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상실^꿈속 풍경 등 독특한 설정 즐겨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관객들에게 지적인 두뇌 활동을 요구하는 뛰어난 스토리를 담은 영화를 연이어 발표해 젊은 세대들의 환대를 받아내고 있는 21세기 가장 유명한 감독이다. 데뷔 이후 15년 동안 저예산 독립 영화에서부터 거액의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 등을 통해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7살 때 부친으로부터 선물받은 ‘슈퍼 8밀리 카메라’로 단편 영화를 찍으면서 영상 세계의 매력에 빠져든다. 런던 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6000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특이한 소재를 찾아 나선 젊은 작가가 겪는 기이한 사건을 다룬 69분짜리 데뷔작 <미행>(1998)을 발표한다. 느와르 스릴러를 표방한 작품은 공개되자마자 국제 영화제에 연이은 초청을 받으면서 놀란의 창의적 능력을 공인받게 된다. 아내가 강간^살해당한 충격으로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린 전직 보험 수사관이 아내 살인범을 잡기 위해 분투한다는 <메멘토>(2000)는 사건을 회고시키는 플래시백 기법을 적극 활용해 흥행가의 큰 이슈를 만들어 낸다.

알 파치노 주연의 사이코 스릴러 <인솜니아>(2002), 배트맨 프랜차이즈에 합류해서 선보인 <배트맨 비긴스>(2005), 미스터리 스릴러 <프레스티지>(2006), <다크 나이트>(2008)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면서 흥행가의 블루 칩으로 대접받는다. 공상 과학 스릴러 <인셉션>(2010)으로 전 세계 흥행가에서 8억 달러를 벌어들인다. 지구 종말을 맞아 새로운 행성 찾기에 나선다는 <인터스텔라>(2014), 2차 대전 당시 병사들이 느끼는 죽음에 대한 공포감을 다룬 <덩케르크>(2017) 등으로 다시한번 흥행 이슈메이커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주요 등장 인물의 움직이는 손을 클로즈 업으로 처리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극을 진행하고 있다. 크리스천 베일, 마이클 케인, 톰 하디, 질리안 머피 등을 단골로 캐스팅하고 있다. 플래시백, 하이라이트 혹은 엔딩 장면의 일부분을 오프닝에서 제시하면서 극을 진행시키고 있다. 데뷔작 <미행>(1998)을 비롯해 <배트맨 비긴스>(2005) <프레스티지>(2006) 등은 비대칭 시간 구조로 극이 진행되고 있다. 부조리한 현실과 정직하지 못한 것을 바로잡으면서 극을 마무리시키기고 있다. 이런 결말은 주인공의 독백 대사를 통해 강조시키고 있다.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선전 문귀를 내걸고 공개돼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인셉션>.

대표적 사례는 <메멘토 >(2000)-‘이제 행복해졌다고 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가?’, <프레스티지>(2006)-‘내가 바보가 되길 원하는가?’, <다크 나이트>(2008)-‘그들의 믿음에 충분한 보상을 받을 가치가 있다’ 등의 의미 있는 대사로 극을 마무리해 주고 있는 것이다. <메멘토>(2000)의 가이 피어스, <배트맨 비긴스>(2005)-크리스천 베일, <프레스티지>(2006)-휴 잭맨, <다크 나이트>(2008)-아론 애크하트,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마리옹 코티아르 등은 사랑하는 사람의 억울한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나선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다양한 심리적 혼란 상태에 빠진 주인공들을 단골로 내세우고 있다. 정신, 심리적 질병을 갖고 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했던 영화들은 <메멘토>(2000)-가이 피어스는 단기 기억 상실증 환자, <인섬니아>(2002)-알 파치노는 백야로 인한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다크 나이트>(2008)-아론 에크하트는 선, 악의 극과 극을 오가는 이중적 성격을 갖고 있다, <인셉션>(2010)-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타인의 꿈속에 침투해 생각을 훔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현실적인 판단력은 부족하다 악당은 주인공의 친구나 여인에게 신체적 위협을 가하겠다고 협박을 하는데 악인은 돈보다는 자신의 철학적 믿음이 동기가 되어 범죄에 빠지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대칭을 이루는 이미지 구도를 즐겨 등장시키고 있는데 이러한 영상 테크닉은 스탠리 큐브릭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데뷔작 <미행>(1998)이 1999년 홍콩 영화제를 통해 공개될 당시 관객들을 대상으로 차기작에 대한 투자금 기부 행사를 갖는다. 이때 모은 기금으로 <메멘토>(2000)를 제작하게 됐다고 한다. 붉은색과 녹색에 대한 색맹을 갖고 있다. 제임스 본드 영화에 대한 광팬을 자처하고 있다. 역대 시리즈작 중 최고로 추천하는 작품은 <여왕 폐하>(1969)이다.

