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영화?' 색안경 끼지 마세요!'고발ㆍ주장' 하기 위한 영화 아닌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예요저도 노조에 대한 선입견 깨졌죠… 작품마다 승승장구… 흥행도 기대

"'카트'를 통해 법을 바꾸거나 사회를 뒤집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그저 어떤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셨으면 해요. 이건 단순히 뉴스에 나오는 어떤 분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엄마, 이모 혹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죠. 타인에게 귀를 기울여주세요. 그것에 이 작품의 진짜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 문정희가 출연한 영화 '카트'(감독 부지영ㆍ제작 명필름)는 사실 만만한 작품이 아니다. 과거 모 대형마트에서 벌어진 여성 비정규직 직원들의 마트 점거사건과 노동계에서 일어났던 여러 사건들을 모티브로 제작된 이 작품은 언뜻 프로파간다적 성향이 짙어보일 수 있겠다. 그렇기에 혹자는 이 영화는 놓고 '좌파 영화다'라며 엉뚱한 색깔을 칠하기도 한다.

"특정 한쪽이 옳다는 것이 아니다." 영화 '카트'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문정희는 이렇게 말했다. 노조 측이든 사 측이든 문정희는 누구에게도 편들고 싶은 생각이 없다.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 우리 모습이 안타까웠단다. 그는 '카트'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오해하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아요.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카트'의 미덕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사건 자체에 포커스를 맞췄다기보다는 등장 인물 들의 삶에 집중했죠. 무언가를 '주장'하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보는 분들도 어렵지 않고 따뜻한 감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거예요. 고발이 아닌 공감, 사회적 이슈보다는 함께 나눌 수 있는 감정이 더 중요한 영화죠."

'카트'는 회사로부터 부당한 해고통보를 받은 대형마트 비정규직 계산원들이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태어나 처음으로 세상에 목소리를 내게 되며 벌어지는 사건들을 담았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정상적 고용구조와 소통 부재를 꼬집는다. 문정희가 연기한 혜미는 이혼 후 홀로 어린 아들을 키우고 있는 싱글맘이다. 실리를 따지는 탓에 회사 눈밖에 난 그는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자 동료들에게 노조 가입을 권고하며 투쟁을 이끌게 된다.

인터뷰에서 문정희는 "나 역시 노조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연기하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절박함이 '카트'를 통해 깨달았다고. "저 역시 연기자 노조의 일원이에요. 우리 사회는 개인의 목소리에 잘 귀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 분들에게 노조는 함께 이야기 나누고,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됐죠. '카트' 출연 이후 반성을 많이 했어요. 노조에 대한 선입견도 많이 깨졌죠. 또 그동안 정치, 사회, 경제에 무지했던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어요.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었던 촬영장이었죠."

소재 자체가 함께하는 소통이라 그럴까. 출연 배우들 역시 끈끈한 연대감을 자랑했다. 문정희는 "출연 배우 분들뿐만 아니라 조연, 심지어 단역 배우들까지 하나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특히 함께 극을 이끌어 갔던 배우 염정아에 대해서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동료, 언니를 얻은 것 같다"고 찰떡궁합을 자랑했다. 여배우끼리 흔히 벌이는 기싸움도 이번 '카트' 촬영장에는 없었다고. '카트' 언론시사가 끝난 뒤 만난 염정아가 문정희에 대해 "두 번 칭찬하면 입 아프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작품 전체를 휘감고 있는 소통과 공감의 에너지는 분명히 있었다.

"'카트'의 흥행 성적을 물어보시는 분이 있어요. 하지만 흥행보다는 이 작품을 통해 서로가 공감하고 소통하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노조를 통해 옳지 않은 것들을 주장하는 분들도 있겠죠. 노조가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에요. 편향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지양해야죠. 하지만 그들에게 귀 기울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는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자 바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이거든요."

2012년의 '연가시'(감독 박정우), 2013년의 '숨바꼭질'(감독 허정) 등 문정희는 매해 히트작을 극장가에 내놓으며 승승장구했다. 이번 '카트' 역시 신중하게 골랐던 작품인 만큼 흥행 성적이 기대된다. '건축학개론'(감독 이용주), '관능의 법칙'(감독 권칠인) 등을 제작한 명필름의 신작인 것도 기대점. 문정희는 "명필름만의 브랜드파워가 '카트'에 담겼다"고 말했다. 어려워 보일 수 있는 소재지만 명필름 스타일대로 상업적인 소스를 녹이면서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지 않았다. 문정희는 자신이 느꼈던 공감대를 관객 역시 알아챌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느꼈던 투박하지만 강한 에너지, 배우들과 함께 촬영장에서 나눈 공감의 시너지를 '카트'에 담았어요. 인간적인 냄새가 가득한 작품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출연할 수 있게 해준 감독 및 심재명 제작사 대표께 감사드리고 싶어요. 저 역시 이 작품을 통해 용기를 얻었거든요. 좋은 작품은 고르는 것이 아니라 인연을 통해 만나는 것이라 생각해요. 이번 연은 저에게도 정말 소중해요."



이정현기자 seij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