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 감독, 편집자
1881년 8월 12일 매사추세츠 주 애쉬필드 태생.
1959년 1월 21일 캘리포니아주 LA 할리우드 사망. 향년 77세.

세실 B. 데밀


부친 헨리 C. 데밀, 모친 베아트리체 데밀 모두 극작가로 필력을 날린다. 12살 때 부친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한다. 뉴욕 드라마 예술학교에서 체계적인 이론 교육을 거친 뒤 연극 무대 등에서 프로 세계 환경을 습득한다. 1913년 제시 L. 라스키, 사무엘 골드윈 등과 합작으로 ‘라스키’를 출범 시킨다.

<북미 인디언 남자>(1914)는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첫 번째 장편영화로 등극된다. 글로리아 스완슨을 대중들이 환호하는 인기 배우로 등극 시키면서 스타급 연기자들의 출현을 예고시킨다. 성경에서 스토리를 차용한 종교 대작 <왕 중 왕>(1927), <십 계>(1923),<십자군>(1935)을 통해 흥행 감독으로 대접받는다.

육체파 여배우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글로리아 스완슨은 세실 감독에 의해 스타덤에 오른 대표적 여배우이다.

돈과 성은 미국인들이 가장 많은 호기심을 보이는 소재라고 역설하면서 성적 요소를 가미시킨 코미디극을 포함해 70여 편의 작품을 통해 연출력을 과시한다. 승마용 바지와 부츠를 착용하고 촬영장에 나타나 군사령관처럼 거들먹거리면서 제작 현장을 지휘해 안하무인 감독의 원조 중 한 명으로 지탄받는다.

성경 2페이지만 있어도 영화 한편을 찍을 수 있다고 호기를 부리면서 공개한 종교 사극은 모두 흥행작이 된다. 성서 영화에 대한 인기가 시들자 곧바로 서부극 이어 서커스 공연을 소재로 한 <지상 최대의 쇼>(1952)를 통해 스펙터클 드라마의 진가를 선사해 준다.

밥 딜런의 노래 ‘Tombstone Blues’에서는 베토벤을 비롯해 초창기 블루스 가수 마 레이니 심지어 19세기초 런던을 공포의 도가니로 빠트렸던 살인마 잭 더 리퍼와 함께 세실 감독이 가사로 언급되고 있다. 같은 시기 활동했던 존 포드, 하워드 혹스 등이 배우, 스태프들로부터 존경심을 받았지만 데밀은 독선적이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독불장군 스타일이어서 ‘두려운 존재’로 각인됐다고 한다. 세계 최고 명성을 자랑하고 있는 아카데미 어워드를 주관하는 ‘미국영화예술협회(AMPAS)’ 36명의 창립 발기인 중 한 명이다.

위험한 연기에 대해 대역보다는 배우가 직접 하는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악명을 추가시킨다. <지상 최대의 쇼>에서는 배우들 얼굴에 코끼리 발이 스치는 위험한 장면을 요구하기도 했고 높은 계단 등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행동을 지시해 배우들이 심한 찰과상을 입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가장 압권은 <삼손과 데릴라>(1949)에서 빅터 매추어는 이빨 빠진 사자와 결투를 하는 장면, 강물에 뛰어드는 것, 높은 벽에서 아래로 뛰어내리는 등 위험한 장면에 대해 스턴트맨 대역을 요청하자 세트장에서 여러 동료 배우 및 스태프들을 앞에 두고 ‘100% 천하의 겁쟁이’라고 비난했다고. 감독 데뷔작 <북미 인디언 남자>(1914)는 1918년, 1931년 2번에 걸쳐 리메이크 시켜 이 같은 사례를 보유한 유일무이한 감독이라는 기록을 남긴다.

산타 모니카에 위치한 자택에서 유흥 파티를 자주 진행했다. 초청된 남자 손님 중 라벨의 ‘볼레로’에 맞추어 선정적인 춤 ‘seven veils dance’을 추는 무희들의 모습을 관람하게 하는 것이 최상의 환대였다고 한다. 1923년에 이어 1956년 리메이크한 <십계>의 홍보를 위해 ‘십계를 새긴’을 미국 주요 주 정부 건물에 설치하는 행사를 벌였다. 이 석판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지만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미국 헌법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앨라배마 주 등에서는 시민들의 민원이 제기돼 철거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1885년. 텍사스 보안관이 살인 혐의자를 체포하기 위해 캐나다 국경 지역으로 파견된다는 액션 모험극이 <노스 웨스트 마운티드>(1940). 호남형 보안관 게리 쿠퍼와 연정을 나누게 되는 여인으로 마델린 캐롤과 폴레트 고다르가 출연하고 있다. 고다르는 배역 오디션을 위해 데밀 사무실 위에 발가락을 보여준 것이 전부였다고. 일화에서 엿볼 수 있듯이 데밀은 유독 여성의 발가락을 쳐다보고 성적 흥분을 느끼는 기이한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그와 불륜설이 나돌던 많은 여성들은 ‘직접적 관계보다도 자신들의 발가락을 보고 자위를 하는 황당한 꼴을 지켜 봐야 했다’고 추태를 폭로했다.

미국 전역에 수많은 극장 체인을 소유해 ‘극장왕’으로 불렸던 영화인이 시드 그로맨. 1927년 할리우드에 중국 건축 스타일을 모방해 건립한 극장 ‘차이니스 시어터’ 광장에는 유명 스타들의 발도장을 장식해 영화 애호가들의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연예인을 위한 명예의 전당에서는 늘 ‘손도장’을 찍는 것이 주된 이벤트 행사가 되고 있다. 반면 ‘발도장’을 새겨 넣는 아이디어는 데밀 감독의 제안으로 알려져 그의 변태적인 ‘페티시즘’을 새삼 입증시킨다.

1940년작 <노스웨스트 마운티드 폴리스>에서부터 마지막 작품인 <십계>(1956)까지 내레이션 장면은 그가 육성 연기로 들려 주었다.

<지상 최대의 쇼>(1952) <십계>(1956)의 주역으로 캐스팅된 찰턴 헤스턴은 자서전을 통해 ‘내 경력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장식해준 데밀 감독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기술했다. <삼손과 데릴라>(1949), <지상 최대의 쇼>(1952) 주역으로 물망에 올랐던 배우가 버트 랭카스터. 하지만 민주당 지지자라는 이유로 그는 탈락된다. 데밀은 골수 공화당원이다.

이경기(영화칼럼니스트) www.dailyost.com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