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무명' 극복, 국민 여동생으로단발머리에 꽃무늬 패션… 파격적이지만 시청자에 친근감전라도 사투리 연기 가장 힘들어 에너지 넘치고 건강한 역할 자신

밝고 쾌활하다. 나긋나긋 이야기를 하다가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이 상대방까지 기분 좋게 한다. 옆집 동생처럼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매력의 소유자 배우 오연서(27)다.

지난 12일 막을 내린 MBC 주말극 '왔다 장보리'(극본 김순옥·연출 백호민)에서 첫 타이틀 롤을 맡은 오연서를 최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홀가분한 미소를 자주 지었다. 52회라는 긴 호흡의 드라마를 성공리에 끝마친 뿌듯함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미소였다.

"후유증이요? 드라마가 끝났는데도 아직 말투에서 사투리 억양이 묻어나오고 있어요. (장)보리가 너무 착한 캐릭터였잖아요. 확실히 마음이 차분해졌어요. 참을성도 많아졌고요. 실제로도 약간 착해진 기분이랍니다."

극 중 장보리는 어릴 적 기억을 잃고 다른 사람의 딸로 살아간다.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는 양딸이지만 씩씩하고 당차다. 콧구멍을 실룩대며 개그맨 흉내를 낸다. 촌스러운 단발머리에, 꽃무늬 패션을 즐기기도 한다. 여배우로서는 다소 파격적이었지만 시청자들에게는 친근함을 안겼다.

"작품에서 망가지는 거는 전혀 두렵지 않아요. 충분히 예쁘게 만들어주시거든요. 극중 보리가 우악스러운 행동을 많이 했는데 귀여워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사실 예쁘게 나오면 피곤해요. 화장을 하는데도 오래 걸리고, 하이힐을 신고 계속 촬영해서 힘이 들거든요. 보리가 후반에 세련되게 나왔는데 그걸 보고 남편 역을 맡은 (김)지훈 오빠가 등골이 휘겠다고 하더라고요.(웃음)"

큰 인기를 누린 드라마의 주인공인 만큼 뿌듯한 순간도 많아진다. 병원 촬영이 있던 날 한 팬이 "'장보리'만 기다린다"는 말은 오연서에게 큰 힘을 안겼다. 자신의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정말 대단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낀 경험이었다.

늘 밝고 긍정적인 장보리였지만 시청자들에게는 답답함을 안긴 순간도 많았다. 악녀 연민정(이유리)의 악행에 분노만 할 뿐 제대로 된 복수 한번 하지 못했다. 연민정과 함께 자신을 속인 양엄마 도혜옥(황영희)의 억지에도 그저 전전긍긍할 따름이었다.

"'인내심의 아이콘'이라고 불렸어요. 어떤 분들은 보리를 보살, 예수라고 표현하더라고요.(웃음) 모든 걸 다 용서하는 캐릭터였잖아요. 이해가 됐냐고요? 이해하지 못했다면 연기를 하지 못했겠죠.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연민정이 엄마의 치부를 밝힌다 하고 딸 비단이에게 상처를 준다고 협박하는데 보리로서도 딱히 방법이 없었을 것 같았죠. 많은 분들이 답답해 하긴 했지만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보리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가장 어려웠던 점은 경상도 출신으로서 전라도 사투리를 써야 하는 점과 모성애 연기를 펼쳐야 했던 것. 김순옥 작가는 오연서에게 사투리는 몇 회 안 넣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나 극이 끝날 때까지 보리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 그에게는 전담 사투리 선생님이 있었다. "거의 매일 같이 붙어서 연습"하다가 식음을 전폐하기도 했지만 그는 "지금은 고맙다. 사투리 때문에 많은 시청자들이 나를 더 친근하게 봐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비단이 역의 김지영이 정말 자신의 딸 같다고 했다. 실제로도 호칭은 엄마와 딸. 그는 "매일같이 보다가 갑자기 못 볼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아팠다"며 "촬영 날에 생일이 있었는데 지영이가 드라마 시작하면서 모은 용돈으로 내 휴대전화 케이스를 사줬다.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오연서는 2002년 걸그룹 LUV로 데뷔했다. 전혜빈과 함께 활동했지만 주목을 받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흐지부지 걸그룹 생활을 접고 연기로 눈을 돌렸다. 2003년 '성장드라마 반올림#1'에 출연했지만 여기서도 대중의 눈도장을 찍지 못했다.

2012년 KBS 2TV 주말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으로 10년 무명의 서러움을 털어냈다. 얄밉지만 귀여운 시누이 방말숙을 실감나게 연기하며 그는 '국민 시누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후 MBC 일일극 '오자룡이 간다', 수목미니시리즈 '메디컬 탑팀' 등에 출연하며 주연급 배우로서 활약을 펼쳤다. 지난해 '우리 결혼했어요 시즌3'를 촬영하면서 열애설이 불거졌고, '메디컬 탑팀'의 저조한 시청률로 한 차례 위기를 겪나 했으나 "배우는 연기로 보여준다"는 만고의 진리처럼 그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보리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다들 10년 무명 때, 또 스캔들이 불거졌을 때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봐요. 그런데 저는 담담해요. 무명 때는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여러 경험들을 했어요. 제 청춘의 일부죠. 누구나 20대는 방황해요. 좌절도 하고 이 길이 내 길인가 고민하기도 하죠. 그런 경험과 고민들이 지금 연기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그는 '왔다 장보리'를 시작이라고 정의했다. 아직 네티즌과 시청자들이 연기에 대해 날선 평가를 내리지만 그는 성장의 과정이라 여겼다. 차기작은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역할로 돌아오고 싶다고 전했다.

"다음에도 밝은 모습으로 시청자들 앞에 서고 싶어요. 에너지 넘치고, 건강한 역할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연기적인 모습 중에 제일 편하기도 하고 또 그런 역할이 제 몸에 잘 맞는 거 같아요."



조현주기자 jhjdh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