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돈’ 류준열이 운전하는 롤러코스터 쾌감!


서민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 성실히 돈을 모아도 서울 내 아파트 하나 사기 힘든 세상이다. 가진 돈이 있어야 큰돈을 벌 수 있고 돈이 없으면 신분상승을 꿈꾸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일확천금을 기대할 수 있는 건 로또뿐이다. 그것도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기에 많은 사람들이 주식 시장을 기웃거리게 된다. 그러나 고급정보나 자본이 부족한 개미투자자에게 주식시장은 패가망신하기 딱 좋은 장소일 따름이다.

영화 ‘돈’(감독 박누리, 제작 ㈜사나이픽쳐스, 영화사월광)은 주식시장에서 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간접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범죄오락영화. 신입 주식 브로커 조일현(류준열)이 주식 작전세력 번호표(유지태)로부터 위험한 제안을 받은 후 아찔한 흥망성쇠를 겪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담았다.

실제 주식 브로커 출신 장현도 작가가 쓴 원작 소설을 영화화해 리얼리티가 더 살아 있는 이 영화는 금융 관련 시민단체에서 개미투자자 주식투자 방지 교재로 삼을 만한 작품이다. 주식업계 큰손으로 일어서는 서민 출신 조일현의 흥망성쇠는 관객들에게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대리만족감을 선사하면서 “아무나 주식투자 하면 안된다”는 뻔한 메시지도 전한다.

사실 한국영화로는 ‘작전’, 할리우드 영화로는 ‘월스트리트’ ‘빅쇼토’ 등 주식시장을 배경으로 왜곡된 돈의 흐름을 조망한 영화는 이제까지 관객들이 여러 번 봐왔다. ‘돈’은 이전 영화들과 차별점은 많지 않다. 어찌 보면 중량감은 다소 부족하다. ‘돈’이 데뷔작인 박누리 감독은 금융시장의 이면을 집중탐구하기보다 범죄물 특유의 오락적 재미에 중점을 뒀다. 상업 영화를 제대로 만들 줄 아는 여자 감독의 탄생이다. 적당한 긴장감과 쾌감을 번갈아 주면서 몰입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영화 ‘돈’이 내세울 수 있는 대표 종목은 주연배우 류준열이다. 류준열은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연기력을 과시하며 이제 ‘원톱 주연’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려준다.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극과 극의 삶의 궤적을 보이는 조일현의 드라마틱한 감정의 변화를 세련되게 그려낸다.

조일현을 작전 세력에 끌어들이는 번호표 역을 맡은 유지태와 사냥개처럼 일현과 작전세력을 집요하게 쫓는 금융감독원 직원 한지철 역을 맡은 조우진은 강렬한 카리스마로 양대축을 이루며 영화에 긴장감을 배가한다. 세 배우가 삼각편대를 이루며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가 엄청나다. ‘돈’은 비수기 극장가에서 관객들을 확 끌어들일 요소가 부족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탄탄한 스토리와 매력 넘치는 배우들의 열연, 세련된 연출로 115분 동안 관객들의 눈을 스크린에 고정시킨다. 특히 류준열의 팬이라면 선물 같은 영화가 될 듯하다.


영화 ‘우상’ 작가주의가 상업영화를 만났을 때

사람은 불확실한 삶을 살다보면 자신만의 ‘우상’(偶像)을 만드는 경우가 생긴다. 어디엔가 의지하고 싶고 삶의 원동력을 갖고 싶기 때문이다. 단순히 삶의 목표나 지향점를 갖는 수준이라면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겠지만 그것이 변질돼 집착 수준으로 간다면 허망한 결말에 이를 수 있다.

영화 ‘우상’(감독 이수진, 제작 ㈜리공동체영화사, 공동제작 폴록스(주)바른손)은 ‘우상’은 결국 ‘허상(虛像)’이라는 매우 고전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 전작 ‘한공주’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격찬을 받은 이수진 감독은 수많은 문학작품과 영화에서 이미 전한 이 간단하고 쉬운 메시지를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를 통해 새롭게 전하려 노력한다.

영화는 아들이 낸 뺑소니 교통사고로 정치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도의원 명회(한석규)와 아들의 죽음에 관련된 진실을 쫓는 아버지 중식(설경구), 그리고 사건 당일 사라진 중식의 며느리 련화(천우희)가 얽히고설키면서 파국에 이르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담는다.

정치적 성공으로 대중의 우상이 되고 싶은 명회, 삶의 모든 것이었던 아들을 잃고 핏줄의 끌림을 우상으로 삼는 중식, 본능적인 생존을 우상으로 삼은 련화의 삶은 큰 파열음을 내면서 충돌하고 영화는 걷잡을 수 없이 폭주해 나간다. 관객들은 추악한 삶의 이면에서 경악하면서 뭔가 엄청난 비밀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143분을 끌려 다니게 된다.

영화가 끝난 후 이수진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에 공감이 되는 사람은 힐링을 받을 수 있지만 불친절한 연출에 지친 이들은 불쾌한 기분으로 극장 밖을 나가게 된다. 겹겹이 과대 포장된 선물을 열어보고 느끼는 실망감이라고 할까?

어쩌면 ‘우상’은 이수진 감독이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어려운 영화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관객들이 사건과 인물에 쉽게 몰입할 수 없는 이유는 이수진 감독의 관점과 인물에 대한 시각, 감성이 보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공감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술가적인 표현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지만 본인이 공언했듯이 ‘우상’은 많은 사람들이 봐 손익분기점을 맞춰야 하는 상업 영화다. 좀더 많은 관객들과 교감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고민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명품 배우들의 열연이 영화의 단점을 확실히 상쇄시킨다. 한석규와 설경구, 천우희가 빚어내는 시너지 효과는 예상대로다. 영화의 빈구석을 메워주며 이수진 감독이 담아내려는 은유와 사유의 세계를 완성한다. ‘우상’은 요즘 충무로에서 보기 드문 자기 색깔이 분명한 영화다. 그러나 호불호가 분명히 나뉠 작품이다. 작가주의와 상업 영화의 충돌지점을 목격하고 싶은 관객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최재욱 스포츠한국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