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럽토크] ‘사자’ 안성기

안성기

얼굴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긍정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영화 ‘사자’(감독 김주환, 제작 키이스트) 개봉 직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는 요즘 우리 사회에서 보기 힘든 진정한 어른이었다. 자신이 오랜 세월 지켜온 원칙은 유지하면서도 항상 모든 일에 귀와 마음은 열어놓는 유연한 모습은 만인의 귀감이 될 만했다. 그가 왜 ‘국민배우’로 불리며 여전히 대한민국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지 알게 해주었다. 영화 ‘사자’는 격투기 챔피언 용후(박서준)가 바티칸에서 파견된 구마사제 안 신부()와 손을 잡고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악의 세력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담은 오컬트 판타지 액션물. 는 특유의 인간미 넘치는 매력으로 박서준과 환상적인 케미를 이루며 서늘한 영화에 온기를 불어 넣는다. 영화가 공개된 후 호불호가 나뉘고 있지만 는 영화에 대한 애정과 오랜만에 상업영화로 대중과 만난다는 기쁨 때문에 행복한 표정이었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 저도 신기했어요.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만 해도 어떻게 나올지 몰라 궁금했거든요. 영화가 진지하면서도 유머도 있고 화려한 볼거리도 많아 관객들이 즐겁게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야 재미있었지만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하네요. 지금 심정은 기대 반, 두려움 반입니다.(웃음) 사실 최근 주로 저예산 독립영화를 많이 했기에 젊은 세대들과 만날 기회가 적었어요. 10대 애들은 제가 누군지 잘 모르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김주환 감독이 처음 시나리오를 갖고 왔을 때 기뻤죠. ‘청년경찰’을 아주 재미있게 봤거든요. 더군다나 저를 염두에 둬 역할 이름이 안신부라고 하니 기분이 더 좋더라고요. 젊고 에너지 넘치는 감독과 후배들과 즐겁게 작업할 수 있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는 이제 모든 촬영 현장에서 최고 어른이다. 그러나 그는 항상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모든 후배들을 동료로 대한다. 먼저 다가가 이야기를 걸어주고 애로사항을 들어준다. 그는 인터뷰 내내 ‘사자’를 통해 만난 김주환 감독과 후배 박서준, 우도환에 대한 애정을 털어놓았다.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선 먼저 다가가는 수밖에 없어요 농담을 던지며 촬영장 분위기를 밝게 만들려고 노력하죠. 박서준은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됐어요. 처음 만났을 때 선생님이라고 부를 거라고 예상했는데 선배님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왠지 더 어렵게 느껴지잖아요. 선배님이라고 부른 건 저와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을 거예요. 사실 제가 아버지 나이 뻘인데. 얼마나 어려웠겠어요? 서로 마음을 여니 대화가 아주 잘 통했어요. 제가 농담을 던질 때 약간 무리수를 두면 ‘아 오늘은 너무 나가셨는데요’라고 받아칠 정도로 친하게 지냈어요.” 영화 속에서 는 나이를 잊게 하는 몸을 사라지 않는 열연을 펼친다. 구마의식 도중 목을 졸리고 벽에 던져지는 등 과격한 액션 연기를 선보인다. 후유증이 없었을지 궁금할 정도. ‘노병은 죽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불꽃 연기 투혼을 선보인 소감을 묻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겸손해했다.

“박서준의 액션에 비하면 정말 별 거 아니에요. 크게 어려운 건 없었어요. 액션보다 라틴어 대사가 힘들었어요. 잘해내야 하는데 처음 보는 언어니 쉽지가 않았어요. 무조건 달달 외웠어요. 지금도 기억이 날 정도예요. 목욕탕에 물 받아 놓고 앉아 있으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릴 때가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언어니 대강 넘어갈 수 있지 않느냐 하는데 그건 뭘 모르는 소리예요. 기도문을 통짜로 외워야 하니까 중간에 삐끗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해요. 그래서 완벽하게 소화해내야 했어요. 감독님이 감정을 넣어 하기를 원해서 (악마와) 격투하듯이 라틴어 대사를 연기했어요.”

의 올해 나이는 예순일곱살. 그러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매일 증명하며 열정적으로 살고 있다. 꾸준히 연기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서도 영화계 큰 어른으로서 해야 할 각종 공무도 수행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런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낼 수 있는 건 몇 십 년째 거르지 않는 운동 덕분이다. 몸매만 보면 군살이 전혀 없는 게 청년이나 다름없다. “운동을 며칠 못하거나 배가 너무 부르면 기분이 좋지 않아요.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러닝머신에서 달리며 땀을 흘려야 살 것 같아요. 이번 촬영 때도 쉬는 날이면 운동하러 헬스장에 갔어요. 헬스장에 혼자 갔을 때 박서준과 우연히 만나 함께 운동한 적도 몇 번 있어요. 각종 영화제 위원장 역할은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쓸 필요가 없어 하고 있어요. 시간이 많이 소모된다면 할 수 없었겠죠. 그래서 다른 분들이 생각하는 만큼 바쁘지 않아요.(웃음)”

에게 오랜만에 젊은 후배들과 호흡을 맞춘 ‘사자’는 결코 잊지 못할 값진 경험이었다. 김주환 감독에 대한 칭찬을 쏟아내는 그에게 앞으로 함께 하고 싶은 젊은 감독을 묻자 애정 어린 눈빛으로 자신이 기대하는 감독들의 이름을 털어놓았다. 그는 역시 영원한 현역이었다. “‘살아남은 아이’의 신동석 감독이요. 신 감독이 깊이 있는 주제로 상업 영화로 왔을 때 어떨지 진짜 궁금해요. ‘우리들’의 윤가은 감독도 정말 함께 일하고 싶어요. 김주환 감독이 다시 러브 콜을 하면 당연히 할 것 같아요. 이번에 믿음이 생겼으니까 다음에 연락이 오면 시나리오를 보지 않아도 할 것 같아요.” 최재욱 스포츠한국 기자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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