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성취였던 한글의 위대함!

영화 '나랏말싸미'

장중하면서 강렬하고 품격 있으면서도 파격적이다. 영화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 제작 영화사 두둥)는 관객들의 눈과 귀뿐만 아니라 두뇌와 감성까지 자극하는 지적인 영화다. 모범생의 만듦새를 지녔지만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고 높낮이가 작은 완만한 서사로 진행되지만 진보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나랏말싸미’는 이렇게 이중적인 매력이 가득한 영화다.

‘나랏말싸미’는 우리가 물과 공기처럼 우리가 당연히 쓰고 있는 한글 창제의 뒷이야기를 담는다. 전 세계인이 감탄하고 부러워할 정도로 과학적인 원리를 지닌 문자 한글은 이제까지 세종대왕과 몇몇 학자들이 만들어낸 걸로 알려져 있지만 자세한 창제과정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조철현 감독은 학계에 도는 한글 창제를 둘러싼 속설 중 신미대사 협력설에 무게를 둔다. 그런 가운데 백성을 위해 문자를 만들고 싶었던 세종의 뜨거운 진심을 담는다.

영화는 문자와 지식을 권력으로 독점하던 시대 모든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세종의 마지막 8년을 담는다. 나라의 가장 고귀한 임금 세종과 가장 천한 신분인 스님 신미가 협력해 백성을 위한 글자를 만들어간다는 설정 자체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신분부터 종교, 성향까지 모든 게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이 서로 부닥치고 화해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위대한 업적을 이뤄가는 과정이 선굵게 그려진다. 이 과정을 함께한 소현왕후, 수양대군, 안평대군, 신미와 제자들, 자칫 사장될 뻔한 글자를 배워 널리 퍼뜨린 궁녀들을 통해 한글은 누구 한 사람의 업적인 아닌 모두의 성취였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나랏말싸미’는 한글이나 당시 역사에 대한 기본 지식이 많을수록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다. 별다른 갈등 없이 한글 창제 과정이 병렬적으로 그려지기에 극적 재미가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한글 창제의 원리나 수많은 업적을 세운 성군 세종대왕의 내면이 궁금하다면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는 110분을 보낼 수 있다. 한글 28개 글자가 하나씩 완성되는 모습에 쾌감이 느껴진다. 여름 방학을 맞은 학생들에게 완벽한 에듀테인먼트 교재가 될 만하다.

배우들의 연기는 예상대로 압권이다. 송강호와 박해일의 환상적인 연기호흡은 아찔한 스파크를 일으키면서 관객들을 압도한다. 평소보다 감정을 억누르면서 지도자로서 고뇌와 인간적인 회한을 가득 담아낸 송강호의 명연기는 ‘명불허전’이란 찬사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박해일도 연기파배우답게 강렬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한다.

영화 ‘라이언킹’

할리우드 저력 실감케 해주는 수작

오랜 시간 많은 사랑을 받은 고전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일은 아무리 잘해도 본전도 못 찾는 경우가 많다. 원작을 배우만 바꿔 카피하듯 똑같이 찍으면 시대의 흐름에 따른 새로운 해석이 없다 질타를 당하고 새롭게 각색을 한다면 원작을 훼손했다는 지적을 받곤 한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디즈니의 고전 애니메이션을 실사 영화로 리메이크하는 ‘디즈니 라이브 액션’도 프로젝트 시작 초기부터 원작 팬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최근 ‘알라딘’처럼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각색으로 호평을 받고 흥행에 성공한 경우도 있지만 ‘덤보’나 ‘호두까끼 인형과 4개의 왕국’처럼 기대에 못 미치는 완성도로 혹평을 받고 흥행에 실패한 사례도 있다. 이런 반응을 예상하면서도 디즈니가 ‘라이브 액션’ 프로젝트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원작 팬이 아닌 새로운 세대 관객층을 만들기 위함이다. 이런 가운데 17일 개봉된 ‘라이언킹’은 할리우드의 저력을 실감케 해주는 수작이다. 관객마다 만족도는 다르겠지만 118분 러닝타임 내내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건 똑같다.

우선 엄청난 제작비와 할리우드 최고 제작진이 투입된 대작답게 신기한 볼거리가 넘친다. 주인공 심바가 아버지 무파사를 잃는 장면에서 물소 떼의 질주 장면은 압권이다. 마치 관객들이 그 현장에 서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하다. 존 파브로 감독은 자신이 연출한 ‘정글북’보다 진화된 실사 영화 기법과 포토리얼 CGI를 합친 혁신적인 스토리텔링 기술로 관객들의 눈을 시종일관 호강시킨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보면 동물이 주인공이기에 어쩔 수 없이 표현의 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의인화되지 않은 동물 캐릭터들의 연기는 애니메이션만큼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키지 못한다. 특히 원작 ‘라이언킹’의 백미로 꼽히는 뮤지컬 장면들에서 동물 캐릭터들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난다.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에 뮤지컬 노래들이 배경 음악으로 깔린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단점을 상쇄시켜주는 건 역시 스토리의 힘이다. 일부에서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각색되지 않은 점에 불만을 드러내지만 원작을 그대로 옮긴 영웅탄생 서사의 힘은 여전하다. 삼촌의 계략에 아버지를 잃고 왕국에서 쫓겨났던 심바가 친구 닐라, 품바, 티몬의 도움으로 자신의 자리를 되찾아가는 과정은 여전히 벅찬 감동을 선사한다.

‘라이언킹’은 원작을 넘어선다는 평가를 받기는 힘들 수 있다. 그만큼 원작 애니메이션 ‘라이언킹’은 비교불가능한 걸작이기 때문. 원작에 미치지는 못해도 명성을 이어갈 만한 수작인 것은 분명하다.

최재욱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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