다. '응답하라 1994'가 인기를 얻은 이유다"고 말했다.

'변호인'의 성공 역시 단순히 고(故) 노무현 전(前) 대통령에 대한 향수 때문 만은 아니다. 최소한 40대 중반 이상의 연령대 만이 그 시대의 공기를 기억할 수 있다. 그들 중에는 다른 정치적 이념을 가진 이들도 있다. 역사적 사실에만 기대서 '변호인'을 만들었고, 관객들이 그것 만을 원했다면 '변호인'은 결코 역대 아홉 번째 1,000만 영화가 될 수 없었다.

그 저변에 깔린 건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일관된 정서다. 관객들의 마음을 가장 뜨겁게 달구는 송우석의 대사는 "국가란 국민이요,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형태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대중은 팍팍한 삶에 피폐되고,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 속에서 한없이 작은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변호인'의 배경과 같은 용공 조작 사건은 없지만 대중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라는 생각에 억눌려 있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송우석은 이런 대중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이 시대의 소영웅인 셈이다.

'변호인'의 투자배급을 맡은 NEW 관계자는 "특정 인물을 소재로 했다는 점이 개봉 전부터 논란이 됐지만 우리는 한 번도 그것을 마케팅이나 홍보의 도구로 이용한 적이 없다. 과거를 추억하자는 것이 아니라 '변호인'은 만고불변의 보편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있다. 2014년의 복고 키워드 하면 빠지지 않는 이름이 바로 '김광석'이다. 그는 1월(1964년)에 왔다가 1월(1996년)에 갔다. 당시 그의 나이 33세. 불과 30세 전후에 그가 불렀던 노래들이 지금 대한민국 대중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다.

SBS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와 '응답하라 1994'에는 김광석의 노래가 삽입됐고, 그를 추억하는 이들이 '디셈버' 공연장을 찾았다. 종합편성채널 예능프로그램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JTBC '히든싱어2'는 마지막 출연자로 김광석을 세웠다.

대중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김광석이 어떤 모습으로 다시 무대에 설 지 기다렸다. 제작진은 1년을 준비해 릴테이프에서 추출된 그의 목소리를 라이브와 같이 생생하게 되살렸다. 연출을 맡은 조승욱 PD는 "김광석의 노래에는 묘한 힘이 있다. 단순히 귀로 듣고 즐기는 것을 넘어 가수와 팬들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준다"며 "김광석의 노래를 믿었고, 그의 노래를 사랑하는 이들의 힘을 믿고 출발한 기획"이라고 밝혔다.

시간과 추억은 힘이 세다. 시간의 흐름은 과거에 의미를 부여할 여지를 주고, 추억은 아름답게 포장되는 경향이 있다. 지금 회자되는 복구 아이템들은 분명 등장할 당시보다 다양한 의미를 부여받고 다양한 방식으로 포장되고 있다. 문제는 과거에서 즐거움을 찾을 만큼 현재에서 즐길 거리가 많지 않다는 거다.

팝칼럼니스트 김태훈은 "현재가 재미없기 때문에 과거에서 재미를 찾는 거다. 요즘도 많은 문화 콘텐츠가 등장하고 있지만 대부분 3개월 안에 소비돼 없었지만 인스턴트 식이고 맛을 깊이 음미할 만한 콘텐츠가 부족하다. 20년 후에 '응답하라 2014'가 제작되면 과연 어떤 콘텐츠가 담길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안진용기자 realy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