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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 염정아, 24년차 '고고한 아우라' 머리채 잡히다

'우리네 엄마'변신 투쟁 선두에 머리채 뜯기고 물대포 맞고…
'고고한 이미지' 완전 망가졌어요… 당분간 백수 '동탄 아줌마'로 살아
소리 없이 강한 배우의 내공이 감지됐다. 영화 '카트'(감독 부지영, 제작 명필름)의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염정아는 40대 중반의 나이가 무색한 화려한 미모 뒤에 연기 생활 24차년다운 묵직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19살 어린 나이에 데뷔해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연기에만 몰두해온 진정한 '배우'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환한 미소로 10여년 봐온 기자를 맞이한 염정아는 '여배우'보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탈한 '○○ 엄마'에 더 가까웠다. '카트'에서 연기한 부당해고를 당한 후 생존을 위해 싸우는 비정규직 노동자 선희 역이 맞춤옷처럼 잘 맞은 게 이해가 될 정도. 청춘스타로 시작해 한때 '팜므파탈'의 대명사로 불리다 세월이 흘러 이젠 '우리네 엄마'로 변신한 그의 성실함과 우직함에 잔잔한 감동이 가슴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정말 출연하고 싶었어요. 이제까지 내가 해온 역할들과 달랐지만 정말 잘해낼 자신이 있었거든요. 내가 이제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인데 나에게 잘 맞을지 어떻게 알고 연락이 왔는지 신기했어요. 감독님과 제작자(심재명 명필름) 대표님에게 감사할 따름이에요. '연기 변신'라는 의미에서 의욕을 낸 건 아니에요. 현실에 발을 붙인 캐릭터를 정말 연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카트'가 절 찾아왔어요."

'카트'는 염정아가 연기한 선희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자신의 가족을 위해 동료들은 외면하고 앞만 보고 달리며 회사에 충성했던 선희는 정직원이 되기 며칠 전 일방적인 해고통지를 받는다. 처음에는 노조가입도 꺼렸던 선희는 투쟁의 과정에서 여러 번 시련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에 눈을 떠가고 투쟁의 선두에 서게 된다. 염정아는 기대대로 혼신의 열연을 펼친다. 순박한 엄마에서 부당함에 항거할 줄 아는 강인한 여성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형상화해내 깊은 감동을 준다. 해고를 당한 날 음식물 쓰레기를 꾹꾹 눌러 담으면서 흐느끼는 장면에서의 연기는 압권이다.

"정말 서럽더라고요. 선희는 그날 해고를 당했는데 애들한테 표현할 수 없고. 혼자 감정을 안으로 삭이는 데 얼마나 고독했겠어요. 애들에 대한 미안함과 막막함이 복합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빈 곳이 있을까 꾹꾹 눌러 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고요. 그 장면은 감정이 휘몰아쳐 정말 한 번에 갔어요. 선희는 극중에서 정말 여러 번 변화를 겪는데 그걸 표현해내는 건 결코 쉽지 않았어요. 그러나 내가 엄마니까 더욱 공감이 가고 선희가 이해가 되더라고요. 사실 전 촬영 전 비정규직 문제가 이렇게 큰 줄 몰랐어요. 그들의 아픔을 연기하면서 엄마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고민이 더 커졌어요. 좀더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염정아는 연기에 대한 칭찬을 건네자 모든 공을 '카트'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선후배 배우들에게 돌렸다. 그는 문정희와 김영애, 황정민, 천우희 등 출연진과 부지영 감독에 대한 고마움을 여러 번 토로했다.

"'카트'를 통해 정희라는 정말 멋진 동생이 생겼어요. 정희의 예전 작품을 대부분 봤어요. 정말 연기를 잘하는 친구라는 생각을 했는데 혜미 역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어요. 촬영 내내 정희가 큰 힘이 됐어요. 모든 문제가 생길 때 알아서 다 정리해주고 분위기를 이끌더라고요. 김영애 선생님과는 예전부터 워낙 허물없는 사이고 다른 배우들도 정말 친해져 촬영장 분위기가 마치 MT에 온 것처럼 느껴졌어요. 부지영 감독님도 연출자와 배우라기보다 같은 엄마의 입장에서 촬영해 더욱 호흡이 잘 맞았던 거 같아요."

염정아는 '카트'에서 일종의 '액션 연기'를 펼쳐야 했다. 공권력이 시위대를 진입하면서 머리채를 잡히고 물대포를 맞는 등 갖은 고생을 해야 했다. 또한 반항적인 아들 태영으로 나온 도경수(엑소 디오)의 따귀를 때리는 장면도 마음 고생을 해야 했다.

"선희의 머리채를 확 잡고 끌고 가야 하는데 경찰로 나온 단역 배우분이 마음이 약해 잘 못 잡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러시면 제가 더 고생이니 확 잡으시라'고 부탁했어요. 그랬더니 확 잡고 무자비하게 끌고 가시더라고요. 그래서 아주 실감나는 장면이 완성됐어요.(웃음) 다친 곳은 찰과성 좀 난 거 이외에는 다행히 없었어요. 그보다 경수를 때리는 장면이 더 힘들었어요. 엑소 팬들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그 착하고 예쁜 애를 때려야 한다는 게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찍기 전 '엄마가 한번에 가게 해줄게' 하고 진짜 세게 때렸는데 두 번 갔어요. 하얀 뺨이 빨개진 걸 보니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염정아는 아직 차기작을 결정하지는 않았다. 영화 홍보 일정이 있는 날에는 여느 평범한 엄마처럼 살고 있다. 현재 MC를 맡고 있는 스토리온 '트루 라이브 쇼'도 곧 막을 내릴 예정이어서 당분간은 '동탄 아줌마'로서의 삶을 이어갈 전망이다.

"40대 여배우가 할 역할이 참 없는 거 같아요. 그런 가운데서 '카트'를 만날 수 있었던 게 정말 고마운 일이죠. 저를 필요로 하는 작품이 있으면 다시 나오게 되겠죠 뭐. 초조해하지 않아요. 두 아이를 키우니 일을 안할 때 더 바빠요. 애들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청소하고 빨래 하다보면 하루가 그렇게 빨리 갈 수가 없어요. 요즘 뉴스나 신문을 보면 정말 무서워요. '카트'를 촬영하면서 곳곳에 숨어 있는 아픔을 더욱 눈여겨보게 됐어요.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좀더 아름다워지고 공평한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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