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노해 사진전 '다른 길'

노래하는 다리(버마)
한국 사회와 문단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던 박노해의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이 나온 지 올해로 30년이 됐다.

이 시집으로 박노해는 당대 혁명가, 민주투사로 각인됐고 이후 '전설'로 남았다.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으로 무기징역에 처해져 7년 6개월의 수감 끝에 석방돼 그의 길을 가기까지.

박노해는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사회적 침묵을 하며 '생명ㆍ평화ㆍ나눔'을 기치로 '다른 길'을 갔다. 그에게 '변절자'라는 비난도 뒤따랐지만 묵묵히 그만의 길을 갔다.

무려 15년, 박노해는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나미 등 가난과 분쟁 현장에서 평화활동을 이어왔다. 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로 기록해온 사진들을 모아 2010년 첫 사진전 '라 광야'전과 '나 거기에 그들처럼'전을 열었다. 그리고 올해 아시아 사진전 '다른길'을 2월 5일부터 3월 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본관에서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티베트, 파키스탄, 인도, 버마, 라오스,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분쟁과 빈곤 지역에서 촬영한 120여 작품들로 꾸몄다. 박노해는 이 사진전을 정직한 절망에서 길어 올린 희망 찾기의 기록들이라고 말한다.

남김없이 피고 지고(티베트)
"한 시대의 끝간 데까지 온몸을 던져 살아온 나는, 슬프게도 길을 잃어버렸다. 이 체제의 경계 밖으로 나 스스로를 추방시켜, 거슬러 올라 길을 찾아 나서야 했다. '앞선 과거'로 돌아 나오고자 하는 기나긴 유랑길이었다. "

박노해는 우리 시대 최대 비극은 삶의 목적인 삶 자체를 삶의 수단 확보를 위해 낭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라고 간파한다. 학교를 오가는 중고생들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걸음으로 출퇴근길을 나서는 직장인들도, 자영업자도, CEO도 모두가 마음 속에 '다른 길'을 품고 있다고.

그래서 "미래는 없다, 오직 희망만이 있을 뿐"이라고 하는 박노해는 '좋은 삶의 원형'과 '희망의 종자'가 가장 풍부하게 남겨진 땅이 아시아라고 전한다.

박노해는 인간에게 위대한 일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사는 것, 사랑하는 것, 죽는 것이다. 그는 이번 사진전을 통해 아시아 토박이 마을의 이름 없는 사람들의 '위대한 일상'의 경이를 나누고 싶다고 한다.

"눈부시게 진보하는 세계와 멀어져 사람들 눈에 띄지도 않는 험난한 곳에서 자급자족의 삶을 이어온 전통마을 토박이들. 자신이 무슨 위대한 일을 하는지 의식하지도 않고 인정받으려 하지도 않고, 인류를 먹여 살릴 한 뼘의 대지를 늘려가고자 오늘도 가파른 땅을 일구어가는 개척자들. 이들이야말로 이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지구인류 시대의 진정한 '삶의 전위'이다."

화산의 선물(인도네시아)
그러면서 "그들은 내 안에 처음부터 있었지만 어느 순간 잃어버린 나 자신의 모습이다"고 고백한다.

박노해는 스스로 정의하는 실패는 단 하나, 인생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 살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아시아 유랑에서 터득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 인생에는 각자가 진짜로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 나에게는 분명 나만의 다른 길이 있다. 그것을 잠시 잊어버렸을지언정 아주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길을 찾아 나선 자에게만 그 길은 나를 향해 마주 걸어온다."

사진전 '다른길'은 박노해의 깊은 경험과 깨닳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4일 만난 박노해는 "사진을 통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익숙한 문명 세계의 확실성의 관념이 돌연 낯설어지고, 내 안에 숨겨져 있는 근원적 소망이 깨어나면서 우리 앞에 '다른 길'이 열리는 것을 경험하면서 나 또한 다르게 살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되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다.

밀밭의 빵 굽는 시간(파키스탄)
한편, 가수 윤도현과 이효리, 배우 황정민ㆍ배수빈ㆍ조재현ㆍ박철민ㆍ장현성ㆍ김상중, 방송인 김제동, 개그맨 김준현, 그리고 연극배우로 나선 방송인 유정아까지, 각 분야의 정상급 스타들은 '다른 길' 사진전에 전시될 120여 컷의 사진 중 자신들 마음에 와 닿는 사진을 골라, 박노해 시인이 직접 쓴 사진 소개글(캡션)을 낭송해 사진의 감동을 전하는 영상제작에 참여했다. 2월 16일과 24일 오후 7시에는 1회 70명에 한해 작가와의 대화가 있다. 02-734-1977.


인디고 블루하우스(인디아)
디레 디레 잘 레 만느(인디아)
고원의 쟁기질(티베트)

박종진기자 jj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