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관능의 법칙'나이가 부각되는 영화라 한때 망설여… 사랑과 사람 이야기에 매료돼 출연조민수·문소리와 촬영 중 수다 즐거워… 날 완전히 불태울 수 있는 작품 없나요

여성의 변신은 무죄라 했던가? 그래서인지 여성들은 연령대 별로 변신한다. 10대가 풋풋했다면 20대는 만개하고 30대는 무르익는다. 그렇다면 40대는? '관능적이다'는 표현보다 큰 칭찬이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영화 '관능의 법칙'(감독 권칠인ㆍ제작 명필름)의 주인공으로 배우 엄정화가 제격이다. 시간의 흐름과 매력의 크기가 비례하는 엄정화 없이 어찌 40대 여성들의 관능을 논할 수 있으랴.

그래서 권칠인 감독은 영화 '싱글즈' 이후 10년 만에 다시금 엄정화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여기에 '건축학개론'과 '시라노: 연애조작단' 등으로 유명한 명필림의 심재명 대표가 엄정화에게 손을 내밀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손이었다. 이들이 합작해낸 '관능의 법칙'은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중ㆍ장년층까지 아우를 수 있는 '19금 영화' 한 편이 탄생했다.

▲40대 전후 관객이라면 누구나 무릎을 치며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처음 시나리오를 본 소감은 어땠나.

=시종일관 키득거리며 봤다. 내가 맡은 역할의 에피소드도 좋지만 문소리의 이야기도 참 재미있더라. 많이 공감 갔다.

▲'40대'라는 나이가 부각되는 영화라는 점이 부담스럽진 않았나.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거다. '나이가 전면에 드러나는 영화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 인터뷰에서도 항상 나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관능의 법칙'은 보편적인 사랑과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이야기에 매료돼 출연을 결정했다.

▲극중 '연하남'과의 쉽지 않은 사랑을 보여준다. 실제 엄정화라면 어떻게 하겠나.

=남녀의 만남에서 나이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 (웃으며)물론 영화 속에서처럼 나이차가 크면 일단 고민은 해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결국은 사랑 아니겠나? 서로 사랑하고 있는데 어떤 장벽 때문에 뚝 자르고 장벽을 세우진 않을 거다. 인생 뭐 있나? 짧은 인생 마음껏 즐기고 사랑하는 것만 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겠나.

▲'싱글즈'에 출연한 30대 엄정화와 '관능의 법칙'의 엄정화는 어떻게 다른가.

=그 때나 지금이나 앞 날을 걱정하고 준비한다는 점은 똑같다. 그런데 세월의 흐름 때문인지 지금의 나는 마음이 폭넓어진 동시에 감정이 풍부해진 것 같다. 그래서 예전보다 덜 두렵고 더 도전하고 싶다. 항상 한 단계 더 도약하고 싶은 마음이다.

▲지난해 '몽타주'로 영화제 여우주연상까지 받은 여배우의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간단하다. 좋은 작품을 만나는 거다. 이건 모든 배우들이 갖는 고민이다. 배우로서 큰 만족감을 느끼고 싶은데 항상 아쉽다. 어떤 작품을 만나 '나를 완전히 불태웠다'는 생각이 들길 바란다.

▲그렇다면 '관능의 법칙'에서는 어떤 보람을 얻었나.

='관능의 법칙'은 설정이 필요 없는 영화였다. 편한 친구들을 만나 솔직한 대화를 나누듯 가벼운 마음으로 촬영했다. 그런 부분이 내게 힐링이 됐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편하게 들려주자는 마음이었다.

▲카메라 뒤 엄정화-조민수-문소리의 관계는 어땠나.

=영화 속에서는 절친한 사이지만 실제로는 함께 촬영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함께 촬영할 때는 두 번 정도 회식을 했다. 동시대에 연기를 해왔다는 동질감 때문에 만나면 할 이야기가 참 많았다. 셋이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좋은 에너지를 나누는 기분이었다.

▲요즘 충무로에는 남성 위주 영화가 많다. 여배우로서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나.

=영화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남자 배우들이 많이 출연한 '인사동 스캔들'을 찍을 때는 외로웠다.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몽타주'를 촬영하면서는 김상경과 굉장히 즐거웠다.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영화 촬영 현장이 거의 '수다방' 수준이었다.(웃음)

▲영화에서 베드신에도 도전했다.

=노출 수위가 셀 필요가 없는 장면이었다. 코믹한 분위기 속에서 기분 좋게 흘러가는 장면이라 큰 부담은 없었다. 전체적인 영화의 색과 타당하게 어울리고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베드신이라면 언제든 응할 생각이다. 하지만 영화 전체의 맥락이 아니라 베드신만 따로 편집을 하거나 캡처 사진을 악용하는 경우가 있어 아쉽다. 여배우서 참 괴로운 일이다.

▲엄정화가 생각하는 '관능의 법칙'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에는 40대가 되면 아줌마가 되고, 가족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무서운 고정관념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여성들이 스스로 여성성을 지켜야 한다. 자신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관능을 일깨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 '내가 이 나이에 무슨 사랑'이 아니라 '난 언제든 사랑에 올인 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배우 엄정화의 다음 행보는 어떻게 되나.

=대한민국에서 20년째 배우로 살고 있다. 영화를 찍고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등 많은 환경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돌아보면 새로운 작품에 출연할 때마다 새로운 마음가짐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배우로 살 수 있는 이 상황에 감사한다. 난 내 일을 정말 사랑한다. 난 진짜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안진용기자 realy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