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유내강(外柔內剛)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보게 하는 배우였다. 영화 ‘기방도령’(감독 남대중, 브레인샤워 , 제이와이피픽쳐스) 개봉을 앞두고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정소민은 이중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한 청순한 외모와 달리 내면은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을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여리게만 보고 편하게 다가갔다가는 큰 코 다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아무리 가난해도 기품 넘치는 영화 속 혜원이 스크린을 뚫고 현실에 나들이 나온 느낌이었다.

영화 ‘기방도령’은 조선시대 폐업 위기의 기방 ‘연풍각’을 살리기 위해 꽃도령 허색(이준호)이 조선 최고의 남자 기생이 되어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코미디. 정소민은 허색과 사랑에 빠진 몰락한 양반집 규수 혜원 역을 맡아 데뷔 후 처음으로 사극연기에 도전했다. 시쳇말로 ‘병맛’ 느낌이 강한 B급 코미디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영화 속에서 정소민은 멜로의 축을 담당하며 막 나가려는 영화의 균형을 잡아준다. 드라마와 달리 스크린에서는 항상 개성이 뚜렷한 영화를 선택하는 이유부터 물었다. “제가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건 대본이 재미있느냐 여부예요. 장르나 감독님, 출연배우는 보지 않아요. 모두가 좋다 해도 나에게 재미가 없다면 사양하는 편이에요. 내가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관객들을 설득시킬 수 있겠어요. ‘‘기방도령’은 대본을 받자마자 한 번에 쭉 읽을 정도로 재미가 있었어요. 또한 단순한 웃기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멜로 부분에서 울림이 있더라고요. 언론 시사회에서 영화를 처음 봤는데 정말 자제했는데 결말부에 눈물이 났어요.”

정소민이 연기한 혜원은 어린 시절 자신 때문에 다친 오빠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인물. 오빠를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사랑과 결혼은 꿈도 꾸지 못했던 혜원은 대책 없이 들이대는 허색과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사랑해준 오빠 친구 유상(공명) 사이에서 고민을 한다. 정소민은 혜원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처음에 연기 톤을 잡는 게 쉽지 않았어요. 영화 속 모든 캐릭터들이 워낙 개성이 강하고 재미가 있는 인물들이어서 가장 진지한 혜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고민이 컸어요. 그러나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혜원이 마냥 진지하고 다소곳한 인물은 아니에요. 사람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돌직구, 팩트 폭격을 날리죠. 시대에 순종하기보다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반골기질이 있어 연기할 때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어요. 혜원과 저의 교집합은 가족에 대한 애정이 크다는 점이에요. 저도 어렸을 때부터 장녀로서 동생을 돌보고 부모님에게 힘이 돼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어요. 장녀는 아니지만 오빠를 돌봐야 한다는 혜원의 마음이 이해가 됐어요.”

정소민은 영화 속에서 요즘 잘 나가는 이준호, 공명과 삼각관계를 이뤄 여성 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사고 있다. 이준호는 영화 ‘스물’에서도 호흡을 맞춘 적이 있는 89년생 동갑내기 친구, 공명은 무려 다섯 살 차이 나는 동생. 두 남자의 매력을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스물’을 찍을 때 이준호와 단둘이 호흡을 맞추는 장면은 전혀 없었어요. 그러나 영화를 보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어요. 아이돌 가수로서 스케줄이 진짜 바빴는데 영화 속에서 자기 몫을 충분히 해내더라고요. ‘기방도령’ 개봉을 못 보고 입대해 현재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중인데 시사회가 열린 날 단톡방에 들어와 ‘수고한다’며 홍보활동에 함께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전했어요. 공명은 오빠 친구 역할인데 나이가 다섯 살이나 어려 처음에는 걱정됐어요. 그러나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워낙 연기력이 뛰어나 오빠로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촬영할 때 진짜 오빠 같았어요. 영화 속에서는 어른스럽고 점잖은 모습이지만 평소에는 애교가 많은 귀여운 친구예요.”

‘기방도령’을 더욱 웃음의 지뢰밭으로 만드는 건 조연을 맡은 예지원 최귀화 고나희의 천연덕스러운 코믹 연기. 시사회에서 이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처음 본 정소민은 주연배우라는 생각을 잠시 잊고 실제 관객처럼 실컷 웃었다고. “함께 붙는 신이 별로 없다 보니 예지원 최귀화 선배님이 연기하는 모습을 볼 기회가 없었어요. 영화를 보니 선배님들이 시나리오를 정말 재미있게 살려 주셔 많이 웃었어요. 평소에도 예지원 최귀화 선배님은 정말 러블리한 분들이세요. 촬영장에서 만나면 정말 재미있고 사랑스러우세요. 고나희는 올해 열한살인데 나이에 비해 매우 어른스러운 친구예요.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면 진짜 능청스럽게 연기를 잘하더라고요. 그러나 평상시에는 나이에 맞게 귀여운 아이예요. 음악이 나오면 춤추고 애교가 많아요.(웃음)”

정소민은 내년이면 데뷔 10주년을 맞이한다. 드라마 ‘나쁜 남자’로 혜성처럼 등장한 게 엊그제 같은데 나이도 서른을 넘었고 이제 촬영장에서 후배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앞으로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을까?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새로운 장르와 캐릭터를 만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결코 안주하고 싶지 않아요. ‘골든슬럼버’에서 처음으로 악역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재미있더라고요. 기회가 있으면 악역에도 도전하고 싶고 액션 연기도 해보고 싶어요.”

최재욱 스포츠한국 기자 사진 제공=판씨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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