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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욱의 활동사진 유람] '군함도'에 입성하면 마주하는 세가지 감정

분노를 넘어서 희망을 이야기하다
  • 영화 '군함도'의 스틸.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스포츠한국 최재욱 기자] 피해자들의 땀눈물이 쌓아 올린 거대한 탑이 연상된다.

올 여름 대한민국 극장가를 뜨겁게 달고 있는 영화 ‘군함도’(감독 류승완, 제작 외유내강)는 청산되지 않은 역사로 인해 상처받는 이들의 한과 분노가 켜켜이 쌓여 일구어낸 활화산 같은 영화다. 뉴스나 예능프로그램, 다큐멘터리를 통해 소개됐지만 많은 이들이 잘 몰랐던 군함도의 진실을 폭로하면서 과거를 잊어가던 대한민국 국민들을 각성시키고 피를 용암처럼 뜨겁게 끓어오르게 하고 있다.

‘군함도’는 민족 정서를 건드리는 뜨거운 메시지를 지닌 문제작이다. 그러나 220억원의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되고 충무로 최고의 상업영화 감독으로 불리는 류승완 감독이 연출을 맡고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 등 최고의 배우들이 출연한 분명한 여름용 블록버스터이기도 하다. 현재 전국 극장수의 80%나 되는 2000여개 스크린을 점령해 독과점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뜨거운 찬반 논쟁에 휩싸여 있다.

일부에서는 정치적 선동의 의미가 내포된 프로파간다용 영화나 예민한 민족정서를 건드린 장삿속이 짙은 상업 영화로 해석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들의 의견에 동조할 수 없는 건 만든 이들의 올곧은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군함도’에 관객들이 입성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감정의 역사(驛舍)들을 둘러봤다.

#분노 역=‘군함도’는 1945년 일제 강점기 때 영문도 모른 채 군함도에 끌려와 강제노역을 하게 된 조선인들이 죽음의 위험 속에서 써 내려간 피눈물의 기록이다. 경성 반도호텔 악단장 강옥(황정민)과 그의 외동딸 소희(김수안), 종로 일대를 평정한 주먹 칠성(소지섭), 위안부 출신 말년(이정현) 등 각기 다른 사연을 갖고 있는 조선인들은 군함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러던 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고 일본은 자신들의 만행을 감추기 위해 조선인들을 갱도에 가둔 채 폭파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독립 운동가 구출 차 군함도에 잠입한 무영(송중기)이 그 사실을 눈치 채고 탈출 작전을 가동한다.

영화는 시작부터 압도적인 스펙터클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3개월간의 디자인 과정, 6개월간의 시공으로 완벽히 재현된 군함도 세트는 관객들이 당시의 현장으로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리얼하다. 특히 해저 1,000m, 평균 온도 45도의 갱도 속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채굴 작업을 하는 조선 노동자들의 모습은 그 처절함에 입을 다물 수 없다.

나라를 잃은 서러움도 북받치는데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지옥 같은 환경에서 강제 노역을 하는 모습에 가슴 깊숙이 끓어오르는 분노와 마주하게 된다. 생존이라는 목표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주인공들의 감정에 차츰차츰 이입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감동 역=‘군함도’가 더욱 남다르게 관객들의 가슴의 두드리는 건 이분법적인 시선을 지양했기 때문. 류승완 감독은 조선 사람은 선, 일본인들은 악으로 규정짓지 않고 전쟁의 광기 속에서 국가의 권력 앞에 짓밟히는 민초들의 한에 주목한다.

메시지가 장엄하기에 류승완 감독의 전작들과는 영화의 결이 다소 다르다. 숨막히는 긴장감에 호쾌한 액션이 곁들여진 전형적인 탈주 드라마를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영화 초반부 묵직한 서사는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다. 오락적인 재미보다 영화적 의미에 초점을 맞춘 류감독의 선택은 호불호가 나뉠 수 있다.

그러나 딸 소희를 지키고 싶은 강옥의 뜨거운 부정, 칠성과 말년의 동지애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다양한 사연과 무영의 주도로 이뤄지는 탈출 작전 에피소드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이는 중반부에 들어서면 잠시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마지막 30분을 차지하는 탈출 장면은 압권이다.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배우들의 열연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 황정민은 기대대로 중심축을 확실히 잡아주고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의 피땀 어린 열연으로 화면을 장악한다. 화룡점정은 아역배우 김수안의 ‘미친 존재감’. 시종일관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며 관객들의 심장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한다.

#희망 역=‘군함도’는 결코 과거에 함몰된 영화는 아니다. 숨겨진 역사에 대한 고발과 함께 미래를 이야기한다. 류승완 감독은 결말부 탈출 장면에서 군함도에서 자행된 강제 노역에 대한 책임을 여전히 지지 않으려는 일본에 대한 분노를 희망으로 승화시킨다. 피해자의 분노에 머물지 않고 청산되지 않는 역사의 부당성을 강조하며 뼈아픈 역사를 몰랐던 이들의 각성을 요구한다. 이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를 고민하게 하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많은 이들의 희생을 디딤돌로 탈출에 성공한 배가 조선으로 향할 때 희생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쉬던 관객들은 희망의 끈을 발견하고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된다.

‘군함도’는 선굵은 연출력에 정상급 배우들의 열연, 장엄한 메시지를 지닌 수작이다. 그러나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평가는 나뉠 수 있다. 그건 류승완 감독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일 터. 류승완 감독은 ‘군함도’에서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자신의 연출 세계 공간을 대폭 확장했다. 최고의 상업 영화 감독에서 ‘거장’을 향한 첫걸음 뗀 류승완 감독의 용기는 분명히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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