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상처^실수 속죄하는 배역 단골로 맡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배우, 프로듀서, 감독. 1930년 5월 31일 캘리포니아주 샌 프란시스코 태생. 본명: 클린튼 이스트우드 주니어.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티> 등을 통해 시대를 예견하는 창의적 소재와 <칼라 퍼플> <쉰들러 리스트> 등을 내세워 인류사의 묵직한 아픔을 반추해 오면서 흥행 감독 타이틀을 차지해 오고 있다. 반면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황야의 무법자> <더티 해리> 등을 통해 타협없는 독불장군 스타일의 남성미, 연출 데뷔작 <어둠 속의 벨이 울릴 때>에서 재즈 스타일의 배경 음악을 통해 편집증을 가진 여성의 심리를 예리하게 다뤄 연기, 감독 양 분야에서 모두 대가(大家)로 대접받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영화인이다. ‘마초 배우의 아이콘, 살아 있는 전설’이라는 애칭을 듣고 있다. LA 시립 대학 2학기를 마치고 중퇴한 뒤 <괴생물체의 복수>(1955), <타란툴라>(1955) 등 B급 공포물 단역으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한다.

TV 서부극 시리즈 <로하이드>(1959)를 통해 미국 시청자들에게 존재감을 널리 알린다. 현상금을 노리고 황야에서 펼치는 거친 사내들의 목숨을 건 암투를 극화한 <황야의 무법자>(1964), <석양의 건맨>(1965), <석양의 무법자 : 석양의 건맨 2>(1966). 3부작은 이태리 스파게티 서부극으로 자리매김 되면서 흥행가에 이태리 스타일 서부극 광풍이 몰아 닥치는데 일조한다. 테드 포스트 감독의 <헌팅 파티>(1968)는 이스트우드가 첫 번째 출연한 미국산 서부극. 소몰이 도둑의 모함으로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구조된 뒤 법 질서를 교란하는 악인들을 처지해 나간다는 전직 보안관 제드 쿠퍼역을 맡아 연타석 히트작으로 만든다.

재즈 음악 DJ가 광적 애청자에게 시달린다는 <어둠 속의 벨이 울릴 때>(1971)로 감독 데뷔를 선언한다. 애청자의 단골 신청곡으로 삽입된 로버타 플랙의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가 히트되면서 심리 스릴러극의 진수를 선사한다. 엄격한 조직 질서가 요구되는 경찰 조직에 순응하지 않고 범법자에게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사형(私刑) 징계를 내려 ‘더티 해리’라는 애칭이 부여된 형사 칼라한. 체포한 범법자는 자기 손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해 서민들의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권총 스위스 앤 웨슨 매그넘으로 상징되는 칼라한 형사의 활약상은 <더티 해리>(1971)로 출발점을 알린 뒤 <더티 해리 2 : 이것이 법이다>(1973), <더티 해리 3 : 집행자>(1976), <더티 해리 4 : 서든 임팩트>(1983), <더티 해리 5 : 추적자>(1988)까지 이어지는 장수 인기를 얻는다.

중년 남녀의 애틋한 로맨스를 담아 공감을 얻어냈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1980년대 후반 영화 배우보다는 재즈맨 찰리 파커의 전기 영화 <버드>(1988), 존 휴스턴 감독에게 바치는 오마주 <화이트 헌터 블랙 하트> 등을 통해 감독으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한다. 1990년대 들어 서부극의 부활을 주도한 <용서받지 못한 자>(1992)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따낸다. 불륜이지만 추하지 않는 중년의 러브 스토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1995), 2000년대 들어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로 2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차지한다. 2차 세계 대전 일본의 요새 이오지마를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를 미국 병사의 시선으로 묘사한 <아버지의 깃발>(2006), 적성국가 일본군의 입장에서 바라본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2006)를 동시에 선보여 무궁무진한 연출 내공을 과시한다. 갱단의 협박을 받고 자동차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던 소년을 통해 신, 구 세대의 감정적 소통을 시도하게 된다는 <그랜 토리노>(2008)는 첫 주말 3000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린다. 당시 78세의 고령에 발표한 작품임에도 흥행 감각을 잃지 않아 ‘노병은 죽지 않는다’는 명언을 반추 시킨다.

