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가네 식구들' 종방극중 '개소리' 한때 망설여… 이젠 30대, 다양한 역 해볼것"며느리 오디션, 파장 예상했다"… 출연 작품중 시청률 최고

지난 7개월 간의 여정은 꽤 시끌벅적했다. 개 소리를 내는 괴상한 애정행각을 보여줬고, 만취해 주정을 부렸으며, 며느리 오디션을 봤다. 그 사이 5kg의 체중이 감량됐고, 동그란 눈은 더 커졌다. 지난 달 16일 KBS 2TV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극본 문영남ㆍ연출 진형욱ㆍ이하 왕가네)을 끝낸 배우 이윤지다.

그는 극 중 왕씨 집안의 셋째 딸 왕광박 역을 맡았다. 최상남 역의 한주완과 함께 젊은 시청자들을 안방으로 끌어왔다. 시청자들은 두 사람의 풋풋한 사랑에 설ㄹㅔㅆ고, 힘겹게 결실을 이루는 과정을 응원했다.

'왕가네'는 자극적인 소재와 황당한 전개로 방영 내내 구설에 올랐다. 시청률은 경이로웠다. 48.3%라는 놀라운 자체 최고 시청률(닐슨코리아 전국기준)을 기록했다. 이윤지에겐 인생에 대한 지혜를 깨우치고, '인생의 설계도'를 그려보게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국민의 절반이 본 드라마를 마무리한 소감이 어떤가.

=얼떨떨하다. 지금은 볼만한 채널도 많고, 오락거리도 많은 시대다. 그런데 칭찬 받을 만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 일원이 돼 영광이다. 내 작품 중 숫자로 가장 높은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 이름을 모르는 중장년층 시청자들도 극 중 이름은 아시더라.

▲반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드라마였다. 극 중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하면서 연기했나. 광박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상남(한주완)의 아버지 대세(이병준)가 며느리 오디션을 개최하고, 광박은 여기에 참여한다.

=며느리 오디션에 기꺼이 참여할 만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어떤 건가 싶었다. 주변에서 많은 이야기가 있긴 했다. 반면 나는 드라마를 드라마로 봐서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크게 놀라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연기해야 하는지 살폈지, 며느리 오디션 자체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다만 사람들이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이겠구나 예상했다. 광박이는 주어진 일을 피하지 않고 돌파하는 사람이다. 또 실제 결혼을 하면 며느리 오디션 뺨치는 일들이 벌어진다. 며느리 오디션은 결혼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극적으로 표현한 장치라고 생각했다. 진짜 결혼해서 살면 더 어마어마한 일들이 있지 않나.

▲등장인물들의 30년 후를 희극적으로 보여준 결말은 어떤가.

='왕가네'다운 결말이다. 그다지 평범하지 않은 드라마였기 때문에 평범한 결말을 맞이했으면 오히려 아쉬웠을 것이다. 설정은 황당할 수 있지만, 대사들이 기가 막혔다. "모든 것을 이루진 못했지만 그 과정이 참 행복했다"는 대사로 마지막 신이 끝났다. 이 대사처럼 '왕가네'는 집약적으로 삶의 과정을 그리는 드라마였구나 싶었다. 평범한 집안에서 일어난 특별한 사건들이었다.

▲작품이 자연인 이윤지에게도 영향을 준 것 같다. 가족관이나 결혼관이 달라졌나.

=바뀌지 않을 수 없다. (웃음) 극 중에서 순수한 사랑도 하고, 혹독한 시아버지도 만났다. 이번만큼 가족, 특히 어머니와 대화를 많이 한 작품도 없었다. 이야기할 거리가 정말 많았다. 혼수나 예단 등 결혼과 결혼 생활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화를 했다. 엄마라는 존재와 역할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 엄마가 되는 건 대단한 일이구나 하고 새삼 느꼈다. 엄마는 자식을 낳는 것뿐만 아니라 집안을 다스리는 사람이지 않나. 일과 사랑도 중요하지만, 가족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배우들은 가능한 주중 미니시리즈를 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왕가네'는 주말극이고, 극 중 캐릭터는 개소리가 트레이드마크가 될 만큼 망가질 때도 있다. 두려움은 없었나.

=고민한 적도 있었다. 하고 싶은 역할이나 미니시리즈의 여주인공과 주말극의 여주인공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시각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배우는 '배워서' 배우라고 하지 않나. 배워가는 가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것이지, 어떤 장르나 배역만 고집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해낼 몫이 작품에서 확고하다면 분량이나 장르를 불문하고 많은 작품을 해보는 것이 결국 나에게 도움이 된다. 좀 더 어렸다면 달리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나이를 의식하게 되는 건가.

=20대 시절엔 빨리 30대가 되고 싶었다. 30대에 접어드니 바라보는 분들의 눈빛이 달라진 것 같다. 마냥 어리지 않은 배우로 봐주셔서 기쁜 한편, 책임감이 늘어났다. 맡는 배역의 나이도 조금씩 들어가고 있어 신기하다.

▲한주완, 조정석, 강인 등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에서 호흡을 맞춘 상대역들과 환상적인 조화를 보여줬다. 비결이 있다면?

=다들 좋은 상대역이었다. 비결이 있다면 상대를 전적으로 믿는다는 것이다. 고집부리지 않는다. 상대방의 연기가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를 받아들이고자 한다. 제 느낌이나 생각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극 중 광박이는 결국 꿈도 사랑도 이룬다. 이윤지의 꿈과 사랑은?

='왕가네'를 하면서 꿈과 사랑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서른 맞이 이벤트'가 됐다. (웃음) 배우라는 직업을 처음 택했을 때 평생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반짝이는 인기나 화려함 때문이 아니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롤모델을 찾았다. 김해숙-나문희 선생님이다. 두 분을 한 작품에서 뵐 수 있어 행복했고, 좋은 계기였다. 나문희 선생님이 출연한 영화 '수상한 그녀'를 보면서 많이 느꼈다. 내가 조급하게 욕심을 낸다고 선생님의 눈빛을 따라 할 수 없겠구나 싶더라. 20대를 지나는 일이 어쩔 수 없었던 것처럼, 매번 조급하게 생각해서는 금방 지칠 것 같다. 선생님 두 분처럼 여유로움을 지닌 배우가 되고 싶다. 또 서로를 기대하게 만드는 좋은 사람을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싶다.



김윤지기자 ja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