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

끼로 똘똘 뭉친 ‘천생 배우’였다.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감독 곽경택, 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 개봉을 앞두고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은 몇 분만 함께 있어도 주위 사람들의 기분을 끌어올려줄 만큼 흥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한국전쟁 당시 772명 학도병들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투입되었던 이제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장사상륙작전을 그린 작품. 평균나이 17세, 훈련기간 단 2주였던 학도병들이 갑작스럽게 투입된 전투에서 겪는 공포와 끈끈한 우정, 시대의 비극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은 반항적인 성격을 지닌 에이스 학도병 기하륜 역을 맡아 몸을 사리지 않은 열연을 펼쳤다. 뮤지컬계에서 촉망받는 유망주였다가 드라마 ‘슬기로운 감방생활’으로 주목받은 후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오가며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은 2년 만에 100억원 넘는 대작영화의 주인공 반열에 올라섰다. “부담이 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 제가 영화 한 편을 이끈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을 가질 만한 레벨의 연기자는 아닌 것 같아요. 불과 2년 전만 해도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했어요. 여전히 배우고 있는 신인이에요. 제가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 이외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아직 없어요. 전 ‘장사리:잊혀진 영웅들’이 누구 한 사람의 영화가 아니어서 좋았어요. 출연한 모든 배우들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작품이죠.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그 당시 장사리에서 이런 일이 있었고 많은 학도병이 희생됐는지를 알았으면 좋겠어요.”

은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촬영기간 내내 곽경택 감독에게 하드 트레이닝을 받았다. 탄탄한 연기력의 소유자로 알려진 그가 현장에서 매일 욕을 먹었다는 게 의외다. 주위 동료 배우들이 이 멘붕에 빠질까봐 걱정했을 정도. 그러나 은 곽 감독의 진심을 알기에 욕을 먹는 게 오히려 고마웠단다. “다 제가 악에 받친 기하륜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일부러 그러시는 거였어요. 첫 미팅에서 감독님에게 기하륜 역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가장 튀고 눈길을 끌었거든요. 감독님이 촬영장에서 저를 강하게 다뤄주시니까 반항적인 기하륜 캐릭터에 더 잘 몰입할 수 있었어요. 발끝부터 올라오는 감정을 표현해낼 수 있었죠. 제가 야단맞으면 주위에서 걱정했는데 제가 원래 누구한테 혼난다고 주눅 들거나 기가 죽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자극이 되었죠. 뼛속까지 기하륜이 되게 만들어주셨어요. 감사할 따름이에요. 감독님이 다음에 또다시 불러주시면 언제든지 달려갈 거예요.”

은 ‘장사리:잊혀진 영웅들’을 촬영하며 평생 친구이자 최고의 동료들을 만났다. 특히 학도병 분대장 최성필 역을 연기한 샤이니 최민호는 91년생 동갑이어서 더욱 친해졌다. “영화로 만나기 전부터 둘 다 아는 지인이 있어 민호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촬영장에서 만나니 들었던 이야기가 다 사실이더라고요.. 정말 열정적인 배우였고 좋은 사람이었어요. 사실 현장에서 친구를 새로 만들기 어려워요. 아무리 잘 지내도 현장에서는 서로 기 싸움이 있기 마련이거든요. 민호는 저에게 정말 모든 걸 다 줬어요. 그게 영화 속 분대장인 최성필의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정말 많이 고마웠어요.”

은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의 촬영을 준비하면서 많은 자료조사를 했다. 관련 기사나 문헌들을 읽고 영상들을 보면서 슬픈 우리 역사를 마주했다. 아무리 촬영 환경이 안 좋아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학도병들을 향한 안타까움에 절대 불평을 할 수 없었단다. 은 영화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백병전 참호 전투 장면을 꼽았다. “정말 아무 전략이 필요 없는 서로 죽고 죽이는 지옥이었어요. 손을 써서든 돌을 들든 뭐라도 들고 싸우는 모습이 정말 처절하고 마음이 아팠어요. 생존을 위해 어린 소년들이 싸우는데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마음이 찢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모든 배우가 정말 비장한 마음으로 연기했어요. 우리 영화는 정말 추운 날씨에 3개월간 A팀과 B팀으로 나눠 빡빡한 스케줄로 촬영을 진행했어요. 체력적으로 정말 힘들었죠. 그러나 전쟁 포화 속에서 희생당한 분들을 생각하니 불평을 할 수 없더라고요. 관객들이 우리 영화를 보고 장사리에서 희생당한 학도병들을 기억해주고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은 지난 주말 종방된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에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하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을 개봉시킨 후에는 2년6개월 만에 고향인 뮤지컬 무대로 귀환한다. 요즘 오는 12월 개막하는 뮤지컬 ‘빅 피쉬’ 연습에 한창이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을까? “‘티틀 박정민’ 같다”고 기자가 말하자 함박미소를 지었다. “그 표현 정말 기분이 좋은데요. 정민이형은 제가 가장 좋아하고 정말 닮고 싶은 배우이자 인생 선배예요. 학교도 같이 다녔죠. 요즘도 만날 형한테 전화 걸어 연기에 대한 자문을 구하곤 해요. 그럴 때면 ”나도 몰라. 니가 알아서 잘하잖아“라며 아무 답도 안해 주죠.(웃음) 그래도 의지가 참 많이 돼요. 전 주연을 고집하지 않아요. 저에게 역할 비중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새롭고 재미있는 역할이라면 어떤 작품이든 출연하고 싶어요. 정말 이것저것 다해 보고 싶어요. 센 역할들을 최근 많이 했으니 순둥순둥한 역할에 도전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최재욱 스포츠한국 기자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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