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의 척박한 이태리 정치, 사회 상황이 탄생 시킨 현실 영화

57. 네오리얼리즘(Neorealism)

예술 장르에서 통용되는 ‘네오 리얼리즘’은 1차 대전 발발 직전 활동했던 화가 찰스 긴너(Charles Ginner), 해롤드 길맨(Harold Gilman)이 이끌던 ‘엑스-캠던 타운 그룹 the ex-Camden Town Group’에서 시도한 화풍(畵風)에서 시작된다.

이들 화가 집단은 일상 생활에서 겪는 사건에 색상과 예술적 감성을 삽입 시켜 화단에 주목을 받아낸다.

1914년 1월 기너는 자신들이 시도하는 예술 운동에 대해 ‘새로운 시대 선언

manifesto in New Age’이라고 명명한다.

이들은 기성 화단과 미술 학계로부터 ‘후기 인상주의의 모방에 불과하며 ’장식적인 측면 the decorative aspect’이 강하다는 비판을 받게 되지만 새로운 사조(思潮)로서 수많은 미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네오리얼리즘’은 2차 대전 종전 직후 이태리에서 할리우드에 반기를 들고 제작된 영화들이 본국 보다는 해외 시장에서 뜨거운 호응을 얻으면서 지구촌 영화계에 큰 여파를 던진다.

프랑스 영화 이론가 겸 비평가 앙드레 바쟁(André Bazin, a French film theorist and critic)은 ‘진실 truth’ ‘자연스러움 naturalness’ ‘순수성 authenticity’ 등이 이 장르만의 특징이라고 정의 내린다.

아울러 영화가에서도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서술해 주고 있다.

-현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명확한 사건을 극의 소재로 채택

-역사적 사실을 가감없이 묘사할 수 있는 감각을 갖출 것

-빈부 혹은 신분 격차 없이 모든 시민이 균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진보적인 정치적 의견 제시

-인위적인 스튜디오 시설 대신 진실을 전달 할 수 있는 야외 로케이션 촬영 시도

-연기 경력이 전무한 비프로 배우의 기용으로 극의 내용에 대한 진심 전달

-다큐멘터리 촬영 스타일 채택

학계에서는 1933년 12월 공개된 스페인 루이스 부뉴엘(Luis Buñuel)의 <빵 없는 땅 Land Without Bread/ Las Hurdes: Tierra Sin Pan>을 네오리얼리즘 효시작으로 평가하고 있다.

주변이 온통 산악 지대인 스페인 라스 허데스(the Las Hurdes region of spain). 지역 주민들은 고아들을 돌봐주는 댓가로 정부 보조금을 받아 생활할 정도로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정경을 담은 27분짜리 고발성 실화극이다.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은 ‘2차 대전으로 핍박해진 이태리 서민들이 파시스트 망령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길 기원하는 동시에 경제적 재기 그리고 현실을 무시하고 늘 화려한 허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에 반감을 드러내면서 <무방비 도시 Open City / Roma Citta Aperta>(1945)를 공개한다.

2차 대전 말기. 독일군 점령하에 있는 이태리 로마. 레지스탕스 운동을 지원했다 죽음을 맞게 되는 가톨릭 신부, 나치 이념에 회의를 드러내는 독일군 장교, 독일군에 맞서 폭약을 설치하는 아이들의 이야기 등 독일군에 맞서 격렬한 독립 운동을 벌이는 다양한 사연을 담아낸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자전거를 도둑 맞은 뒤 생계를 위해 다른 사람의 자전거를 훔치다 걸려 고충을 겪는 중년 사내의 처연한 사연을 묘사한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 The Bicycle Thief / Ladri Di Biciclette>(1948), 정부 연금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퇴직자 움베르토가 방세를 지불하지 못하자 자살을 시도한다는 <움베르토 D Umberto D>(1952) 등이 연이어 공개된다.

비평가 움베르토 바르바로(Umberto Barbaro)는 이들 작품에 대해 ‘이태리 네오리얼리즘’이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전세계 영화계에 큰 족적을 남기는 기념비적 작품으로 등극된다.

바르바로와 시나리오 작가 세자르 자바티니(Cesare Zavattini) 등은 ‘파시스트 정부가 현실을 호도 시키기 위해 제작을 독려했던 호사스런 풍경의 백색 전화 영화, 선전용 서사극, 현실도피적인 멜로드라마, 실현불가능한 스토리 등과의 절연을 선언한 이태리 네오리얼리즘 영화야말로 자국 영화인들이 탄생 시킨 신화’라고 격찬을 보낸다.

앙드레 바쟁은 ‘초보자를 내세운 반영웅적 연기, 현지 방언 사용, 인공 조명 대신 자연광 활용, 실제 촬영 시간과 영화 상영 시간을 최대한 동일하게 일치 시켜 현실감 재현, 빈 공간 및 하늘 등 자연 환경을 배경 도구로 채택, 거친 입자의 필름 활용, 후시 녹음 등의 제작 방식은 현실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조망하는 동시에 도덕적인 스토리에 대한 공감을 넓히는데 일조했다’는 소감을 남긴다.

일부 감독들은 ‘이들 장르 영화 제작을 통해 계급적 차별 의식의 심각성을 각성 시켜 프롤레타리아들을 결집 시키는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하려고 한다’는 비난도 초래한다.

개인의 자유를 무한대로 허용하는 동시에 대책없는 낙천주의를 전파 시켰던 할리우드 스타일에 반감을 드러낸 것은 이태리 네오리얼리즘의 빠트릴 수 없는 특색으로 언급됐다.

영국에서 유행했던 프리 시네마 및 사회적 리얼리즘을 필두로 해서 시네마 베리테, 덴마크 출신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영화 탄생 100년을 맞아 1995년 발표한 도그마 95 선언, 체코의 뉴 웨이브 등은 이태리 네오리얼리즘의 여파로 태동한 영화 사조(思潮)로 공인 받고 있다.

인도의 샤트야지트 레이,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브라질 넬슨 페레이라, 세네갈의 우스만 상벤, 대만의 프루트 첸, 쿠바의 토마스 쿠티에레스 알레아 등 열성적 감독들은 모국 영화계에서 네오 리얼리즘 스타일의 작품들을 발표해 공감을 얻어 나간다.

이경기(영화칼럼니스트) www.dailyo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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