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파마머리' 기 대리 역… '살아있는 연기'로 존재감 각인데뷔 첫 통신사 CF 찍어원래 꿈은 '시인'…연기할 땐 행복

시종일관 담담했다. 갑자기 쏟아지는 인기에 들뜰 법도 했지만 그는 차분했다. 인기를 실감하느냐는 질문에 "제가 정말 인기를 얻은 건가요?"라고 순박하게 웃어 보인다. 배우 김대명(35)이다.

21일 종영한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케이블채널 tvN 금토드라마 '미생'(극본 정윤정·연출 김원석)에는 '을'로 대변되는 수많은 직장인들이 나왔다. 그 중 김대명이 연기한 영업3팀 김동식 대리는 단연 인상적이다. 아줌마 파마머리를 고수하고 32년째 모태솔로 역이다. 자신이 모시는 오상식 차장(이성민)에게는 충직하고 후배 장그래(임시완)는 살뜰하게 챙긴다. 김대명은 실제 종합상사에서 데려온 것이 아니냐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살아있는 연기'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최근 삼청동의 위치한 한 카페에서 김대명을 만났다. 같은 날 새벽 1시까지 '미생'의 모든 촬영을 끝내고 왔다는 그의 눈은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반갑게 취재진을 맞이한 그는 이윽고 펜과 A4 용지를 꺼내더니, 필기 준비를 했다. 인터뷰에서 나온 말들을 정리하고 싶다며 펜을 들은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꼼꼼하고 야무진 영업 3팀의 살림꾼 김동식 대리를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다.

그는 오디션을 통해 김 대리 역할을 따냈다. "다른 역할은 들어오지 않았다"는 그는 "감독님이 영화 '방황하는 칼날'을 보고 오디션을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 꼭 참여하고 싶었다. 그래서 준비를 많이 해갔다"고 '미생'에 합류하기 전을 추억했다.

"오디션에 참여하기 전에 연기할 대본과 캐릭터를 철저하게 분석해 갔어요. 제가 최종적으로 '미생'을 하게 됐다고 들었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기뻤습니다. '나한테 이렇게 큰 역할을 주셨구나'라는 기쁨과 부담감이 동시에 생겼어요. 배우 입장에서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역할을 하게 돼서 너무 행복했죠."

김대명은 원작 캐릭터와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김 대리를 연기하는데 가장 초점을 맞췄던 것은 외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실제 현재 회사에 입사한 친구들이 대리급인 만큼 친구들의 회사 생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단다.

"살도 찌우고 파마도 했죠. 부분 가발을 착용하기도 했어요. (웃음) 그런데 외적인 모습은 그렇게 크게 고민하지 않았어요. 저는 생활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한 마디를 내뱉을 때도 회사원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하고 어떤 단어들을 쓰는가를 많이 고민했어요. 옷도 최대한 직장인의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고요. 멋부리지 않았어요. 디테일한 부분을 많이 고민했죠."

영업3팀 멤버였던 이성민과 임시완과는 촬영 내내 붙어 다녔다. 그는 이성민의 리더십에 감탄하기도 하고 임시완의 철저한 준비성에 놀라기도 했다.

"셋이서 가깝게 지냈어요. 밥도 거의 같이 먹었어요. 이성민 선배는 항상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연기적으로도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시완이는 준비를 많이 해 왔어요. 셋이서 의견 교류도 많이 하고 또 굉장히 친하게 지낸 기억이 많이 남네요."

김대명은 최근 데뷔 후 첫 CF를 찍었다. '대세'들만 찍는다는 이동통신사 CF에 이어 온라인 쇼핑몰 광고모델로도 발탁됐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버스가 편하다. 자신의 인기에도 그다지 연연해하지 않았다. 2014년도를 훈훈하게 마무리하는 것 같다고 말하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인기를 얻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인기를 얻었다고 해도 그것에 취해 있지 않으려고 해요. 다음 작품도 곧 들어가야 하는데 제가 늘 해오던 방식 그대로 살아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물론 2014년도가 제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 거는 맞아요. 하지만 그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가오는 2015년도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요."

'취해 있지 않으려고 한다'는 그의 말에서 극 중 오 차장이 장그래를 언급하며 "애는 쓰는데 자연스럽고, 열정적인데 무리가 없고, 취해 있지 않다"고 말한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이내 그는 의외의 고백을 했다. 원래 꿈은 시인이었다고. 그러다 꿈이 시나리오 작가로 바뀌고 영화를 많이 보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를 꿈꾸게 됐다. 스물넷의 나이에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에 입학했다. 군대에 다녀온 뒤 스물여섯부터 연극을 하며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연극 '귀신의 집으로 오세요'로 데뷔한 그는 이후 크고 작은 연극과 뮤지컬 무대, 영화에 출연했지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배우를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배우는 4대 보험이 안 되는 비정규직이에요. 작품이 끝날 때마다 '다른 일을 해야 하나'고 고민했죠. 그래도 연기 외에는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일이 없어요.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웃음) 연기만큼 저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은 없더라고요."

그의 2015년은 바삐 돌아갈 예정이다. 차기작은 일찌감치 결정됐다. 그는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 '판도라'(감독 박정우)에 김남길 김명민 문정희 등과 함께 캐스팅돼 내년 초 촬영을 앞두고 있다. 한효주와 호흡을 맞추는 영화 '뷰티 인사이드'(감독 백종열)의 촬영도 막바지 단계다.

"2015년도에도 지금처럼 연기에 매진할 예정입니다. '미생'으로 좋은 반응을 얻어서 그 이상을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부담감도 있어요. 일단은 눈앞에 놓은 작품부터 착실하게 해나갈 예정입니다."



조현주기자 jhjdh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