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이후 절망적 사회가 탄생 시킨 음산한 드라마

60. 필름 느와르(Film Noir)

‘미모를 앞세워 남성을 파멸로 이끌어 내는 여주인공 femmes fatales, 불운한 주인공 doomed heroes, 반영웅 anti-heroes, 거칠고 냉소적인 탐정 tough, cynical detectives, 흑백 영상 black and white, 희망 보다는 절망과 파국적 결말’,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자행되는 잔혹한 범죄, 도덕이 실종된 무질서한 도시 풍경, 기만과 술수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인물 군상들, 그림자를 통해 드러내는 신원을 파악할 수 없는 괴한, 밝은 빛과 어둠의 극한적 대비,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방인, 성적인 유혹, 모호함, 잔혹한 상황, 도덕적 타락에 빠진 인간에 대한 냉소 등.

1940년대 초-1950년대 후반까지 흥행가를 석권했던 ‘필름 느와르 장르 The film noir genre’의 특징이다.

이 장르만이 노출 시켰던 빠트릴 수 없는 제작 형식 및 시각적 패턴은 아래와 같다.

* 휴대용 카메라, 고감도 흑백 필름을 사용한 로케이션 촬영

* 사회 복귀에 실패한 참전 용사, 탐관오리, 경찰에 쫓기는 커플, 돈에 집착하는 부르주아, 몰인정한 사기꾼 등이 단골로 등장

* 독일 표현주의가 단골로 시도했던 사선 및 수직적 화면 구도 선호

* 지나온 삶에 대해 회한을 갖고 있는 남자 주인공의 보이스 오버 나레이션 및 플래시백을 활용해 극적 비밀을 해소하는 전개 방법을 도입

* 연기자 뿐 아니라 무대 장치 및 소품 등에도 조명을 투사 시켜 무생물을 생물화 시킨다

* 배우들의 행동 보다는 분위기, 촬영 구도 및 조명 등으로 긴장감을 조성 시킨다

* 심야에 밤 장면을 직접 촬영(night for night)

* 거울, 물체의 반사, 창문 등에 빛을 투사

‘용어 필름 느와르 The term film noir’는 비극적 종결로 마무리 된다고 해서

불어로 ‘검은 영화 French for "black film’ 혹은 어두운 영화 (literal) dark film’에서 유래됐다.

<말타의 매> <로라> <이중 배상> 등이 1946년 전후 파리에서 뒤늦게 개봉된다.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를 관람한 프랑스 비평가 니노 프랭크 French critic Nino Frank는 ‘2차 대전 종전 후 밀어 닥친 인간에 대한 불신과 오직 동물적 본능만이 중시되는 치열한 삶의 현장, 앞날에 대한 희망을 찾아볼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 만들어낸 예술 형식’이라는 소감을 밝힌다.

이들 작품에 대해 ‘필름 느와르’로 규정해 주면서 미국 영화 흥행 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 잡게 된다.

탐정 private eye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빅 슬리프 The Big Sleep>를 비롯해 평상복의 형사 a plainclothes policeman-<빅 히트 The Big Heat>, 나이든 복서 an aging boxer-<셋-업 The Set-Up>, 불행한 사기꾼 a hapless grifter-<밤과 도시 Night and the City>, 법을 준수하지만 범죄의 유혹에 노출된 시민 a law-abiding citizen lured into a life of crime-<건 크레이지 Gun Crazy>, 단순한 환경의 희생자 simply a victim of circumstance- 등은 느와르 장르에서 단골로 묘사되고 있는 설정 혹은 주인공들의 특징이다.

문학 비평가들은 19세기 영국에서 번성했던 으스스한 분위기로 스토리를 이끌어 나갔던 고딕 양식 스타일의 ‘검은 소설 roman noir’에서 원용된 것이라는 견해도 내놓고 있다.

필름 느와르 스타일은 음산한 조명과 무엇인가 벌어질 것 같은 긴장감 조성된 분위기를 앞세웠던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 German Expressionism, 시적 리얼리즘 Poetic Realism 등에서 많은 감화를 받았으며 1960년대 중반 프랑스 뉴 웨이브 French New Wave, 네오-느와르 neo-noir가 탄생되는 토대가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말타의 매 The Maltese Falcon> <씬 맨 The Thin Man> <라인의 감시 Watch on the Rhine> 등의 작가 다실 해메트(Dashiell Hammett), <이중 배상 Double Indemnity> <열차 속 이방인 Strangers on a Train> <빅 슬리프 The Big Sleep> <롱 굿바이 The Long Goodbye> 등의 원작자 레이먼드 챈들러(Raymond Chandler) 등이 발표한 일련의 탐정 소설은 ‘느와르 장르’의 주요 원안으로 각광 받는다.

