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 때 소아마비 입원... 인형극에 푹 빠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프로듀서, 감독, 작가 1939년 4월 7일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태생

이탈리아 이주민 출신.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나 예술과 문화의 도시 뉴욕 교외에서 생활한다. 부친 카민 코폴라가 작곡가 겸 음악가, 모친 이탈리아 코폴라는 영화 배우로 각각 활동한 덕분에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감성을 습득받는다.

홉프스트라 대학에서 드라마 학부를 거친 뒤 영화 명문 UCLA 영화 제작 과정을 이수한다. B급 영화의 대가 로저 코만의 연출부원으로 참여하면서 사운드, 대사, 연출법, 프로듀서 등 영화 제작 전반의 걸친 노하우를 전수받는다. 1963년 <디멘시아 13>을 발표하면서 할리우드 영화 감독 대열에 합류한다. 9살 때 보이 스카우트 캠프에 참여했다가 소아마비 증세로 1년여 동안 병실 생활을 한다. 병문안 오는 이도 없어 홀로 쓸쓸한 생활을 하면서 인형극 공부, TV 관람 등을 통해 상상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됐다고 한다. 퇴원 후 8밀리 카메라를 통해 자신이 구상했던 판타지적 감성을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영상 세계 매력에 빠지게 됐다고 한다. 그룹 ‘도어즈’의 리드 싱어 짐 모리슨과는 UCLA 영화과 동기생이다.

<대부>의 돈 코르레오네처럼 후대 연출자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동시에 <지옥의 묵시록>의 커츠 대령같이 구태의연한 체재에 반기를 들고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난폭함과 독선 그리고 목표 설정 후에 보이는 폭발적 열정 등은 감독의 개인적 특질을 대변해 준 극중 인물로 회자되고 있다. 부친 카민은 음악 재능은 있었지만 마땅한 기회를 잡지 못해 동종 업계 성공한 음악가들을 보고 늘 콤플렉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다행이 지방 라디오 방송국 전속 음악가를 비롯해 순회 연주회 등 음악과 관련 있는 일이면 가리지 않고 활동을 했다. 이때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스폰서가 포드 자동차 회사였다고 한다. 이런 이력 때문에 아들 코폴라는 자동차 왕 ‘헨리 포드’를 존경하는 뜻을 담아 중간 이름에 ‘포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UCLA 영화과 졸업 후 사진 작가가 고성능 망원경을 구입해 옆집 여성들의 누드 사진 촬영에 몰두한다는 관음증 소재 12분짜리 단편 <엿보는 사람>을 공개한다. 이 영화를 69분짜리 장편으로 확대한 것이 <투나잇 포 슈어>(1962). 라스베이거스 스트립 걸들과 얽히게 되는 2명의 거친 남성들. 한 명은 관음증 환자 또 한 명은 음탕한 카우보이가 서로 겪은 여성편력을 음탕하게 늘어놓는다는 소프트 포르노성 코미디 겸 서부극이다. ‘이보다 더 야성적인 영화는 없었다$ 아름다운 금발 미녀들$ 수줍은 카우보이들’이라는 선전 문귀를 내걸고 상영됐다. 음란한 남성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내 2번째 성인 영화 <벨보이와 플레이걸>(1962)을 연출한다. 란제리 모델들이 투숙하는 방에 몰래 들어가려는 벨보이의 성적 호기심을 담고 있다.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지옥의 묵시록>은 전쟁이 가져다 주는 인간의 광기를 담아내 전쟁 영화 걸작으로 자리매김된다.

주인공으로 준 윌킨슨이 출연하고 있어 선전 문귀는 ‘준이 사방에서 피어 오르고 있네!’로 표기됐다. 3D로 제작한 것을 강조하기 위해 ‘당신의 무릎에 소녀를 앉힐 수 있다’는 호기심 자극한 문귀도 추가시켰다. 상업 감독 타이틀을 얻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혀 제작한 이력을 갖고 있어 작품 연보에서 삭제해 버리고 싶은 영화로 지목되고 있다. <유어 빅 보이 나우>(1966)로 차세대 유망 감독으로 조명받는다. 하지만 신비한 아일랜드 출신 피니언이 딸 샤론과 레인보 밸리에서 겪는 신비스런 모험담을 묘사한 뮤지컬 <피니언 레인보>(1966)가 흥행 참패를 하면서 극과 극을 오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1943년 2차 대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아프리카 요충지 튀니지. 사막의 여우 롬멜 장군이 이끄는 독일 기갑사단에 맞서 전투를 승리로 이끈 미군 제2 기갑병단 패튼 장군의 전쟁 모험극이 <패튼 대전차 군단>(1970). 프랭클린 J. 샤프너 감독이 연출을 맡아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자극시킨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맡아 1971년 진행된 아카데미 어워드에서 각본상을 받는다. 여세를 몰아 마리오 푸조의 베스트셀러를 작가와 공동 각색하고 연출한 <대부>(1972)를 공개해 작품, 남우 주연(말런 브랜도), 각색상(마리오 푸조+코폴라) 등 3개 부문상을 받으면서 1970년대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대부 2>(1972), 흥겨운 60년대 로큰롤 음악을 배경으로 청춘 군상들의 흥겨운 일화를 다룬 조지 루카스 감독의 <청춘 낙서>(1973) 프로듀서, 도청의 피해 사례를 담은 <컨버세이션>(1974) 등 시대를 빛낸 걸작을 탄생시키는데 일조하면서 최절정기를 맞게 된다.

