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보여준 '끝사랑' 감동할아버지 죽음에도 촬영 계속돼76년간의 사랑에 관객들 '눈물'다큐 최고 흥행 최장 상영 기대

아무도 예상 못했다. 고작 1억 2,000만원으로 만든 다큐멘터리가 극장가를 휩쓸 줄은. 입소문의 힘은 강력했고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감독 진모영ㆍ제작 아거스필름)는 개봉 18일째인 지난 12월 14일 누적관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톱스타도 없었고 거대 자본이 들어간 것도 아니건만 76년을 함께 살아온 노부부가 보여준 진정한 사랑에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12월 16일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연출한 진모영 감독을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날 오전, 작품에 대한 과도한 관심으로 혹시 강계열 할머니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취재진에게 호소문을 보냈던 진 감독은 담담한 표정으로 기자를 마주했다. 놀라운 흥행을 즐기기보다 혹시나 생길 부작용을 우려했고 또 앞으로 다큐멘터리,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예상 못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갑작스러운 관심을 탓하지는 않는다. 사실 노부부의 이야기에 초반부터 관심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이상할 수 있다. 작품에 대한 관심은 아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혼자 보려고 영화를 찍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많은 관객에게 전달됐고 호응해 주셨다. 영화는 궁극적으로는 관객이 완성한다. 그들이 제3의 스태프다. 영화를 공개하며 이 작품을 통해 다큐멘터리 최단 속도, 최고 흥행, 최장 상영을 이뤄보고 싶다는 욕심을 밝힌 바 있다. 다큐멘터리 역시 관객에게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는데 다행히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독립 영화가 이번 흥행을 통해 기지개를 켰으면 한다.

▲ 대중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영화를 보고 난 후 어느 20대 관객이 나에게 그랬다. 자기들의 로망이 담겨 있다고. 젊은 세대의 사랑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는데 사실 그들이 원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20대 역시 순수한 사랑에 대한 꿈이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출연하지만 이들의 순수하면서도 진정한 사랑을 보는 것 같다.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랄까. 중장년층이 많이 볼 것이라 예상했는데 오히려 젊은 관객이 많은 것 같더라. 결국 사랑은 모든 계층에게 똑같이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강계열ㆍ고 조병만 부부는 어떻게 알게 됐나.

=인터넷을 통해 처음 접했고 나중에 미디어에 노출된 사실을 알게 됐다. '인간극장'에도 출연하셨던 분들이다. 첫 느낌은 오랫동안 변치 않는 애정을 나누시는 것이 놀라웠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 궁금증에서 시작했고 찾아뵙기 시작했다. 76년을 한결 같이 살아오셨다는 확신이 든 후에 다큐멘터리를 제안했다. 사실 젊으셨을 때는 훨씬 더 장난기가 심한 커플이셨다더라.

▲ 조병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변수였을 텐데.

=돌아가실 것을 알고 접근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있는데 그건 결론만 보고 하는 말이다. 사실 할아버지 건강이 안 좋아지시면서 촬영이 중단될 수 있었다. 우리에게도 큰 변수였다. 위기였던 작품을 구원한 것은 강계열 할머니다. 할아버지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이전에 보지 못했던 다른 세계를 열어주셨다. 죽음을 통해 육체적인 생명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몸소 보여주셨다. 첫사랑이 있으면 끝사랑도 있지 않나. 할머니가 보여주신 것은 끝사랑 그 자체였다. 죽음을 팔아서 관객의 눈물을 자아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할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한 컷들은 최소한으로 줄였다. 작품의 중심은 사랑이지 죽음이 아니다.

▲ 가족들이 촬영에 거부감을 나타낼 수도 있었다.

=다큐멘터리 촬영을 시작하는 지점에 이야기를 충분히 나눴다. 할아버지께서 연세가 있으셨기 때문에 가족 역시 마음의 준비는 하는 듯했다. 돌아가신다고 해도 촬영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죽음 역시 인생이다.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이야기로서 다큐멘터리가 풍성해진 것은 인정한다. 아이러니다. 작품이 모두 완성된 후에 가족들에게 먼저 보여드렸다. 부모님의 인생을 담아주셔서 감사하다며 상영을 흔쾌히 동의해 주셨고 진심으로 좋아해 하셨다.

▲ 처음이자 마지막 장면은 많은 관객들의 눈물을 훔치고 있다.

=촬영을 마치자마자 이 장면은 작품의 처음과 끝에 들어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죽음이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두 분의 사랑이 중심에 있어야 했다. 강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보내며 약속한 것들을 행하는 장면이 있다. 두 분의 사랑은 이렇게 완성됐다. 가장 중요하다 생각했고 처음이자 끝이라 봤다.

▲ 뒷이야기가 없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마지막 이별을 하는 장면에서 사랑이 완성됐다. 뒷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감정을 억지로 끌고 가고 싶지 않았고 사랑이란 주제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관객들이 눈물을 보이실 줄은 몰랐다.

▲ 모든 다큐멘터리가 그렇듯, 연출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은 있다.

=의심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진정성은 믿어 주셨으면 한다. 보통 다큐는 20일 안에 마무리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우리는 1년 넘게 할아버지와 할머니 주위를 맴돌며 찍었다. 혹시나 카메라를 불편해 하실까 오랜 시간 머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카메라를 의식 안 하셨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셨다. 강아지에게 시원하게 욕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기억난다. 두 분은 수십 년간 이렇게 살아오셨다. 카메라가 앞에 있다고 해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시진 않았다. 오히려 우리가 놓친 모습이 훨씬 많을 것이다. 두 분은 그렇게 평생 사랑해오셨다.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제목은 어떻게 정했나.

=초기에는 그 제목이 아니었다. 두 분이 강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할아버지가 아프기 시작한 이후 할머니 혼자 나와 계시더라. 그 모습을 보며 여러 가지가 떠올랐다. 평생 자식을 키워 강 건너로 보내신 두 분 아닌가. 언젠가 할아버지도 저 강을 건너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강은 이별의 느낌을 가진다. 거기에 강계열 할머니의 말투를 따라해 제목을 정했다.



이정현기자 seij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