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통영’을 예술로 풀어낸 김재신 작가가 지난 2월 부산 전시에 이어 서울 강남 청담동의 갤러리 두(DOO)에서 3월 4일부터 27일까지 통영의 ‘동피랑’ 마을을 중심으로 또 다른 통영을 이야기한다.
통영 출신인 김 작가는 ‘조탁(彫琢)’이라는 특별한 표현 기법으로 ‘새로운 통영’을 창출하고 있다. 캔버스가 아닌 목판에, 조각칼을 이용해 색의 질감을 조절하고 다시 그 위에 색을 칠하는 조탁 기법은 자연스레 회화적 요소에 판화적인 요소가 접목돼 새롭고 독창적인 작가의 양식으로 거듭났다.
김 작가가 붓 대신 조각칼을 든 것은 2005년쯤 전시를 준비하면서다. 밥그릇과 연탄을 소재로 작업하면서, 어쩌면 그 이전 반추상 작업을 할 때부터 느꼈던 알 수 없는 답답함이 그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밥그릇 작업들을 하고 연탄 작업들을 하면서 물론 그 이전의 반추상 작업들 그 진행 중에도 갈증은 끊임없이 목구멍을 퍼썩 마르게 했고, 이 풍경 작업 역시 그 건조한 싫증을 이기지 못하고 손을 놓게 될 지도 모른다”(작가노트)
그에게 ‘통영’작업은 현재 삶의 전부가 되고 있다.
“통영의 오밀조밀한 예쁨을 붓이 아닌 조각칼로 그 색, 그 모양을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가 나에게는 치유이자 종교이자 놀이다.”
김 작가는 올해 통영에 더욱 취할 모양이다.
“2014년에도 수없이 입혀진 색들이 칼 끝에서 제 몸을 일으켜 만들어낸 바다의 빛으로 맘껏 흥겨워 하련다.”
예술의 힘으로 살아남은 동피랑 마을은 김 작가에게도 각별하다.
“어릴 때 본 동피랑은 제일 먼저 햇살이 비치고 항상 해가 떠 있는 동네였다. 지금도 마음의 고향 같은 공간이고, 힘든 가운데서도 늘 사람 냄새가 나는 정겨운 공간이었다.”
김 작가는 그런 동피랑의 이야기를 작품 속에 새겨 넣었다. 목판 위에 스무 번, 서른 번 물감을 덧칠하고 조각도로 파내면 깊이에 따라 켜켜이 쌓인 색을 드러낸다. 이러한 조탁 기법을 통해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통영 바다의 기기묘묘한 물빛이 섬세하게 표현되는가 하면, 화면 한쪽에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작은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투박하게 새겨지기도 한다.
작품에서 두드러진 것은 햇살과 이를 머금은 바다의 물빛이다. 작가는 동피랑 마을의 햇살에서 ‘원초적인 따뜻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가 화업 초기에 시도한 밥그릇 작업과 연탄 작업의 근저 역시 인간 사이의 내밀한 따뜻함이다. 그렇다면 작가에게 동피랑은 오래전부터 내재했던 셈이다. 그리고 붓이 아닌 조각칼의 부지런한 움직임을 통해 만개하고 있다.
이는 작년 5월 SOAF 서울오픈아트페어에서 출품한 작품이 모두 팔린 것이나 국내를 비롯 홍콩과 뉴욕 등 해외 전시 일정이 예정돼 있는 것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 김 작가의 보편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예술성이 평가받은 결과다. 02-3444-3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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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기자 jj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