(1931)으로 유명세를 얻은 독일 출신의 프리츠 랑 Fritz Lang은 나치즘이 기승을 부리자 할리우드로 이주한다.

그는 어두운 골목 등에서 적대자 및 용의자와 대적하는 장면을 통해 느와르 화면 스타일의 전형을 제시하게 된다.

‘남성미를 드러내는 듯한 턱시도 차림, 톱 햇 착용 wearing a tuxedo-like suit and top hat, 꽉 다문 입술 사이에서 삐져 나오는 미소 tight-lipped smile, 오른손에 쥐어진 담배 연기가 큰 원을 그리면서 허공으로 올라가는 것 her right hand she holds a cigarette from which a large plume of smoke rises’ 등의 자태를 노출 시켜준 <모로코 Morocco>(1930)의 히로인 마리네 디트리히(Marlene Dietrich)는 단숨에 ‘팜므 파탈 femme fatale’의 화신으로 부각 시켜준다.

이외 험프리 보가트, 로버트 미첨, 글로리아 그래이엄, 바바라 스탠윅, 에드워드 G. 로빈슨 등이 스타급 배우로 주목 받는다.

존 휴스턴(John Huston) 감독의 <말타의 매 The Maltese Falcon>(1941), 빌리 와일더(Billy Wilder)의 〈이중 배상 Double Indemnity>(1944), 오토 프레밍어(Otto Preminger)의 〈로라 Laura>(1944), 로버트 시오드맥(Robert Siodmak)의 〈킬러 The Killers>(1946), 하워드 혹스(Howard Hawks)의 〈빅 슬립 The Big Sleep>(1946), 에드먼드 굴딩(Edmund Goulding)의 〈나이트메어 앨리 Nightmare Alley>(1947), 헨리 해서웨이(Henry Hathaway)의 〈죽음의 키스 Kiss of Death>(1947), 라울 월시(Raoul Walsh)의 〈화이트 히트 White Heat>(1949) 등은 필름 느와르 양식을 드러내 준 히트작으로 기록되고 있다.

‘낮은 조명의 강조 emphasizes low-key lighting’ ‘균형이 맞지 않는 화면 구도 unbalanced compositions’ 등의 시각적 스타일은 갱스터 및 경찰 소재 영화에서 단골로 차용한다.

이태리 스타일의 지알로 giallo, 독일 뉴 저먼 시네마, 멕시코 산(産) 음악 영화 카바레테라 cabaretera 등 유럽에서 유행한 제작 스타일로 느와르 여파로 파생된 것으로 공인 받는다.

할리우드 비평가들은 ‘한때 저예산과 B급 장르의 대명사로 박대 당하던 필름 느와르는 2차 대전 이후 동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감독들이 칡흑 같은 조명, 짙은 안개를 배경으로 등장 인물들끼리 불신의 분위기를 조성해 40년대 미국 정치 사회를 감싸고 있던 정서적 혼란을 상징하는 대상으로 주목을 끌게 했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1960-70년대 위세를 떨친 네오-느와르 필름 장르(The neo-noir film genre)는 핵무기 개발로 인한 핵 전쟁이 증대됐던 미국과 구 소련간의 냉전(mid-way into the Cold War)이라는 정치적 상황이 발아 시킨다.

<블래스트 사이런스 Blast of Silence>(1961) <케이프 피어 Cape Fear>(1962) <만추리안 후보자 The Manchurian Candidate>(1962) <쇼크 코리더 Shock Corridor>(1962) 등이 네오-느와르 붐을 조성한 히트작이다.

근래 공개된 작품 중 어두운 미래 묵시록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1982), 폭력과 부패한 도시에 휘말려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다룬 <씬 시티 Sin City>(2005) 등은 업그레이드 된 느와르 형식을 보여준 작품으로 언급됐다.

이경기(영화칼럼니스트) www.dailyo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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