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크러시가 트렌드인 요즘 여배우가 액션 연기를 피하고 영화계에서 생존할 순 없다. 여배우가 장점을 가질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 장르가 관객들의 사랑을 더 이상 받지 않는 상황이기에 여자 배우들의 ‘여전사’ 전업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관객들은 어여쁜 여배우들이 눈물샘을 쏟게 하는 멜로 연기를 펼치는 것보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도 화끈한 이단옆차기를 날리며 남자를 쓰러뜨리는 모습을 선호한다.

미스터리 액션영화 ‘마녀’(감독 박훈정, 제작 제공 워너브러더스 픽쳐스, 제작 ㈜영화사 금월, 공동제작 페퍼민트앤컴퍼니)는 여배우 액션물이 지닌 매력의 극대치를 보여주는 작품. ‘신세계’ ‘대호’ ‘브이아이피’ 등으로 거친 남자들의 세계를 주로 그려온 박훈정 감독이 처음으로 여자배우를 주인공으로 한 액션 활극을 완성했다. 미스터리물의 추리하는 쫀쫀함과 액션물의 아찔한 쾌감이 살아 있는 영화 ‘마녀’가 가진 치명적인 마력 세 가지를 살펴봤다.

#이 여자 미스터리하다!

남녀관계에서 긴장감을 끊임없이 유발하기 위해선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한 가지 모습만 계속 유지하면 상대가 지루함을 느끼기 십상이다. ‘마녀’는 극명하게 다른 두 얼굴로 관객들에게 두뇌싸움을 청하며 쫄깃한 재미를 선사한다. 소녀의 순수함과 마녀의 극악스러움을 오가며 극과 극을 오가는 아찔한 쾌감을 전한다.

영화는 시설에서 의문의 사고로 많은 아이들이 죽은 후 홀로 탈출한 소녀가 외진 곳에 위치한 목장 앞에 쓰러지면서 시작된다. 모든 기억을 잃은 채 목장주인 부부에게 발견된 소녀는 구자윤이라는 이름의 씩씩하고 착한 여고생으로 성장한다. 부모가 경제사정이 어려워지자 자윤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는데 그 후 의문의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평온했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다.

박훈정 감독은 전작들과 마찬 가지로 느린 템포로 이야기의 탑을 쌓아가다 중반 이후 한꺼번에 터뜨리는 방식을 택한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자윤이 절대 권력에 쫓기는 불쌍한 희생양인지 아니면 요원들이 말하는 하루빨리 제거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마녀인지 궁금하게 하다가 모든 진실이 밝혀진 후부턴 급속도로 관객을 몰아붙인다. 잠시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 여자 친숙한데 신선하게 느껴진다!

남녀관계에서 상대가 호감을 느끼려면 편안함과 신선함을 동시에 줘야 한다. 함께 있으면 편안하면서도 자주 만나도 싫증이 나지 않게 신선함을 유지해야 한다. ‘마녀’의 이야기는 사실 전혀 새롭지 않다. 할리우드 영화를 많이 본 관객이라면 인상적인 여전사들이 등장한 ‘롱키스 굿나이트’, ‘한나’, 미드 ‘다크 앤젤’ 등을 금방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녀’는 새롭게 느껴진다. 그건 단순히 한국을 배경으로 옮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광’ 박훈정 감독 특유의 오마주 방식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유전자 조작으로 절대적인 힘을 갖게 된 영화 속 마녀처럼 각 영화들의 흥미로운 요소들을 하나씩 모아 강렬한 힘을 지닌 창작물이 완성됐다.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된 후반부 액션신은 탄성을 자아낸다. 박훈정 감독은 이제까지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스타일의 액션으로 관객들의 눈을 스크린에 고정시킨다. 등장인물의 감정 흐름까지 염두에 두고 짜여진 액션은 화려한 볼거리를 넘어서 이야기에 몰입시키는 촉매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 여자 화끈하다!

남녀관계에서 열정은 꼭 필요한 요소다. 서로 뜨거움을 느낄 수 없다면 이미 죽은 관계나 다름없다. ‘마녀’는 함부로 손댈 수 없을 정도로 화끈하다. 귀엽다고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가는 강렬한 핵주먹을 맞은 듯 한 느낌을 준다. 그만큼 전반부와 후반부 온도차가 크다.

‘마녀’를 더욱 뜨겁게 만든 장본인은 강렬한 마성을 지닌 배우들이다. 주인공 자윤 역을 연기한 신인 김다미는 1500대1의 경쟁률을 뚫은 힘을 확실히 알 수 있게 해준다. 순수함과 마성을 오가는 흡인력 넘치는 연기력과 입이 떡 벌어지게 하는 액션 연기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충무로에 매력적인 ‘마녀’의 등장을 알린다.

마녀를 창조해낸 닥터 백 역의 조민수와 그를 보좌하는 미스터 최 역의 박희순은 기대대로 선굵은 연기로 영화의 중심축을 확실히 잡아준다. 조민수의 극악스러운 악녀 연기는 시종일관 소름 끼칠 정도로 미친 존재감을 발산한다.

특히 칭찬을 받아야 할 이는 ‘귀공자’ 역을 연기한 최우식이다. 최고의 20대 연기파 배우답게 악랄하면서도 귀여운 매력을 지닌 귀공자 캐릭터를 섹시하게 소화해내며 ‘충무로 대세 배우’임을 입증한다.

‘마녀’는 분명히 호불호가 나뉠 수 있는 영화다.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지만 폭력의 강도는 모든 연령대가 즐기기엔 무척 세고 서사도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불편함을 상쇄시킬 만한 마력이 분명히 있다. 위험하지만 치명적인 매력녀 ‘마녀’. 분명히 한번 만나볼 가치는 있다. 최재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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