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황정민표 연기'에 관객 신뢰 쌓여… "허투루 하지 않았구나" 흐뭇진한 멜로 한번 해보고 싶어 결정… '신세계2'도 준비하고 있어요

남자는 건달이다. 하지만 건달이기 전에 남자다. 그는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이 있다.

여자는 병든 노부를 간호한다. 하지만 그녀는 젊고 예쁘다. 그는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배우 황정민 한혜진의 신작 '남자가 사랑할 때'(감독 한동욱ㆍ제작 사나이픽쳐스)는 평범치 않은 상황에 놓은 두 남녀의 평범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그다지 새롭지 않은 남녀의 사랑일 뿐인데,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웃음을 짓고 눈물이 난다. 주인공 태일 역을 맡은 황정민 덕분이다. 현실에서 만났다면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을 것 같은 질감은 가진 이 남자 태일, 황정민이 아니면 누가 그도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당위성을 부여하랴.

▲충무로는 호황인데 멜로물은 불황이다. 이 시점에 멜로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예전부터 멜로를 하고 싶어서 여기저기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이 시점에 개봉하게 된 것이지 특별한 의미는 없다. 동료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왜 멜로를 안 해?'라고 물으면 '있어야 하지'라고 말한다. 그만큼 멜로물을 제작하는 이들이 드물다.

▲'남자가 사랑할 때'는 꽤 오래 전부터 준비된 프로젝트라고.

='부당거래'에 출연할 당시 '남자가 사랑할 때'의 제작사 한재덕 대표가 담당 PD였다. 이 때 술먹고 '진한 멜로 한번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 '신세계'를 함께 하며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고 '남자가 사랑할 때'의 시나리오를 보고 만들기로 결정했다.

▲황정민이라는 배우는 부각된 반면 영화의 내용은 그리 새롭지 않더라.

=당연한 거다. 사랑은 원래 뻔하고 유치한 거니까. 나이가 많이 적든, 할아버지부터 아기까지 일단 사랑에 빠지면 모두가 유치하고 뻔해진다. 극중 태일과 호정도 마찬가지다. 다른 남녀처럼 연애한다. 하지만 시작은 그리 평범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재미가 있는 거다. 그 감정의 진실함을 보여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거라 판단했다.

▲남녀의 사랑 외에도 가족애 등 사랑에 대한 다양한 감정이 담긴 영화더라.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남녀의 사랑 외에도 가족에 대한 사랑, 특히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마음에 와 닿았다. 태일이 야윈 아버지의 다리를 주무르는 장면에서는 나도 울컥했다. 뼈밖에 없는 앙상한 다리를 잡는 순간 눈물이 쏟아지더라. 정작 우리 아버지의 다리는 한번도 만져본 적이 없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 장면을 찍으며 나 역시 색다른 경험을 한 것 같다.

▲'남자가 사랑할 때' 뿐만 아니라 '행복'과 '너는 내 운명' 등 멜로 영화 속 황정민이 맡은 캐릭터는 왜 항상 몸이 아플까?

=원래 사랑을 하면 아픈 거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통속작을 쓰는 작가들이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멜로물이 많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통속적인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이 아닐까. 새로운 이야기를 다룬 멜로물이 나온다면 좋은 본보기가 될 텐데 그런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추격자' 이후 좋은 스릴러가 물밀 듯이 나오듯 멜로물도 그런 계기가 필요하다.

▲'신세계'와 '남자가 사랑할 때'는 같은 제작사다. 작품을 선택할 때 의리를 중시하는 편인가.

=안 하면 때리니까.(웃음) 물론 작품 선택할 때 의리는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한재덕 대표와는 '신세계' 전 '부당거래'도 함께 했기 때문에 죽이 잘 맞는다. 이런 좋은 팀과 계속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내 복이다. 작품의 흥행은 관객들의 몫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작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 또한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함께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도 굉장히 중요하다.

▲역시 같은 제작사와 함께 하는 '신세계2'는 잘 진행되고 있나.

=프리퀄 무비가 될 것이다. '신세계'의 7년 전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30대 초반의 모습으로 등장해야 한다. 그런데 내 나이가 이미 40대 중반이다. 어떻게 연기를 하라는 건가?(웃음) 박훈정 감독한테 시나리오 좀 빨리 쓰라고 그랬다. '신세계' 제작진이 1명도 빠짐없이 모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한다. 한동욱 감독이 '남자가 사랑할 때'로 정식 감독 데뷔를 했는데 '신세계2'를 찍을 때는 전편 때와 같이 조감독을 맡아야 한다, 하하.

▲지난해 '신세계'가 개봉된 이후 황정민이 연기한 '정청'의 인기가 대단하다. 부담되진 않나.

=상관 없다. 그런 부담을 좀 받으면 어떤가? 두 캐릭터 모두 황정민이라는 배우가 연기하기 때문에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태일은 태일 만의 색이 있다. 하물며 한 배 속에서 나온 쌍둥이도 다른 구석이 있지 않나.

▲황정민이 충무로에서 다시 각광받고 있나. 그 공기를 체감하나.

=그런가? 나는 '너는 내 운명' 이후 지금껏 항상 각광받는 줄 알고 있었다, 하하. 나는 꾸준히 작품을 해왔는데 '신세계'라는 작품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배우로서 너무 행복한 일이다. 나는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숀펜 등이 출연하는 영화는 무조건 보는데 요즘 내게도 그런 말을 해주는 관객들이 있다. '내가 그런 배우가 됐나'라고 스스로 놀라며 '10년 넘게 연기를 허투루 하지는 않았구나' 싶어 다행이다. '궁디 팍팍' 해주고 싶다.

▲요즘 충무로에서 70년 개띠 배우들의 활약이 대단하다. 따로 사모임도 갖나.

=(정)재영이, (류)승룡이 다 대학 동기들이다. 하지만 시상식장 등에서 오가다 만나면 인사를 나누는 정도지 따로 만날 기회는 많지 않다. 나는 학교 다닐 때는 극장 스태프였기 때문에 연기할 기회가 없었다. 나 역시 배우가 될 지 몰랐다. 동시간대 활동하는 동갑내기 배우들의 이름 석자를 관객들이 안다는 건 기쁜 일이다. 같이 잘 늙었으면 좋겠다. 내가 만약 제작자라면 이 배우들을 모아서 좋은 영화를 한 편 찍고 싶다.



안진용기자 realy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