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 관계 극도로 꺼려…완벽주의 악명

스탠리 큐브릭
감독, 시나리오 작가,프로듀서. 1928년 7월 26일 뉴욕주 뉴욕 태생. 1999년 3월 7일 영국 허트포드셔어 하펜덴 사망. 향년 70세.

내과 의사로 재직하고 있던 부친 잭은 아들이 학교 성적은 불량했지만 상당히 창의적인 사고력을 갖고 있다고 판단해 13살 생일을 맞아 카메라를 사준다. 뉴욕 곳곳을 촬영하러 다니던 스탠리는 암실 작업을 하면서 사진 세계의 푹빠져 든다.

1950년 자비를 들여 권투 선수들의 애환을 다룬 다큐멘터리 <시합 날>(1951)을 비롯해 <날으는 아버지>(1951) <씨페어러>(1953) 등을 연속 발표하면서 서서히 영상업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음모에 빠져 곤경을 당하는 세태를 묘사한 ‘느와르 스타일’의 <살인자의 키스>(1955), <킬링>(1956) 등을 발표하면서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눈에 띈다.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전쟁 영화 <영광의 길>(1957)을 발표하면서 장인(匠人) 감독의 탄생을 알리게 된다.

촬영장 소품, 음악, 배우들의 의상 등 제작에 대한 모든 소소한 것을 완벽하게 체크하는 것으로 악명을 떨친다.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스팔타카스>(1960)를 제작할 때 촬영 감독 러셀 메티는 큐브릭이 세세한 촬영 테크닉을 지시해서 정작 자신은 촬영 의자에 우둑커니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는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여받으면서 역설적으로 큐브릭의 영상 테크닉이 얼마나 완벽한 것인지를 증명하는 사례가 된다.

<애꾸눈 잭>(1961) 제작 방법을 놓고 말론 브랜도와 의견 충돌이 일어나 급기야 브랜도가 직접 메가폰을 잡게 된다.영국에서 <롤리타>(1962)를 발표하지만 10대 소녀에게 애정을 느끼는 40대 중년 교수의 행각이라는 논쟁적 소재로 인해 검열 당국의 제재를 받으면서 상업적 타격을 입게 된다. <닥터 스트란젤러브>(1964)는 핵 전쟁이라는 심각한 소재를 시종 블랙 코미디로 묘사해 평단의 호평을 얻어낸다. 공상과학 장르의 대가 아서 C. 클라크의 원작을 극화한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는 실제와 같은 우주 셋트 모습과 고립무원의 우주 공간에서 벌어지는 지능을 갖춘 컴퓨터의 반란, 그리고 인류의 흔적을 찾는 장대한 여정이라는 복합적 스토리를 담아 SF 영화의 전형을 제시하는 명작 반열에 등극된다. <시계 태엽 오렌지>(1971), <샤이닝>(1980)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찬반 양론을 불러 일으킨다.

고소공포증으로 인해 평생 비행기 타는 것을 꺼려 미국이 배경인 <샤이닝>, 유작이 된 <아이즈 와이드 샷>(1999) 등을 모두 런던 세트장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극중 등장 인물들이 모두 폐쇄적이고 음침하며 타협할 줄 모르는 옹고집의 소유자들로 설정됐다. 이러한 배역 성격은 감독 자신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뒷말을 들었다. 사후 배우들을 촬영장에서 공공연하게 구타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인터뷰나 대인 활동을 극도로 꺼리는 것으로 유명세를 더했다.

내레이션 방식으로 스토리 전개 과정을 설명하는 것을 즐겨 채택했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아이즈 와이드 샷>(1999) ,<샤이닝>(1980) 등에서 이런 스타일을 접할 수 있다.

좌, 우가 균등하게 평행을 이루는 영상 구도에 집착했다. <메탈 재킷>(1987)에서 길고 평행을 이룬 군대 벽, <샤이닝>(1980)에서 미로와 같은 호텔 통로,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에서 흰색으로 치장된 빈틈 없어 보이는 컴퓨터 실 등이 이런 ‘대칭 이미지 구도’를 엿볼 수 있다. 캐릭터의 감정적 변화를 극명하게 드러내 주기 위해 ‘얼굴 감정을 집중시킨 과도한 클로즈-업’을 즐겨 사용했다. 정교한 무대 디자인과 흡사 물이 흐르는 듯한 유연한 트랙킹 샷 등 카메라 촬영 테크닉은 영화학도들의 교본으로 주목받는다.

제작 현장에 아내를 스태프로 적극 활용한 것으로도 이름을 날린다. 조강지처 토바 에타 메츠 큐브릭은 큐브릭의 1호 장편 영화 <두려움과 욕망>(1953)에서 ‘대사 감독’으로 참여했다. 2번째 부인 루스 소보카 큐브릭는 <살인자의 키스>(1955)에서 발레 댄서 아이리스역뿐 아니라 ‘안무가’ 역할을 수행한다. 3번째 부인 크리스티안 하란 큐브릭은 <영광의 길>(1957)에서 독일군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수잔 크리스티안 역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극중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배경 음악을 삽입시켜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유명세를 더했다. <시계 태엽 오렌지>(1971)에서는 알렉스가 알렉산더 부인을 강간한 뒤 ‘Singin' in the Rain’을 부르고 있다. <닥터 스트란젤러브>(1964)에서는 핵전쟁이 초래하는 인류 대학살 참극의 이미지를 보여 주는 라스트 장면에서 ‘We'll Meet Again’이 흘러 나오고 있다. <메탈 자켓>(1987) 라스트에서 해군 병사들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the Mickey Mouse Club'을 합창하고 있다.

1988년 출간된 움베르토 에코 원작의 <푸코의 추>를 극화하려고 했지만 에코가 거절한다. 이것은 <장미의 이름>(1986)의 영화화를 진행할 때 에코가 시나리오를 직접 쓰겠다는 것을 거절한 큐브릭의 처사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는 보복(?)으로 풀이됐다.

<아이즈 와이드 샷>(1999)의 차기작으로 <에이>(2001)가 추진됐지만 사망하는 바람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메가폰을 잡게 된다. 라스트 크레디트에 ‘큐브릭에게 헌정한다’는 문귀는 이런 이유로 삽입된 것이다.

뉴욕 상류층들이 벌이는 환각 마약 파티 및 난교 등을 묘사한 <아이즈 와이드 샷>.

이경기(영화칼럼니스트) www.dailyo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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