그가 추천하는 반드시 관람해야 할 수작 10편의 명단은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 A Space Odyssey>(1968) <블랙 홀 The Black Hole>(1979)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1982) <차이나타운 Chinatown>(1974) <히처 The Hitcher>(1986) <아라비아의 로렌스 Lawrence of Arabia>(1962) <여왕 폐하 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1969) <스타 워즈 Star Wars>(1977) <왕이 되려고 한 사나이 The Man Who Would Be King>(1975) <토카피 Topkapi>(1964) 등이다.

<인솜니아>(2002) 후속작으로 짐 캐리를 주연으로 내세운 하워드 휴즈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틴 스콜세즈 감독이 할리우드 천재 감독이자 제작자 휴즈의 자전작 영화 <애비에이터>(2004)를 제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무리 하던 각본을 중단하고 <배트맨 비긴스>(2005) 연출에 착수했다고 전해진다.

록 밴드 라디오헤드의 광팬이다. 루스 렌델의 소설 <키즈 투 더 스트리트>는 각색 작업까지 마쳤다. 하지만 <인솜니아>(2002) <배트맨 비긴스>(2005)의 연출 제안을 받아 계속 늦추어지고 있다. 발표하는 작품 마다 호평을 얻어냈지만 <덩케르트>(2017)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지명 받을 정도로 아카데미와는 별 인연이 없다. 촬영장에서 ‘얼 그레이 티’를 즐겨 마신다. 왼손잡이다. 미국 출신이 독점했던 <배트맨>의 연출을 맡은 첫 번째 비 미국인 감독이다. <배트맨 비긴스>의 상업적 성공에 힘입어 ‘리부팅 프랜차이즈’ 형식으로 <다크 나이트>의 연출을 연이어 맡게 된다.

2017년 ‘문화적, 예술적,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메멘토>(2000)는 ‘미국 국립영화보관서’ 영국 소장 영화 목록에 선정된다. 놀란 감독이 펼쳐 놓는 영상 세계는 관객들이 예상한 스토리 진행 방법을 여지없이 깨버리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메멘토>에서는 이야기가 역순으로 진행되어 주인공 쉘비가 겪는 혼란을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 시키고 있다. <인셉션>에서는 어지러운 꿈 속 풍경을 끊임없이 펼쳐 주면서 주인공 코브의 주술적 의미가 담겨 있는 팽이를 통해 현실 세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제시하고 있다. <인터스텔라>에서는 모스 부호를 통해 외계에서 전송된 메시지를 관객들에게도 체험하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놀란은 대다수 영화 감독들이 활용하고 있는 여러 명의 보조 연출진을 전혀 채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내가 만들어내는 장면을 내가 아닌 다른 보조 연출자의 감각에 의해 영상 제작을 맡긴다면 나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라는 것이 연출 스탭진을 쓰지 않는 이유다. 이경기(영화칼럼니스트) www.dailyost.com

● 감독 명언^명대사

최고의 배우는 상대 연기자에게 필요로 하는 감정을 본능적으로 끌어내어 그와 호흡을 맞추는 존재이다.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학업에는 소홀했다. 하지만 문학을 배운 덕분에 시대를 뛰어 넘어 누구에게나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상상력을 갖게 해준 것이 오늘날 영화 감독으로서 성공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영화에서 펼쳐지는 것은 상당 부분 비현실적 세계이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모호한 감각’을 자극시켜 주는데는 적격의 매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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