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여기가 집이다'

'여기가 집이다' 공연 장면
‘집’의 의미를 물어 삶을 성찰하다

최근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25.9%가 1인가구로 4가구 가운데 1가구가 식구 없이 혼자 사는 ‘홀로족’인 셈이다. 오는 2035년에는 1인가구가 무려 34.3%인 762만8,000가구로 전망되고 있다.

이러한 주거형태, 삶의 양식이 바뀌는 추세 속에 집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연극 ‘여기가 집이다’가 관객들의 호응으로 롱런하고 있다.

극단 이와삼의 대표 장우재 연출의 ‘여기가 집이다’는 지난해 초연돼 제6회 대한민국 연극대상에서 대상과 희곡상을 받고, 올해의 연극 베스트 7에도 선정된 화제작이다. 이는 가공의 이야기가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우리네 삶의 면면을 무대 위에 호소력 있게 펼쳐 보인데 따른 것이다.

작품의 배경은 20년 전통의 갑자 고시원이다. 주인의 뜻에 따라 방값도 다른 고시원의 절반 이상 싼 이곳에는 거처할 집이 없어 부유하는 사람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장씨와 최씨, 양씨, 영민 등 고시원 사람들은 모두 사회로 귀환하는 것을 꿈꾸지만 그러기까지 주인의 뜻에 따라 규칙적인 생활을 반복한다.

그런데 죽은 할아버지로부터 고시원을 물려받은 손자 동교가 새 주인이 되면서 고시원 사람들의 일상은 송두리째 변화를 겪는다. 동교는 “월세를 받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을 하는가 하면, “한집에 사는 식구”라며 식사를 함께하고 ‘금녀’의 규칙까지 깨버리고 최씨와 양씨의 부인까지 새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집주인과 세입자 혹은 세입자와 세입자라는 기존 관계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해체되면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간다.

이는 혈연 사이가 아니라도 이웃이 가족이 되는 오늘의 현실에 비춰 ‘집’의 본원적 기능과 의미를 묻게 한다. 아울러 개인화, 파편화돼가는 사회에서 ‘가족’ 또는 ‘더불어 삶’이라는 공동체적 가치를 환기시킨다.

작품에서 장씨는 동교와 상징적인 대비로 맞선다. 고시원 사람들이 동교가 주는 월급에 만족해 하며 현실에 안주하는 반면 가장 연장자인 장씨는 이를 거부한다. 돈에 굴복당해 어린 학생에 빌붙어 사는 삶을 부끄러워하고 분노한다. 장씨는 돈에 길들여진 현재의 삶은 결코 희망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렇듯 작품은 물신주의에 지배되고 속도 경쟁에 내몰린 현대인들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특히 손자 동교와 장씨의 갈등을 통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는 경계적 삶이 우리들의 진짜 모습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집, 희망, 공동체, 물신주의 등 다양한 메시지는 다소 무거울 수 있으나 때로 익살스러운 전달과 배우들의 캐릭터에 대한 친화력 있는 표현으로 빠르게 가슴에 와닿는다. 무게감 있는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배우 김세동(장씨)을 비롯해 한동규(양씨), 김충근(최씨), 박무영(최씨처), 김동규(영민), 강병구(동교) 등 배우 10여명은 세밀하고 예리하게 호흡을 맞춘다.

이번 작품은 2013년과 달리 몇몇 설정과 디테일이 살짝 바뀌어 이를 새롭게 발견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끊임없는 문제제기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삶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연극 ‘여기가 집이다’는 서울 연우소극장에서 5월25일까지 이어진다. 02-3676-3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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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기자 jj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