라스트 엔딩 장면에서는 영화가 촬영된 배경지를 단골로 보여준다. 스태프, 캐스트 명단이 올라가는 동안 배경지는 ‘정지 화면’으로 고정된다. <화이트 헌터 블랙 하트> <용서 받지 못한 자> <아버지의 깃발> 등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진실은 엄밀하게 진단하면 사실을 신격화시킨 허상인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를 제시해 공감을 얻어낸다. 과거 상흔을 극복하려고 애쓰거나 자신의 실수를 속죄하고자 하는 배역을 단골로 맡고 있다. 쇠긋는 소리나 쉿쉿 하는 말투로 상대방을 경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1986년 캘리포니아 카멜 시장으로 당선돼 행정가로 잠시 외도를 벌인다. 그는 열성 공화당원으로 유명하다.

그를 모델로 가사를 구성해 발표된 팝송 ‘Clint Eastwood’는 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의 <라자조 인비저블>(2014), 뤽 베송 감독의 <패밀리>(2013) 등에서 삽입곡으로 선곡된다. 2005년 2월 27일 74세 때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로 아카데미 감독상 역대 최고령 수상자로 기록된다. 당시 96세 된 모친이 축하객으로 참석한다.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제임스 캐그니이다. 캐그니는 <백 열>(1949), <더러운 얼굴의 천사>(1938), <양키 두들 댄디>(1942) 등을 통해 자긍심 강한 거친 사나이 역할을 맡아 여성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얻어낸 연기자이다.

가장 감동을 받은 영화 목록은 <39 계단>(1935), <요크 상사>(1941),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1941), <옥스-바우 사건>(1943), <불의 전차>(1981) 등이다. 워렌 비티, 로버트 레드포드, 멜 깁슨, 리차드 아텐보러, 케빈 코스트너 등은 연기자 겸 감독으로 1980~2000년대 할리우드를 장식하고 있다. <황야의 무법자> 촬영 이후 교류를 가졌던 덕분에 이태리어에 능통하다. 볼프강 피터젠 감독의 <사선에서>(1993). 대통령 경호원의 애환을 다룬 영화 재즈 바 장면에서 재즈 피아노를 연주하는 이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이다.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 논픽션 작가, 희극 작가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윌리암 골드만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1970~90년대 까지 발표하는 작품을 버라이어티 흥행 탑에 진입 시켜 진정한 ‘스타’라고 칭송을 보냈다. 오랜 동안 연인 관계를 유지했던 배우 산드라 록은 자서전 <좋은 놈, 나쁜 놈, 매우 추한 놈>(1997)을 통해 이스트우드는 ‘사이코패스’이며 자신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모든 것을 부수어 버리는 ‘괴물’이라고 혹독한 인물평을 했다. 영화 속에서는 근사하게 담배를 피워 무는 장면을 자주 보여 주었지만 실생활에서는 ‘철저한 금연가이다’이다. 카멜 시장 재임 초기 명목상 월급으로 300달러(한화 약 30만원)을 지불 받았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 중 <사느냐 죽느냐>(1973)의 출연 제안을 받는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는 영국 배우가 맡아야 적역이라고 고사한다. 이 배역은 로저 무어에게 돌아갔고 무어는 이후 6번의 본드 시리즈에 출연한다. 비록 불가지론을 신봉하지만 근 40여년 이상 하루에 2번 명상을 해왔다고 한다. 칸 심사위원장을 맡았을 때 황금종려상은 폭력적인 <펄프 픽션>(1994)에게 돌아갔다. 훗날 이스트우드는 ‘유럽 심사위원단이 모두 <펄프 픽션>에게 투표권을 행사했지만 나는 장예모 감독의 <인생>(1994)에게 점수를 주었다’고 밝혔다.

배우로 입문하기 이전에 생계를 위해 벌목공, 철공소 화부, 가스 충전소 주유원 등 3D 직업을 전전했다. 서부극 <평원의 무법자>의 연출 및 주연, 10대 히피 소녀가 겪는 인생 애환을 다룬 <브리지> 연출 등 1973년 동시에 2편을 제작하는 왕성한 창작력을 발휘한다. 감독을 맡은 <용서 받지 못한 자>(1992),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 등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따내는 성과를 거둔다. 이경기(영화칼럼니스트) www.dailyost.com

● 감독 명언^명대사

영화는 인생의 모든 측면을 새로운 시선으로 창조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메가폰을 잡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다른 영화인으로부터 연출 지시를 받는 것도 좋아한다.

아이들은 천부적인 영화 배우들이다. 그들의 꾸미지 않는 행동은 어른들에게 동심의 가치와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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