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30대 중반이 눈 앞… 결혼 이야기만 나오면 "후유∼"극중 '평범녀'에서 '강단녀'로 사건별 캐릭터 변화 완벽 소화12년만의 장혁과 '달팽이 커플'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하늘하늘한 몸매가 눈에 띈다. 연약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조곤하게 자신의 생각을 읊조리는 모습에서 여배우로서의 강단이 느껴진다. 배우 장나라(33)다. '동안미녀'의 주인공으로 가장 적격한 인물로 꼽힐 만큼 어린 미모를 자랑하는 그지만 어느덧 30대 중반을 눈앞에 뒀다. '결혼' 이야기를 꺼내자 "내가 이 나이까지 이럴 줄 몰랐다"며 절망하는 모습이 사뭇 친근하다.

지난 4일 종영한 MBC 수목미니시리즈 '운명처럼 널 사랑해'(극본 주찬옥·연출 이동윤, 이하 운널사)에서 섬마을 출신에 외모, 학벌, 능력 등 내세울 것 하나 없는 '평범녀' 김미영을 연기한 장나라를 최근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만났다. 경쟁작이었던 SBS '괜찮아, 사랑이야'와 KBS 2TV '조선총잡이'와의 대결에서 괄목할만한 성적을 거둔 만큼 그의 얼굴도 밝아보였다.

"경쟁작들이 너무 쟁쟁했어요. 저도 쉴 때 드라마를 엄청 보는데 만약 쉬었다면 다 챙겨서 봤을 정도로 모두 재미있는 드라마더라고요. 시청자들이 다양하게 골라서 볼 수 있었을 것 같았죠. 시청률이 생각보다 안 나왔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던데 저는 잘 나왔던 것 같아요.(웃음)"

극 초반 미영은 직장에서 '포스트잇 걸'이라 불리며 주위 사람들의 온갖 잡다한 일을 도맡았다. 우연찮게 이건(장혁)과의 하룻밤 실수로 임신을 하고 나서도 그에게만큼은 끝까지 임신 사실을 함구했다. 한없이 착하고 여린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런 미영은 건이와의 결혼, 유산 등 일련의 사건 등을 통해 강단 있는 여인으로 변한다.

"미영이라는 캐릭터는 평범함으로 시작해서 큼지막한 사건별로 감정이 흘러가는 캐릭터예요. 평범함을 표현하기가 힘들었어요. 자칫하면 요즘 사람들이 바라보는 여성 캐릭터와는 너무 동떨어진 모습을 하고 있을까봐 걱정됐죠."

그는 처음부터 "너무나도 착한 미영이의 감정이 버거웠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렇지만 거의 판타지에 가까울 정도로 착한 미영의 성격이 이 드라마를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두 가지를 생각했어요. 미영을 연기하면 여자아이 같은 모습에서 사랑에 빠지고 또 엄마가 되는 모습까지 다양하게 연기할 수 있을 거 같았죠. 또 다른 이유는 미영이 같은 친구가 우리 주변에도 분명히 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착한 친구들을 바보, 멍청이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더 이상 착한 것이 덕이 아닌 세상이 됐잖아요? 그런 친구들이 손가락질 당하고 하대받지 않는 판타지를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사실 평범녀 역할은 장나라에게만큼은 특이한 역할은 아니다. 그는 MBC 시트콤 '뉴 논스톱' 이후 주로 어딘가 모자라지만 지켜주고 싶은 캐릭터를 연기했다. 식모살이를 하는 여고생 차양순('명랑소녀 성공기')부터 놀이공원 인형탈 아르바이트생 양송이('내 사랑 팥쥐'), 임시직 디자이너 이소영('동안미녀'), 계약직 교사 정인재('학교2013') 그리고 '운널사' 김미영까지, 그가 줄곧 연기해온 역할은 비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역할을 선택할 때 여태까지 해왔던 것과 겹치는가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여태껏 제가 맡은 역할을 보면 착하고 남자복도 있고 여차저차해서 일복마저 터진 캐릭터들이었어요. 그런데 저도 그 안에서 계속 몸부림 치고 있었어요. 조금씩, 어떻게든 다르게 해보려고 노력했어요. 현실적으로 저한테 손바닥 뒤집듯이 색다른 역할들이 들어오지는 않아요. 저는 그저 제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아요."

"공감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라고 의외의 고백을 한 그는 "가짜로 연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최대한 이 캐릭터를 사랑하려고 애썼다"고 전했다.

'명랑소녀 성공기' 이후 12년 만에 호흡을 맞춘 장혁과는 '달팽이 커플'로 불리며 환상의 호흡을 과시했다. 다소 튀는 장혁 캐릭터와 어딘가 의기소침해 보이는 장나라 캐릭터는 함께 있을 때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냈다. 두 사람은 달달함과 달콤함을 오가는 로맨스 연기로 '역대급 로맨틱 코미디'라는 호평을 얻기도 했다.

"장혁 선배와 12년 전에 함께 했을 때는 대화 자체가 없었어요. 당시에는 씻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잤어요. 거의 학대 수준으로 촬영을 이어나갔죠. 그래서 얘기도 못 나누고 어떤 분인지도 잘 몰랐죠. 이번에는 달랐어요. 촬영하면서 대화도 많이 나누고 작품에 대해서 수다 떨듯이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잘 맞고 너무 좋았어요. 연기자로서 배울 점이 너무 많아요. 촬영이 끝난 뒤 제가 의형제를 맺자고 했죠.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고 했어요. 여러모로 누군가한테 롤모델이 될 수 있는 분이죠. 호흡이요? 100점 만점에 100점이에요. 점수가 하늘을 뚫고나간다면 나갈 수 있을 거예요."

2001년 데뷔해 어느덧 데뷔 13년차를 맞이한 그지만 연기 욕심은 대단하다.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 세 가지 있다"며 술술 이야기를 풀어냈다.

"첫째는 드라마 '다모'에서 하지원 선배가 맡았던 역할이고, 둘째는 드라마 '히트'에서 고현정 선배가 했던 역할이에요. 두 선배의 에너지가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마지막으로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추노'에서 장혁 선배가 했던 대길이 역할이에요. 펄떡펄떡 뛰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런 에너지가 드는 역할은 나이가 들어서는 시도도 할 수 없을 것 같거든요."



조현주기자 jhjdh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