전쟁이 초래한 인간의 광기를 묘사한 <지옥의 묵시록>(1979)은 칸 필름 페스티벌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등 예술적 성과는 공인받았지만 막대한 추가 예산으로 코폴라가 지분에 관여하고 있는 독립 프러덕션 ‘Zoetrope Studios’와 배급사 ‘UA’ ‘파라마운트‘ 등에게 막대한 재정 적자를 초래시킨다. <지옥의 묵시록>의 흥행 실패 이후 <원 프롬 더 하트>(1982), <아웃사이더>(1983), <코튼 클럽>(1984), <캡틴 이오>(1986) 등 음악을 가미시킨 소품을 연이어 발표한다.

1978년부터 캘리포니아 루더포드 포도원에서 ‘루비콘 와인을 생산해 오고 있다. 와인 제조업에 대한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잭>(1996) <레인메이커>(1997) 등을 연출하지만 비평가들로부터 ‘과거 명성을 퇴색 시키는 초라한 B급 영화로 감독의 존재감도 이제 퇴락했다’는 혹독한 비판을 불러 일으킨다.

<마리오 푸조의 대부>(1972), <브람 스토커의 드라큐라>(1992) 등은 원작자의 이름을 영화 제목에 병기해 준 대표작이다. 촬영 고든 윌리스, 프로듀서 프레드 루스와 그레이 프레데릭슨 등과 오랜 동안 팀웍을 이루어 왔다. 연기자들로는 로버트 듀발, 타계한 존 카잘, 니콜라스 케이지, 다이안 키튼, 맷 딜런, 해리슨 포드, 로렌스 피시본, 말론 브란도 등이 단골로 캐스팅 되고 있다. 코폴라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뮤지컬 대가 밥 포시와 여러 차례 트로피 경쟁을 벌였다. 1972년 코폴라는 밥 포시의 <카바레>(1972)에 밀려 <대부>로 감독상을 수상하는데 실패한다. 1974년 포시는 <레니>로 다시한번 격돌하지만 이번에는 <대부 2>로 코폴라가 감독상을 가져간다. 1979년 <지옥의 묵시록>, <올 댓 재즈>로 3번째 수상 대결을 펼치지만 최종 승자는 로버트 벤튼의 <클레이머 대 클레이머>가 차지한다.

아카데미 작품, 감독, 각본(각색상) 등 주요 3개 부분을 수상한 할리우드 감독은 지금까지 7명이다. <대부 2>(1974)의 코폴라 감독을 비롯해서 레오 맥카리, 빌리 와일더, 제임스 L. 브룩스, 피터 잭슨, 조엘 코헨과 에단 코헨 등은 ‘7명의 엘리트 감독’으로 칭송 받고 있다. 감독 스스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자천하고 있는 영화는 <레인 피플>(1969) <도청>(1974) <지옥의 묵시록>(1979) <럼블 피시>(1983) <영 위다웃 유스>(2007) 등이다. 여배우 다이안 레인의 광팬임을 자처하면서 <아웃사이더>(1983), <럼블 피시>(1983), <카튼 클럽>(1984), <잭>(1996) 등에 연속 캐스팅 한다. 엘리아 카잔에게 가장 많은 감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중앙 아메리카에 위치한 벨리즈와 중남미 국가 콰테말라에 리조트를 소유하고 있다. 벨리즈의 경우 명예 미국 대사로 위촉 받았다.

이경기(영화칼럼니스트) www.dailyost.com

● 감독 명언^명대사

제작사들은 위험 없이 안전하게 영화를 제작해 달라고 늘 주문한다. 하지만 영화 촬영을 ‘위험 없이’ 완성해 달라는 것은 섹스하지 말고 아이를 낳아 달라는 요구와 같다.

나는 천재이지만 영화 연출 재능은 없다.

실패를 두려워 한다면 절대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다.



주간한국