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택 감독

충무로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현역 중견감독을 찾기 힘든 상황 속에서 은 보석 같은 존재다. 1997년 ‘억수탕’으로 데뷔한 그는 22년 동안 쉬지 않고 대표작 ‘친구’를 비롯해 ‘극비수사’, ‘태풍’, ‘통증’ 등을 만들어내며 대중과 호흡해왔다. 흥행에 실패한 작품도 있지만 늘 일정 수준 이상 완성도를 담보하며 충무로에서 가장 신뢰받는 상업영화 감독 반열에 올라섰다. 상업 영화에서 성공을 거두면 작가주의 감독으로 변신을 꾀하는 다른 감독들과 달리 늘 관객의 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그의 영화 철학은 후배 감독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개봉 후 연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영화 ‘장사리:잊혀진 영웅들’은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기획된 장사상륙작전에 학도병 772명이 투입되면서 벌어지는 역사의 비극을 담은 작품. 평균나이 17세, 훈련기간 단 2주였던 학도병들이 갑작스럽게 투입된 전투에서 겪는 공포와 끈끈한 우정, 처절한 사투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곽 감독은 예상과 달리 애국주의를 고취시키는 ‘국뽕 영화’가 아니라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전쟁터에서 희생당한 소년병들의 희생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반전영화’로 완성했다. 곽감독 특유의 휴머니즘이 반영된 것. 주위의 편견 때문에 연출을 수락하는 게 쉽지 않았을 듯하다. “처음에는 못한다고 했어요. 대본을 읽어보니 시리즈 전작 ‘인천상륙작전’이 지적받았던 부분들이 여전히 있더라고요. 실향민 가족으로서 그렇게 이분법적인 영화는 만들 수 없었어요. 제가 원하는 대로 각색할 수 있으면 하겠다고 했죠. 제작자인 정태원 대표님이 원하는 대로 만들라 허락하셔 합류하게 됐죠. 대표님께 감사할 따름이에요. 우선 희생당한 학도병들에게 집중하는 걸로 결정했어요. 북한군 부분은 다 날렸죠. 어른들의 잘못 때문에 희생당한 꽃다운 청춘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는데 주력했어요. 공동 연출 부분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어요. 정해진 세 달이라는 기간에 넉넉지 않은 예산으로 촬영하려면 혼자서 할 수 없었어요. 김태훈 감독이 원래 CG와 비주얼 관련 전문가인데 많은 걸 배웠어요. 혼자서 찍었다면 6개월도 넘었을 거예요. 할리우드에서도 이런 분업시스템이 자리잡았어요.”

‘장사리:잊혀진 영웅들’은 실화의 힘에 곽 감독 특유의 휴머니즘이 가미된 선굵은 연출, 배우들의 가슴을 울리는 연기로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특히 학도병을 연기한 최민호, 김성철, 이재욱, 정지건 등 젊은 배우들의 열연이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곽감독은 출연한 모든 배우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했다. “촬영 현장에서 누군가 악역을 담당할 수밖에 없었어요. 스케줄이 빡빡한 데다 예산은 적고 촬영이 쉴 새 없이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니 자칫 잘못 하면 사고가 일어날 수 있어요. 실제 총이 등장하고 폭탄이 터지는데 사고가 난다면 사람이 다치는 걸 넘어서 죽을 수도 있어요. 긴장을 놓으면 절대 안 되죠. 호랑이 같은 사람이 있어야 했어요. 그래서 제가 모두에게 무섭게 대했죠. 촬영 시작 전 모든 배우들에게 우리가 어떤 영화를 찍는 거냐고 되묻고 불평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 당시 희생당한 분들을 생각하면 촬영 현장 환경이 힘들어도 불평할 수 없죠. 제가 그렇게 인정사정 없이 몰아붙이니 자기네들끼리 똘똘 뭉치더라고요. 그런 끈끈한 감정이 연기에 잘 묻어났어요. 힘든 가운데서 최선을 다한 배우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에서 메간 폭스가 연기한 여성 종군 기자 역할은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존재감은 남다르다. 광기가 몰아치는 전쟁 속에서 이성적인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사지에 내몰린 소년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전쟁의 참혹함을 조명한다. 안정적인 연기력이 필요한 캐릭터다. 메간 폭스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열연을 펼친다. “제작자가 ‘인천상륙작전’ 때 리엄 니슨 출연으로 재미를 보셨기 때문에 실존 인물인 마가렛 히긴스를 기초로 한 종군기자 역할에 할리우드 배우를 출연시키기로 결정했어요. 그러나 예산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정상급 배우를 캐스팅하기 어려웠어요. 그런데 메간 폭스가 적은 개런티에도 출연을 결정해줬어요. 정말 감사했죠. 그런데 출연이 결정된 후 이전 작품들을 찾아봤는데 솔직히 좀 걱정됐어요. 시나리오 속 캐릭터와 다른 이미지의 연기를 주로 해온 거였죠. 그러나 현장에서 그런 걱정을 깨끗이 씻어줬어요. 장염에 걸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이 영화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고 정말 진지하게 촬영에 임했어요. 감사할 따름이에요.”

개봉 직전 만난 곽감독은 영화 외적인 환경 때문에 고민이 많아 보였다.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자부심은 있지만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악재들이 많다. 비수기를 앞둔 개봉시기부터 영화를 향한 선입견, 편견 등 넘어야 할 고지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가운데서도 곽 감독의 전혀 기죽지 않고 열정은 오히려 활활 타오르는 모양이었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벌써 차기작 프리프러덕션 작업 중이다. “배급 관계자들이 우려하더라고요. 갈등 분란이 만연한 시국에 이렇게 분위기가 무거운 영화가 어울리겠느냐고 말하더라고요.(웃음) 개봉 시기는 아쉽죠. 감독이라면 당연히 관객들이 몰리는 여름에 하고 싶었죠. 그러나 모든 게 뜻대로 되나요? 그게 다 이 영화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최재욱 스포츠한국 기자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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